나를 지키기 위한 침묵의 그림자
살다 보면, 조용히 멀어지는 쪽을 택할 때가 많다. 싫은 티를 내기보다, 잔소리를 하기보다, 그냥 서서히 거리를 두는 것. 나는 꽤 오랫동안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해 왔다. 굳이 갈등을 만들 필요가 없고, 말해봤자 관계만 상하고, 어차피 바뀌지 않을 사람에게 에너지를 쏟는 것은 낭비라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멀어지는 쪽을 자주 택했다.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면서 꽤 여러 번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지시에 불응하거나 태도가 엉망인 후배들, 때로는 예의 없는 동료나 선배들. 선배로서 윗사람으로서 후배로서 한마디 해줘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 그러지 않았다. 잔소리를 해봤자 올곧게 알아듣는 사람이 없더라는 경험이 쌓였고, 지적을 해봤자 오히려 관계만 어색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 멀어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어느 순간 내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그 판단의 이면에는 더 단순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그냥 에너지를 쓰기 싫었던 것이다. 갈등이 불편했고, 감정 소모가 싫었고, 굳이 나서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스스로 '현명함'이라 착각했던 건 아닌지, 한참 뒤에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선택이 상대방에게 어떤 결과를 남기는지에 있다. 조용히 멀어진 나는 편했다. 갈등도 감정 소모도 없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누군가 말해줬다면 바뀔 수도 있었을 것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 계속 반복한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오히려 더 잔인한 일이었다. 자기 잘못을 모르면 계속 그렇게 같은 잘못을 반복할 테니까.
내가 편하자고 선택한 침묵이었다. 물론 말한다고 해서 반드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지적을 해도 듣지 않는 사람이 꽤 많다. 진심으로 이야기해도 오히려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 그 피로감이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냐고 물으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말이 잘 닿지 않더라도, 말을 건넸어야 했던 건 아니었는지.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모든 상황에서 말하는 것이 옳다고도 할 수 없고, 침묵이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달라졌다. 멀어지기로 결심하기 전에, 내가 침묵하는 것이 정말 현명한 판단인지, 아니면 그냥 편하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됐다. 명확히 알고 선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모든 관계에서 싸울 필요는 없고, 모든 잘못을 지적할 의무도 없다. 하지만 그 선택 앞에서 적어도 솔직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안다. 상대를 위한 현명함인지, 나를 위한 편함인지.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선택이 진짜 내 것이 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떳떳할 수 있는 사람만이 좀 더 나은 길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난 여전히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