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 누구야. 내가 교촌치킨 사줄께
아니 온라인카지노에는 누가 뭘 쳐서 유입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통계탭이 있어요. 근데 유입 키워드가 너무 짠한거야. 아니 왜 저런 키워드를 쳐서 들어오냐고. 내 글에서 저 질문에 답을 얻을 순 없을텐데 싶었어. 뭐시 그렇게 힘들어서 그러셨을까. 하는 마음에 최근 나의 생각을 좀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최근 저는 꽤나 쳐진 요즘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성피로인지, 우울인지, 무언가에 의한 무기력인지 돈이 없는건지. 아마 마지막 이유가 가장 크리티컬할 것 같네요. 그럼 돈이 많아지면 갑자기 모든 것이 무지개빛이 되려나 생각해보면 일단은 그럴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삶이 힘든 이유를 돈 때문이라고 납작하게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삶 자체가 힘겨움은 아닐 것입니다. 삶은 감정도 아니고, 형태가 갖춰진 물건도 아닙니다. 그저 관념적 단어죠. 질문을 정확하게 만들어보자면 삶은 힘든건가요가 아니라, [지금 나는 왜 이렇게 힘든건가요?]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본인만이 아시겠지만, 저는 저 질문이 참으로 애틋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질문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 제가 가장 경계하고 싶은 태도가 있다면 문제와 원인을 성급히 이어버리는 것입니다. [난 돈 때문에 힘들어! 난 쟤 때문에 힘들어! 난 AI때문에 힘들어!] 이런 식으로 말이죠. 우리가 느끼는 '힘들다'라는 감정은 대부분은 아주 작은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무게를 올려 레그익스텐션을 할 때의 힘듦과는 분명 다른 개념이죠. 아마 정확한 느낌은 [힘이 빠져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고 손도 까딱하기 싫은 무기력]에 가까울 것입니다.
무기력은 늪과 같습니다. 생각이 생각을 낳죠. 무성생식에 성공한 쓸데없는 상념들은 이리저리 얼히고 섥혀 지저분한 또아리를 만듭니다. 발목을 휘감기에 충분히 끈적하죠. 문제의 시발점과 어떤 생각이 나를 옭아매는지, 그 첫 매듭을 찾는 것이 어렵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가장 큰 자극에게 멍에를 씌우곤 합니다. 당신께선 적어도 성급한 대답을 내리진 않으신 것 같습니다.
답에 집중하다보면 질문을 잊게됩니다. 나를 구원할 정답은 오로지, [나는 지금 왜 힘들지?]라는 질문을 놓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쉽게 정답을 내리지 말고, 모든 것이 시작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계속하시길 바랍니다. 멍해져도 괜찮고, 술과 함께 해도 무관합니다. 스스로를 납득시킬 만한 답을 찾으면 비로소 엉켜있던 매듭이 하나 풀릴 것입니다. 너무 기뻐하진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는 존재하는 덫에 걸린 게 아닙니다. 인생이 지루해질 때쯤되면, 우린 스스로 덫을 만들어 내 발목에 채우기도 합니다. 그리곤 열쇠를 잃어버리죠. 그렇게 다시 힘겨움에 빠져들고, 빠져나오길 반복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빠져나올까는 올바른 대답이 아닙니다. '난 왜 덫에 걸렸나?'가 올바른 질문입니다. 부디 그 질문의 시발점이 너무 무거운 사건이 아니길 바랍니다.
힘겨움을 해소할 수도 없고, 질문에 대답할 수도 없을 땐 농담이 좋더라고요. 사건과 상황을 농담으로 만든다고 해서, 진지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가볍게 날리다보면 그 중에 가라앉는 것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게 끈적히 앙금처럼 굳어있는 상태에선 무엇이 중요한지 보이지 않죠. 오늘의 힘겨움이 계속되고 있다면, 그것을 날려보낼 농담이 함께하길 또한 바랍니다. 힘겨움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감춰졌던 아랫쪽을 보실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