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죽으면 모든게 편해질까?] 라고 물었다.

그리곤 천장을 바라보았다.

by박창선

아내는 출판사를 하고 있고, 신간이 나왔다. 나보고 바카라을 홍보하라고 시켰고, 뭘 써야할지 고민이 길었다. 바카라을 끝까지 읽었고 많이 끄덕였고 꽤나 접은 페이지가 많지만 사람들은 내 감상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바카라의 목차나 표지, 내용을 얘기해도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 정보는 교보문고 상세페이지만 가도 다 나와있는 내용이다.


보통 가치는 무언가가 완성된 후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출발선에서 이미 탄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 바카라을 제대로 말하려면 그것이 시작된 날과 인쇄되기 전의 상황을 얘기하는 것이 더 좋겠다.



아내는 이제 마흔이 되었고, 연애할 때는 30대 중반이었다. 그때의 아내는 바카라상 아래 다리를 넣고 잠이 들곤 했다.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켜기 위해서였다. 7시에 일어나서 노트북을 켜고 엄마와 싸운 뒤, 밤12시까지 일만하다가 다시 잠드는 사람이었다. 주변 모든 사람에게 호인이어야 하고, 일을 벌리는 걸 좋아하는데다, 누군가의 호의를 자연스레 받아 넘기지도 못하고 급체를 게워내듯 돌려줘야 하는 성격이었다. ENTP 그 자체다. 일이 절반이요, 사람을 상대하고 카톡에 답장하고 보답할 선물을 고르고, 무례한 방문에 웃고 끝도 없는 타인의 서사를 경청하는 시간이 절반이었다.


그렇게 10년을 일했다. 결혼 후 아내는 아팠다.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들어했다. 악성빈혈이었고 철분주사를 맞고 일을 내려놓는다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쉬기는 개뿔, 외려 직원이 생겼고 누군가를 먹여살리며 3년을 버텼다. 세상은 녹록치 않고 사업에서의 성공은 전설같은 것이다. 파도는 쉴새없이 닥친다. 조각배에 탄 사람에겐 더 가혹하다. 결국 다시 혼자가 되었고, 출판사를 차렸다. 출판이 잘 될리 만무하다. 한 방 싸움이다. 그 전까진 속이 곪아터지는 것이다.


아내는 최선을 다했다. 굿즈를 만든다며 생판 처음해보는 것들을 해내야했고, 잔혹하게도 밀려드는 일들과 쏟아지는 카톡은 죄다 요구와 불만, 부족함에 대한 말들이었다. 최근 아내는 불안했다. 조급했고, 예민했다. 금새 터질 것 같았다. 아니, 사실 매일 폭발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탓하고 비난하는 모습은 스스로 옹졸해보였기에 아내는 스스로를 자바카라하고 괴롭히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고, 나는 왜 이럴까를 반추했다.


침대에 나란히 누웠을 땐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흐느끼지 않았다. 그냥 또르르 구르는 눈물인 것이다. 이내 죽으면 편해질까? 라고 덤덤하게 물었다. 울분도 설움도 없는 담백한 한 마디에 반응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아내는 스스로에게 자비롭지 않았다. 자신을 때리고, 자바카라하고 괴롭혔다. 우리 부부는 상담을 꽤 많이 받았고, 심리학적인 지식도 해박했다. 아내는 그 지식으로 스스로를 옭아맸다. 언어로 규정하고, 그 틀로 도망쳤다. 상담을 받아봤기에 그 효과도 이해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나를 드러내야 하는 그 번거로움과 통증도 이해하고 있었다.


분명한 번아웃이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며] 자신을 내팽개쳤다. 바카라을 만드는 내내 그랬다. 바카라이 나오고도 그러했다. 그럼에도 자비는 없었다. 스스로에게 쉼을 허락하지 않았고, 항상 긴장했다. 바카라에는 아내의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아내와 비슷한 사람들이 나온다. 숨을 쉬지 못하는 사람들, 마음의 앙금이 엉겨붙어 분노로 슬픔으로 통증으로 번진 사람들, 절박한 사람들, 타인에게 휘둘리는 사람들, 말문이 막혀버린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내는 이 바카라을 만들었고, 원고를 몇 번이나 읽고 고치고 다듬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고 나는 초고부터 읽어보았다. 아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바카라에 한가득이지만, 바카라의 내부자가 되어버린 그녀는 그저 독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을 거치며 이 바카라이 완성되었다. 바카라의 제목은 [내면의 작은 방]이다.


모두의 내면엔 작은 방이 있다. 나의 내면은 정돈되어 있고, 엄격하며 훈육하고 혼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거긴 잔뜩 굳은 어린 창선이 있고,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과 긴장에 몸서리치고 있다. 아내의 내면에도 작은 방이 있다. 스스로 해내야 하고 모든 걸 이끌어야 하며, 원했든 아니든 모든 걸 선택해야 하는 부담과 공명심, 바카라임감, 억지로 만들어진 강한 페르소나가 있다. 금새 무너져내릴 작은 방, 그리고 어지럽게 널린 소품과 그 안에서 지쳐 쓰러진 아내가 보이기도 했다. 언제나 아내는 지쳐쓰러졌다. 자신의 방을 아껴주고 사랑하길 바라지만, 그녀의 20대 어느날처럼 그 방은 꽤나 혹독한 것 같다.


바카라 표지의 작은 방은 참으로 편안하고 아늑했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방은 그토록 평온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리 말하고 싶다. 혹시 오늘 지옥같은 하루를 보냈는가. 맥주와 포카칩, 대충 옷을 던져버리고 씻지도 않은 채 아무렇게나 맥주를 들이키고 싶은 날. 참을 수 없는 한숨과 욕설이 토사물처럼 올라올 것 같은 날. 나의 초라하고 작은 방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지긋지긋해지는 날이 있다면 그 날 읽기 좋겠다. 그랬으면 한다. 그냥 사두고, 그런 날 꺼내보길 바란다.


아내의 방도 조금 따뜻해지길 바라며. 사랑을 담은 위로와 당연한 응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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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정용실, KBS의 베테랑 아나운서이자 '공감의 언어'의 저자이기도 하다. 화려한 이력보다, 자기를 끝까지 몰아세우며, 번아웃을 겪는 와중에도 그것을 이해해보겠다며 또 공부를 시작했다는 작가님 남편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우린 다들 치열하고,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나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어색하고, 힘겨운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먼저 해본 작가가 조용히 길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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