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갈등 속에 조만식 장로의 선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늘날 우리 슬롯는 진보와 보수, 이념과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폭력적인 편가르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자기 확증의 틀을 짜고, 정치는 증오를 조직하여 권력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이념의 폭풍 한복판에서 인간의 존엄과 기독교적 사랑, 그리고 평화는 과연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까요? 그 준엄한 해답을 우리는 70여 년 전 평양에서 침묵으로 저항했던 고당 조만식 장로의 삶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조만식 장로의 비폭력은 단순한 나약함이나 타협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비폭력은 간디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으나, 그 본질적인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에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능력이 없음이 아니라 힘이 있으나 스스로 철저히 절제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해방 직후 이북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그는 군중을 선동해 김일성 세력과 맞설 수 있는 거대한 도덕적 권위를 가졌습니다. 아마 그가 선동했다면 피를 흘리며 싸울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웃들이 겪어야 할 폭력의 대가를 예견하고 자발적으로 고삐를 잡았습니다. 군중을 동원해 전면전을 벌이는 대신 가택연금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비겁한 굴복이 아니라, 신앙적 절제에 기반한 온유함의 위대한 실천이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선택은 절대화된 이념이라는 우상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순교적 신앙이었습니다. 신탁통치를 지지하라는 소련 당국과 김일성 세력의 거센 압박은 단순한 정치적 요구를 넘어, 유한한 권력이 역사적 정당성을 자처하며 신의 자리에 오르려는 유사 종교적 우상숭배와 같았습니다. 조만식 장로는 바빌론의 금 신상 앞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던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타협을 통해 살아남는 길 대신, 죽음을 예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를 선택했습니다. 1946년 고려호텔 연금 이후 1950년 처형당하기까지 그가 보여준 침묵의 세월은, 세속적 보상이 없더라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겠다는 태도이며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고백이자 가장 강력한 설교였습니다.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자기 진영의 참호를 더 깊게 파고 분노를 동력 삼아 권력을 다지지만, 조만식 장로는 어떤 군중도 선동하지 않았고 어떤 적도 손가락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와 양심, 그리고 이웃을 지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참된 평화는 말로만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누군가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 치러야 하는 고귀한 값입니다. 자기 진영을 이롭게 하려 타인을 희생시키는 이 시대의 우상숭배 속에서, 이웃을 위해 스스로 희생을 택한 조만식 장로의 조용한 거부는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기독교적 평화와 사랑의 가치가 무엇인지 엄중하게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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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 조만식의 기독교 민족주의와 순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