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떤 언어로 말씀하셨을까요? 구약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고, 신약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킹제임스버전 주의자들은 1600년 영어로 쓰여진 성경만이 참된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 도대체 어떤 언어가 하나님의 언어일까요?
특정 시대의 언어나 번역본에만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가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고대 교부들의 논쟁은 날카로운 경종을 울립니다. 율리야 미네츠의 저서 바벨의 완만한 추락은 인류가 종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특정 언어를 신성시하고 배타적 장벽을 쌓아왔는지 정밀하게 분석합니다.
과거 헬레니즘의 위기 속에서 히브리어를 하나님의 언어로 격상시켰던 유대교의 시도나, 오늘날 1611년 흠정역만을 절대시하는 영적 독선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의 성벽은 복음을 배타적 클럽의 회원증으로 전락시킬 뿐입니다. 반면 4, 5세기의 위대한 교부들은 하나님의 언어라는 독점적 울타리를 과감히 해체했습니다. 시리아의 에프렘은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라는 옷을 입고 스스로 낮아지셨음을 선포했습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는 오순절 사건을 통해 신적 소통이 언어의 제약을 넘어 각 사람의 내면으로 직접 침투함을 논증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하나님의 뜻은 언어 너머의 순수한 이해로 전달된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교부들에게 언어는 독점의 무기가 아닌 환대와 소통의 도구였습니다. 영원한 로고스가 육신이 된 성육신 사건 자체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번역 행위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과 평화, 정의는 편안한 자기만의 언어라는 성벽 안에서 머물 수 없습니다. 오늘날 정치, 교리, 세대의 언어로 흩어진 우리 안의 바벨탑을 허무는 유일한 도구는 바로 번역입니다. 타자의 낯선 숨결 속으로 자신을 기꺼이 번역해 넣는 겸손과 소통의 영성이야말로 복음이 우리 삶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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