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예약

(떨리는 장문)

by장기표

내일 드디어 병원을 예약해보려 한다.
이 문장을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조금 떨린다. 누군가에게는 병원 예약이 그저 전화 한 통, 혹은 앱으로 몇 번 누르면 끝나는 간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과정이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다시 한번 마음을 내고, 다시 한번 나를 돌보기 위해 움직여보려는 지금, 떨려오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공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적어도 머리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불안이 극도로 높아졌을 때 몸으로 나타나는 신호.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막히는 것 같고, 손끝이 저리거나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 이러다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순식간에 온몸을 덮쳐오는 상태. 검색도 많이 해봤고, 관련된 글도 읽어봤고, 스스로 이해하려고 애쓴 시간도 있었다. 그래서 이 증상이 정말로 위험해서라기보다, 내 몸과 마음이 한계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안다는 것과 괜찮아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머리로는 “이건 공황 증상일 수 있어”, “곧 지나갈 거야”, “몸이 보내는 경고일 뿐이야”라고 말해도, 막상 그 순간이 오면 몸은 내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 불안은 생각보다 빠르고, 몸은 생각보다 정직하다. 내가 괜찮은 척하고 넘어가려 해도, 몸은 어느 순간부터 더는 모르는 척하지 못하게 신호를 보내온다.

그래서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나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할까. 내가 느끼는 이 불안의 이름을 어떻게 설명해줄까.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할까, 아니면 오래 쌓인 긴장과 불안이 몸으로 터져 나온 것이라고 할까. 혹은 내가 아직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어떤 감정이 있다고 말해줄까.

내 기저에는 어떤 불안이 있을까.
나는 무엇을 그렇게 오래 참고 있었을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긴장하게 만들었을까.

이 질문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실 답을 알고 싶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다. 내가 정말로 마주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불안은 겉으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너무 오래 묵혀둔 감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방 한구석에 쌓아둔 상자를 여는 일 같다. 분명 언젠가는 열어봐야 하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몰라 자꾸만 미루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직접 그 기저를 대면할 수 있을까.
혹시 너무 아프지는 않을까.
괜히 건드렸다가 더 흔들리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병원을 예약하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지쳐버린다. 병원을 선택하는 것부터가 이미 하나의 난관이다. 어떤 병원을 가야 할지, 어떤 선생님을 만나야 할지, 리뷰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거리는 얼마나 가까운 곳이 좋을지, 예약 가능한 시간은 있을지, 비용은 어느 정도일지, 첫 상담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하나하나 따져보면 생각보다 고려할 것이 많다. 마음이 힘들어서 도움을 받으려는 건데, 도움을 받으러 가는 과정마저 이렇게 복잡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조금 아이러니하다.

그래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찾아보려 한다.
내가 꾸준히 갈 수 있는 거리인지, 예약 시간이 내 일정과 맞는지,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분위기인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는 곳인지, 상담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지. 완벽한 병원을 찾으려 하기보다, 지금의 내가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딱 맞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보고 맞지 않으면 다시 찾아볼 수도 있고, 한 번의 선택이 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이 당연한 말도 막상 내 일이 되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잘못 선택하면 어떡하지?’
‘내가 말을 잘 못 하면 어떡하지?’
‘별것 아닌 일로 온 사람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막상 가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나오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내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도 나의 상태라는 걸 인정해보려 한다. 지금의 나는 불안을 겪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니 나를 다그치기보다는,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일은 우선 병원을 찾아보고, 예약 가능한 곳을 확인해보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전화를 해야 한다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걸어볼 것이다. 앱이나 홈페이지 예약이 가능하다면 그것부터 시도해볼 수도 있다. 통화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미리 말할 내용을 적어두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초진 예약하고 싶습니다.”
“공황 증상과 불안 때문에 진료를 받고 싶습니다.”
“가능한 날짜와 시간이 있을까요?”

이 정도 문장만 준비해도 조금은 덜 막막할 것 같다. 막상 전화를 걸면 목소리가 떨릴 수도 있고, 머릿속이 하얘질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완벽하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병원은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있는 곳이니까. 오히려 내가 너무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어야 한다.

일정을 맞추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나는 야간근무를 하고 있다. 밤에 일하고, 낮에는 쉬어야 하는 생활은 몸의 리듬도 마음의 리듬도 쉽게 흐트러뜨린다.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할 때 나는 일을 마무리하고, 사람들이 잠드는 시간에 나는 깨어 있어야 한다. 이런 생활 속에서 병원 예약 시간을 맞추는 건 생각보다 복잡하다. 잠을 줄여야 할 수도 있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번에는 많은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오늘도 야간근무를 하면서 글을 쓴다.
고요한 시간이라고 해야 할지, 이상하게 마음이 더 선명해지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밤에는 생각이 깊어진다. 주변은 조용해지고,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이상하게 더 예민해진다. 낮에는 그냥 지나쳤던 감정들이 밤이 되면 하나둘 고개를 든다. 피곤해서 마음이 더 조급해지는 건지, 아니면 글을 쓰려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다 보니 이런 감정이 더 또렷하게 느껴지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몸이 피곤하면 마음도 약해지고, 마음을 들여다보면 평소에 덮어두었던 감정들이 보인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때로 위로가 되면서도 동시에 조금 아픈 일이다. 적어 내려가는 순간, 내가 외면하던 마음들이 문장으로 모습을 갖추기 때문이다. 막연한 불안이 문장이 되고, 문장이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완전히 숨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에게 정리이면서 대면이고, 위로이면서 확인이다.

나는 지금 불안하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 두 가지 마음이 함께 있다.

예전 같았으면 불안한 마음을 느끼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른다. 왜 이 정도도 못 견디냐고,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왜 남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 못하냐고 나를 몰아세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불안은 내가 약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래 버텨왔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분명히 있다.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바라보는 일은 나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보려 한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괜찮다. 당장 모든 불안이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내일 병원을 예약하려고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움직임이다. 병원 이름을 검색하는 것도, 후기를 읽어보는 것도, 예약 가능 시간을 확인하는 것도, 전화 버튼 앞에서 망설이는 것도 모두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나를 돌본다는 건 꼭 대단한 결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물 한 잔을 마시는 일이고, 잠깐 눈을 감고 숨을 고르는 일이고, “지금 힘들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일이다. 그리고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다. 혼자서 다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것도 나를 아끼는 방식일 것이다.

병원에 가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첫 진료에서 내가 내 마음을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준비해간 말의 절반도 못 할 수 있다. 어쩌면 막상 앉자마자 눈물이 날 수도 있다. 혹은 너무 긴장해서 별일 아닌 것처럼 웃으며 말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해보려 한다. 그 자리에서의 나도 나이고,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것 또한 중요한 정보일 테니까.

나는 전문가가 내 마음의 모든 답을 한 번에 찾아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혼자서만 맴돌던 질문들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한지, 어떤 상황에서 증상이 더 심해지는지, 내 몸이 어떤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 내 안의 불안을 단번에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시간도 내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지금은 너무 크게 느껴지는 불안도, 지나고 보면 “아, 그때 내가 정말 힘들었구나. 그래도 어떻게든 나를 살피려고 애썼구나” 하고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날의 내가 지금의 나를 너무 안쓰럽게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조금 기특하게 봐주었으면 좋겠다. 무섭고 떨렸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고, 도움을 구하려 했다고, 자기 자신을 외면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3파트는 이전 파트보다 조금 더 유쾌하게 풀어가려고 한다. 사실 그동안 글이 너무 무겁기만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내가 겪은 감정을 억지로 가볍게 만들거나, 사실과 다르게 각색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힘들었던 건 힘들었던 대로 남겨두어야 한다. 아팠던 장면을 억지로 웃긴 장면으로 바꾸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안에도 분명 소소한 재미와 살아 있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불안 속에서도 사람은 웃는다.
힘든 날에도 이상하게 웃긴 일이 생기고, 지친 밤에도 작은 농담 하나가 숨통을 틔워준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출근했는데 편의점에서 고른 삼각김밥이 예상보다 맛있을 수도 있고, 야간근무 중에 괜히 사소한 일로 피식 웃게 되는 순간도 있다. 마음은 무너질 것 같은데 머리는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해서 혼자 어이없어질 때도 있다. 이런 장면들이야말로 어쩌면 내 삶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이야기가 단지 불안과 고통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분명 그 안에는 나름의 버팀, 유머, 민망함, 엉뚱함, 소소한 즐거움이 함께 있었을 것이다. 공황과 불안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이야기는 너무 어둡게만 흘러갈 수 있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힘든 와중에도 배는 고프고, 웃긴 장면은 웃기고, 좋아하는 음악은 여전히 좋고, 누군가의 다정한 말 한마디에는 마음이 조금 녹는다.

그래서 3파트에서는 그런 순간들을 조금 더 살려보고 싶다. 내가 느꼈던 소소한 재미를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싶다. 불안을 외면하기 위해 웃음을 넣는 것이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던 삶의 결을 보여주고 싶다. 어두운 방 안에서도 작은 불빛이 있으면 공간의 모양이 달라 보이듯, 내 글에도 그런 작은 불빛들을 놓아보고 싶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무거운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 유쾌한 결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일이 어쩌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억지로 웃기려고 하면 글이 어색해지고, 너무 가볍게 다루면 내가 겪은 감정이 흐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균형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삶이 그랬듯, 글도 한 가지 감정만으로 채워지지 않아도 된다.

나는 지금 병원 예약을 앞두고 있고, 여전히 불안하고, 야간근무 중 피곤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이야기를 조금 더 잘 써보고 싶고, 내 마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싶고, 내 삶을 너무 어둡게만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이 모든 마음이 한꺼번에 존재한다는 것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지도 모른다.

내일 예약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원하는 시간에 자리가 없을 수도 있고, 전화를 걸기까지 한참 망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시도해볼 것이다. 그리고 시도한 나를 너무 쉽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나를 돌보는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한 나를 버려두지 않기 위해서.
나는 내일 작은 용기를 내보려 한다.
그리고 그 용기가 아주 작더라도, 그것이 나를 다시 나에게 데려다주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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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장기표 작가입니다.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사유하고 사색하는 에세이스트 입니다 다양한 글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전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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