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인가?
얼마 전 회사에서 팀장 워크샵을 했다.
우리 회사 워크샵의 특징은 단어 그대로 워크(work)만 한다는 것이다. 8시 30분부터 18시 30분까지 꼼짝없이 회의실에 갇혀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는 숙박이 포함되어, 밤에는 다들 자유를 만끽하며 술자리를 가졌다. 삼삼오오 모여 숙소에서 맥주를 마시다, 한 팀장이 물어봤다.
"우리 내일 몇 시까지 회의실 가야 돼요? 벌써 12시 넘었는데 일어날 수 있으려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다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8시까지 도착하면 되니, 7시에 일어나서 아침밥은 건너뛰고 가면 되겠다."
모두 비슷한 심정으로 알람을 맞추는데, 우연히 보게 된 A 팀장의 알람 설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7시에 일어나기 위해 무려 10개의 알람을 맞춘 것이다. 그것도 6시 40분부터 2분 간격으로 열 번을 말이다.
호기심이 강하게 발동한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왜 그렇게 했냐고.
"못 일어날까봐 불안해서요. 다들 이 정도 맞추지 않나요?"
그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사실 나도 알람을 1개만 맞추지는 않아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 정도는 심하다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회사에 늘 일찍 나오고 성실하기로는 내노라하는 사람이다. 즉, 지각을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모범생 타입이랄까.
그의 대답은 의외로 '불안해서' 였다. 알람 없이도 일어날 것 같은 사람이 왜 불안할까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 모인 팀장들이 가진 공통점이 보였다. 비단 A팀장 뿐 아니라, 대부분이 불안을 달고 산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식단 관리를 하며 눈앞에 놓인 불닭볶음면을 애써 외면하는 B팀장은, 다시 살찔까봐 불안하다고 했다. 사장님의 총애를 받고 있는 C팀장은, 언제 사장님이 자신에게 화를 낼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그런 그들은 이미 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모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내가 다니고 있는 MBA 교실에서도 관찰된다.
대부분 40대 이상으로 슬롯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룬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불안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번에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바카라 아직 안 읽었는데, 나만 안 읽은 거 같아. 어쩌지?"
"중간고사 공부 하나도 안 했는데 시험 망치면 어떡하지?"
아이러니한 건 이들이 말한 '안했다'는건 전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업 전부터 도서관에 가서 2-3시간씩 예습을 하고, 주교재 말고 부교재까지 꼼꼼히 읽은 사람들이다. 회사에서 바쁜 틈에도 시간을 쪼개 매주 과제를 하고, 토요일 점심에도 이어지는 특강을 꼬박꼬박 빠지지 않고 듣는다. 그런데도 걱정을 하며 자신이 미처 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 마음을 졸인다. 다른 집단 사람들이 봤으면 잘난척하는 건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불안은 '진짜 감정'이 맞다.
이미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불안해하는 것일까.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충분히 즐기며 살아도 될텐데 말이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불안은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중 하나라고 말했다. 특히 미래를 잘 살고 싶은 욕구가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불안을 더 잘 느낀다고 했다. 더 나은 미래를 예측하고, 그 미래를 내가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불안으로 나타난단다.
알람을 10개 맞춰 놓는 행동은 게을러서가 아, 내일도 잘 해내고 싶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다. 불안은 우리를 한 번 더 확인하게 만들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론 불안이 너무 커지면 원동력이 아니라, 나를 갉아먹는 에너지로 쓰인다. 이미 해낸 것보다, 아직 하지 못한 것, 부족한 것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잘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한 채 계속 불안해서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한 번쯤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왜 불안한지, 만약 내가 걱정하는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불안이 나를 잠식할 것 같을 때 잠깐 멈춰서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 만으로도 조금은 진정될 것이다.
그리고 불안할 때마다 내가 그동안 해낸 것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취직을 못 할까봐 불안해했지만 회사를 그럭저럭 다니고 있고,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불안해 했지만 그 아이가 벌써 학교갈 때가 된 것처럼 말이다.
불안과 몇십년째 함께 하는 나 역시, 이 녀석을 늘 떼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어차피 기질상 불안을 아예 없앨 수는 없으니, 그 불안과 같이 잘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한번쯤은 시도해볼만 하지 않을까. 평생 같이 살려면 서로 맞춰주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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