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골목상권

신도시 골목상권

골목상권은 신도시에서도 만들어진다


지난주 세종시에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문화를 만드는 신도시는 어디일까요?” 여기서 문화는 미술관이나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걷고 만나고, 독립적인 가게와 브랜드를 경험하며, 그 도시만의 생활방식과 거리문화를 만들어내는 힘을 말한다.


수강생들의 답은 흥미로웠다. 일산, 동탄, 판교가 나왔다. 모두 계획도시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도시만의 라이프스타일과 거리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곳들이다. 강연을 마치고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찾아다닌 수도권 신도시에도 이런 동네와 거리가 적지 않았다.


강북에서 시작된 골목상권

한국에서 새로운 골목상권 문화는 서울 강북의 오래된 동네에서 먼저 나타났다. 홍대와 이태원을 시작으로 연남동, 경리단길, 익선동, 성수동 등으로 확산됐다. 오래된 저층 주거지의 작은 건물과 골목에 카페와 서점, 공방, 편집숍, 작업실 같은 독립적인 공간이 들어오면서 기존 상권과 다른 도시문화를 만들었다.


이후 골목상권은 강북에 머물지 않았다. 가로수길을 비롯한 강남 지역과 서울 곳곳으로 확산되면서 하나의 보편적인 도시문화가 됐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백화점과 쇼핑몰만 찾지 않았다. 걷다가 우연히 새로운 가게를 발견하고, 독립 브랜드를 경험하고, 거리 자체를 즐기는 것이 도시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그리고 이제 골목상권은 신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신도시에는 원래 골목이 없다. 대부분 아파트 단지와 넓은 도로, 큰 블록, 계획된 중심상업지구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일부 신도시에서는 전통적인 골목상권이 가진 도시적 장점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


신도시가 골목을 만들기 시작했다

신도시형 골목상권은 자연발생적인 골목을 복제한 것이 아니다. 저층 건축, 작은 필지, 쇼트블록, 촘촘한 가로망, 걷기 좋은 거리, 열린 1층, 작은 점포, 독립 브랜드와 문화 콘텐츠 등 전통적인 골목상권의 특성을 계획적으로 구현한 상권이다. 모든 요소를 갖출 필요는 없다. 각각의 신도시가 서로 다른 요소를 조합해 골목상권의 장점을 만들어낸다.


어떤 곳에서는 저층 건물과 작은 필지가 중요하고, 어떤 곳에서는 보행가로와 수변공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어떤 곳에서는 처음부터 건축가와 예술가, 출판인과 창작자를 모아 문화생산을 유도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대형 쇼핑몰이나 먹자골목과 다른 도시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간에서는 작은 가게와 독립 브랜드가 중요하다. 카페 하나가 목적지가 되고, 서점과 공방, 디자인숍과 작업실이 거리에 이유를 만든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거나 밥을 먹기 위해서만 방문하지 않는다. 거리를 걷고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며 그 동네만의 분위기와 문화를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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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신도시 골목상권

그동안 직접 찾아가거나 주목해 온 수도권 신도시의 골목상권을 꼽으면 다음과 같다.


일산 밤가시마을 — 밤리단길·보넷길

판교 백현동 카페거리

분당 정자동 느티로

일산 성저마을

서판교 운중동 카페거리

용인 보정동 카페거리

헤이리예술마을

앨리웨이 광교

동탄2 신리천 카페거리

동탄 레이크꼬모

파주출판도시

운정 가람마을 카페거리

송도 커낼워크


밤가시마을과 백현동, 성저마을, 운중동, 보정동은 저층 주거지와 작은 필지, 보행가로를 기반으로 상권이 형성됐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골목상권과 가장 닮아 있다. 정자동 느티로는 조금 다르다. 신도시 중심에서도 보행자 중심의 거리와 열린 1층 상업공간을 통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일찍 보여줬다.


헤이리예술마을과 파주출판도시는 건축과 문화생산 자체를 도시를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한 사례다. 예술가와 건축가, 출판사와 문화공간을 계획적으로 모으면서 신도시에서도 독립적인 문화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앨리웨이 광교와 동탄 레이크꼬모는 보다 최근의 계획형 모델이다. 큰 상업시설을 폐쇄적인 건물 안에 넣기보다 보행자 스케일의 공간과 작은 점포, 광장과 외부공간을 연결해 골목을 걷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만든다. 동탄 신리천 카페거리는 수변공간과 저층 상권이 결합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유형이다.


물론 이 목록은 잠정적이다.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더 좋은 사례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신도시 최고의 골목상권은 어디인가. 이 목록에서 빠진 곳이 있는지.


문화를 생산하는 신도시

한국의 골목상권은 서울 강북의 오래된 동네에서 시작해 서울 전역으로 확산됐고, 이제 신도시에서도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골목상권이 오래된 도시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에서도 계획할 수 있는 도시 모델임을 보여준다.


신도시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주택과 교통, 공원과 문화시설뿐 아니라 사람들이 걷고 독립 브랜드를 만나며 그 도시만의 생활문화와 거리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대도시권의 경쟁력은 결국 외곽 신도시들이 얼마나 독자적인 문화력을 갖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부터라도 신도시 조성의 목표에 문화력을 넣어야 한다. 주택을 공급하는 신도시를 넘어, 문화를 생산하는 신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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