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부인가

무엇을 위한 부인가


두 가지 약속

1970~80년대 퍼스널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IT 산업은 두 가지 약속을 내세웠다. 탈집중화와 탈물질화였다. 전자는 정보의 개방을 통해 개인을 거대 조직의 통제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전망이었고, 후자는 디지털 전환이 제조업의 환경 부담을 대체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한국에서도 IT는 기존 대기업 질서를 우회하는 산업으로 환영받았으며, 경제 민주화의 매개로 독해되었다.


약속의 역전

두 약속은 모두 역전되었다. 탈집중화를 표방했던 플랫폼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독과점 구조를 형성했다. 검색·소셜미디어·인공지능 각 영역이 소수 기업의 인프라 위에서 작동하며, 규모의 경제가 집중을 심화하는 구조가 고착되었다.


탈물질화의 약속도 마찬가지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제조시설은 수십 GW의 전력과 광역 송전망, 대규모 공업용수를 전제로 한다. 클라우드는 공중에 있지 않다. 전력망과 수계 위에 세워져 있다.


용인 산단이 드러내는 한계

환경 문제는 반도체 주요 생산지인 한국에 특히 큰 과제가 되고 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계획이 추진되던 2023년부터 이미 공업용수 확보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2024년 1월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팔당 취수장을 방문해 반도체 산업 용수 공급 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팔당 취수장은 수도권 24개 지자체 1,400만 명에게 하루 449만 톤의 생활·공업용수를 공급한다. 이 가운데 기흥·화성·평택 등 기존 반도체 단지에만 이미 하루 47만 톤, 전체 공급량의 10% 이상이 사용되고 있다. 환경부는 여기에 더해 용인 국가산단에 2031년부터 하루 20만 톤을 공급하고, 2034년까지 총 80만 톤 규모의 신규 수도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 공급량과 합산하면 수도권 반도체 산업의 공업용수 수요는 팔당 공급량의 20%를 넘어선다. 대규모 신규 수도시설 건설을 전제로 내건 것 자체가 기존 수자원 체계만으로는 대응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전남·광주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용인 산단 하나도 대규모 신규 인프라를 전제로 하는 상황에서, 최근에는 전남·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영산강·섬진강 수계를 활용해 하루 100만 톤 이상의 추가 용수 확보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한강 수계에서도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하나를 위해 2034년까지 대규모 수도시설을 새로 건설해야 하루 80만 톤을 공급할 수 있다고 했는데, 영산강·섬진강 수계에서는 어떻게 하루 100만 톤 이상의 추가 용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일까.


수자원의 전략적 중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식되고 있었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친환경 수열에너지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강과 댐, 호수의 물을 데이터센터 냉각에 활용하는 정바카라을 추진했다. 이름은 수열에너지지만, 급증하는 데이터센터의 냉각 수요를 친환경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바카라이었다.


다들 AI와 반도체 산업이 막대한 부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본 잡지의 제목이 떠오른다. 무엇을 위한 부인가? 깨끗한 공기와 물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어야 할 부일까?



참고문헌

환경부. 친환경 수열에너지 활성화 방안. 2020.6.30.

뉴1. 한화진 "용인 반도체 산단에 2031년부터 일 20만 톤 용수 공급". 2024.1.16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AI 시대의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