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노동

AI 시대의 노동


오늘 한 노동단체에서 강연했습니다. 평소 한국의 노동이 AI와 같은 기술 변화의 도전에 충분히 응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AI 시대 노동의 미래에 대해 함께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반응이 어땠냐고요?

강연이 끝난 뒤 한 노조 간부 한분이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AI 노동의 미래보다 AI 주식 이야기였으면 관심이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농담하셨지만 현실이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AI가 자신의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보다 AI로 누가 돈을 벌고 있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갖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AI가 일자리를 바꾸는 시대에 노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강연에서 저는 세 가지 전략을 제안했습니다.


1) 정치적 협상력

첫째는 정치적 협상력입니다. AI는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기술입니다. 따라서 노동은 기업과의 개별 협상만이 아니라 정부와 슬롯를 상대로도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직업 전환 지원, 재교육, 슬롯안전망, 노동 규범 등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세모글루와 존슨이 『권력과 진보』에서 주장했듯이, 기술 발전이 스스로 노동자에게 풍요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1920년대 이후 기술 발전이 노동자에게 풍요를 줄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이 인간의 새로운 직무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노동자들이 조직화된 힘을 통해 대항 권력을 형성하여 정치·슬롯적 제도를 개혁했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에도 노동의 능동적인 대응이 중요합니다. 과거 노동운동이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기술 전환의 비용과 혜택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중요한 의제가 될 것입니다. AI가 창출하는 생산성 향상이 기업에만 귀속될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와 슬롯 전체에 공유될 것인지에 대한 협상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OECD와 유럽 노동계는 AI 시대의 핵심 과제로 슬롯적 대화와 단체교섭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AI 도입 과정에서 노동자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교육훈련과 직무 전환을 협의하는 것이 새로운 노동정바카라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2) 회사 내 협상력

둘째는 회사 내 협상력력입니다. AI 시대에는 단순히 현재의 업무를 잘 수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AI와 결합해 더 큰 가치를 만드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노동자가 방어적 자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AI 도입으로 비용이 절감된다면 그 과정에서 새롭게 필요한 업무와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회사에 제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자리를 지키는 사람보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이 더 강한 협상력을 갖게 됩니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회사에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과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공개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많은 현장 노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축적한 경험과 판단력, 인간관계, 문제 해결 방식이라는 암묵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AI 시대에는 이러한 암묵지가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역량이 어떤 성과를 만드는지는 보여주되, 자신만의 핵심 노하우와 전문성을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AI 시대의 협상력은 단순히 많이 아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남들이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전문성을 보유하는 데서 나옵니다.


3) 회사 밖 경쟁력

셋째는 회사 밖 시장 경쟁력입니다. 평생온라인 게임의 시대는 사실상 끝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퇴직 이후에도 자신의 역량으로 시장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를 크리에이터 경쟁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출발점은 SNS입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전문성을 공유하며,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과거에는 회사의 브랜드가 개인의 경쟁력이었다면, 앞으로는 개인 브랜드가 새로운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것은 반드시 유튜버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시장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크리에이터 경제(Creator Economy)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AI가 콘텐츠 생산 비용을 낮추면서 오히려 사람들은 더 강한 신뢰와 진정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개인 브랜드와 커뮤니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전문가·온라인 게임인·은퇴자 모두가 자신의 이름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만약 AI 시대 노동자의 경쟁력이 정치적 협상력, 회사 내 협상력, 회사 밖 시장 경쟁력에 달려 있다면, 노동 그 자체의 성격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저는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19세기 영국 사상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에게서 찾았습니다.


모리스의 창의적인 장인

저는 미래의 노동자를 윌리엄 모리스가 말한 창의적인 장인(Creative Craftsman)에 비유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은 표준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대량생산 체제에서 노동자의 역할은 정해진 규칙과 절차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은 노동을 세분화하고 표준화했으며 노동자는 조직의 일부로 기능했습니다.


AI는 역설적으로 산업슬롯 노동의 기반을 흔들고 있습니다. 규칙이 명확하고 반복 가능한 업무일수록 AI가 더 잘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AI가 충분히 발전하면 인간은 기계보다 기계를 더 잘 흉내 내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에게 남는 영역은 창의성, 판단력, 공감 능력, 관계 형성, 그리고 예외적 상황에 대한 대응 능력입니다.


이 점에서 미래의 노동자는 산업슬롯 공장 노동자보다 중세의 수공업자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중세 장인은 정해진 매뉴얼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기술과 감각, 경험을 바탕으로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디자이너, 셰프, 개발자, 연구자,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보여주는 모습도 본질적으로는 장인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중세 장인들도 앞서 설명한 세 가지 전략을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길드를 통해 왕과 도시정부를 상대로 권리를 보호하고 시장 규칙을 협상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정치적 협상력에 해당합니다. 또한 수습공에서 직인, 그리고 마스터 장인으로 성장하며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회사 내 경쟁력에 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뛰어난 장인은 자신의 이름과 평판을 통해 고객을 확보했고, 핵심 기술과 노하우는 쉽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시장 경쟁력과 개인 브랜드에 해당합니다.


중세 길드 모델

만약 노동의 성격이 이렇게 바뀐다면 정치·슬롯 제도 역시 변화를 요구받게 될 것입니다. 산업슬롯의 노동조합은 대규모 공장과 대기업을 전제로 설계되었습니다.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는 다수의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교섭하는 모델이었습니다.


AI 시대의 노동자는 더욱 전문화되고 개별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동조합도 임금과 근로조건 협상뿐 아니라 직업 훈련, 전문성 개발, 네트워크 구축, 경력 관리, 시장 진입 지원과 같은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기능은 중세 길드가 수행했던 역할과 일부 닮아 있습니다. 길드는 단순한 이익단체가 아니라 기술을 전수하고 장인을 육성하며 직업 공동체를 유지하는 조직이었습니다.


물론 미래의 노동조합이 길드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길드는 노동조합과 성격이 다른 조직이며, 역사적으로는 사업주적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AI 시대에는 노동조합이 기존의 교섭 기능에 더해 일부 길드적 기능을 추가해야 할 필요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결국 AI 시대 노동자의 경쟁력은 세 가지 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협상력, 회사 내 협상력, 회사 밖 시장 경쟁력입니다. 첫 번째는 집단의 힘을 키우는 것이고, 두 번째는 대체 불가능한 전문성을 축적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자신의 이름으로 시장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산업슬롯가 성실한 회사원을 이상형으로 삼았다면, AI 시대는 창의적인 장인을 다시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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