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도시가 ‘창조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문화지구를 조성하고, 스타트업 캠퍼스를 만들고, 예술가를 유치하고, 복합개발을 추진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잘 제기되지 않는다. 실제로 세계의 창조도시는 언제, 어떻게 등장했는가.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우리가 창조도시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도시 문화가 사실상 1990년대에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뉴욕의 다운타운 문화, 시애틀의 그런지, 포틀랜드의 힙스터 문화, 베를린의 클럽 문화, 도쿄 시모키타자와와 우라하라 문화, 서울 홍대 문화 모두 결정적 전환점은 1990년대였다.
창조도시는 도시계획이 만든 결과라기보다, 1990년대의 문화운동과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도시 공간 위에 남긴 흔적에 더 가까웠다.
냉전이 끝난 뒤 세계는 묘한 낙관주의 속으로 들어갔다. 인터넷이 등장했고, 디지털 기술은 인간을 해방시킬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사람들은 기존 산업슬롯와 소비주의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이들은 부모 세대처럼 교외 대형주택과 자동차 중심 삶을 선망하지 않았다. 대신 도심의 작은 아파트, 골목길 카페, 독립 서점, 라이브하우스, 빈티지 숍, 자전거, 지역 커뮤니티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문화의 핵심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의 발견이었다.
미국에서는 시애틀 그런지와 인디 록이 등장했다. 서브 팝(Sub Pop) 같은 독립 레이블들은 메이저 시스템 밖에서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유통했다. DIY(Do It Yourself) 정신은 음악을 넘어 도시문화 전체로 확산되었다. 밴드들은 직접 포스터를 만들고 공연장을 섭외했으며 팬들과 연결되었다.
텔레비전도 변했다. 《프렌즈》와 《사인펠드》는 교외 가족 중심 드라마 대신 도심 청년들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뉴욕의 작은 아파트와 카페 문화는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이 되었다. 척 클로스터만은 《The Nineties》에서 1990년대를 “무관심과 열정, 낙관주의와 냉소주의, 진정성에 대한 갈망과 상업주의의 팽창이 공존했던 시대”로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문화 변화가 단순한 취향의 변화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문화는 도시의 공간 구조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산업슬롯가 만든 교외 중심 구조에서 다시 다운타운 중심 구조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20세기 미국의 이상적 삶은 서버번(Suburb)이었다. 교외 단독주택에서 살며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삶. 산업슬롯가 만든 전형적 라이프스타일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젊은 세대는 다른 삶을 원하기 시작했다. 도심에서 일하고, 걷고, 만나고, 소비하고, 창작하는 삶이었다.
필자가 2017년 골목길 자본론에서 정리한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 개념은 바로 이 변화를 설명한다. 당시 젊은 세대는 백화점과 쇼핑몰보다 골목길의 독립 상점을 선호했고, 획일적 소비보다 개성과 취향을 중시했다. 홍대, 이태원, 브루클린, 포틀랜드,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같은 지역들이 동시에 부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곳들은 새로운 노동 방식과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공간이었다. 카페는 단순한 음료 판매 공간이 아니라 작업실과 사무실 역할을 했고, 독립 서점은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으며, 라이브하우스는 지역 창작 생태계의 플랫폼으로 기능했다. 1990년대 이후 창조도시는 단순히 문화시설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하는 도시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사용하는 ‘창조도시(Creative City)’라는 개념 자체도 바로 이 시대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도시학자 Charles Landry는 1990년대 후반부터 ‘창조도시’를 본격적으로 제안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명확했다. 산업도시는 쇠퇴하고 있었고, 앞으로의 도시 경쟁력은 공장과 인프라가 아니라 문화, 창의성, 다양성, 네트워크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대표 저서인 『The Creative City』(2000)는 사실상 1990년대 도시 변화를 이론화한 작업이었다. 런던, 베를린,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에서 나타난 문화 기반 도시재생과 다운타운 부활 현상을 설명하려 했던 것이다.
이어 Richard Florida는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2002)를 통해 비슷한 흐름을 더욱 대중화했다. 그는 첨단기술 산업조차 결국 창조적 인재들이 선호하는 도시 환경에서 성장한다고 주장했다. 다양성, 개방성, 거리 문화, 예술 생태계, 카페 문화 같은 요소들이 도시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설명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이론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1990년대 도시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던 문화적 변화를 뒤늦게 개념화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창조도시론이 창조도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1990년대의 문화운동과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이 먼저 등장했고, 도시학자들이 이를 설명하기 위해 창조도시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 흐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가 바로 Portland다. 2011년 방영된 TV 시리즈 《포틀랜디아》는 포틀랜드를 “1990년대의 꿈이 살아있는 도시”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플란넬 셔츠를 입고 자전거를 타며, 독립 서점과 수제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고, 파트타임 일을 하며 밴드를 했다. 물론 이 드라마는 풍자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풍자가 현실에 기반했다는 점이다.
포틀랜드의 핵심은 힙스터 미학이 아니었다. 동네 기반 창조 생태계였다. Alberta Arts District, Mississippi Avenue, Division Street 같은 지역에서는 예술가와 독립 사업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갤러리가 들어오고, 카페가 생기고, 독립 서점과 공방이 이어졌다.
누군가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도시의 창조성은 동네 단위의 생활문화와 자생적 네트워크에서 발생했다. 특히 포틀랜드가 중요한 이유는 창조도시의 핵심이 대기업이나 첨단산업단지가 아니라 로컬 비즈니스와 라이프스타일 산업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수제 맥주, 스페셜티 커피, 독립 디자인, 공예, 메이커 문화, 자전거 문화 같은 산업들은 모두 대규모 제조업이 아니라 지역 기반 창조산업이었다.
이 점에서 포틀랜드는 오늘날 많은 도시정바카라이 놓치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창조도시는 “개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적 가치관이 축적되면서 형성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다. 민주화 이후 대학가는 새로운 문화적 에너지로 가득 찼다. 민중문화 운동과 함께 홍대 앞 언더그라운드 씬이 성장했다. 클럽 드럭, 롤링홀 같은 소규모 공연장에서는 메이저 시스템 밖의 음악이 실험되었다.
중요한 것은 음악 장르가 아니라 방식이었다. 밴드들은 스스로 기획하고, 스스로 홍보하며, 팬들과 직접 연결되었다. 오늘날 크리에이터 경제와 매우 닮은 구조였다.
홍대는 단순한 유흥가가 아니었다. 예술대학, 작업실, 라이브하우스, 카페, 디자인 스튜디오, 독립 서점, 골목상권이 결합된 생활권 기반 창조 생태계였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낮은 임대료와 낡은 저층 건물이었다. 당시 홍대 주변은 오늘날처럼 비싼 상권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된 주택과 소규모 상가들이 뒤섞인 비주류 공간이었고, 바로 그 조건이 젊은 창작자들의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이 문화는 2000년대 이후 성수동, 연남동, 망원동, 한남동으로 확산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창조도시 역시 대규모 도시계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 임대료가 낮은 구도심 골목에서 시작되었다.
1990년대는 단순한 유행의 시대가 아니었다. 산업슬롯적 삶의 방식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기였다. 교외 대량소비 중심 삶 대신, 도심의 창조적 생활문화가 부상했다. 사람들은 효율보다 취향, 규모보다 개성, 체인보다 로컬, 자동차보다 보행, 소비보다 경험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변화가 오늘날 창조도시의 원형을 만들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창조도시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질문은 이것에 가깝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운동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1990년대의 창조도시는 도시계획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꿈꾼 사람들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