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驛舍)가 두 도심을 도보로 연결하는 신도시


역사(驛舍)가 두 도심을 도보로 연결하는 신도시


해운대에서 세미나가 있었다. 회의 참석에 앞서 하루 먼저 부산에 내려왔다. 목적지는 일광신도시였다.


부산 신도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신도시 시리즈를 쓰면서부터다. 신도시는 계획된 격자 위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쌓이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동네가 된다. 그 과정이 궁금했다. 수도권 신도시와 달리 부산의 신도시는 처음부터 다른 조건 위에 서 있었다. 인구가 줄고 있는 도시, 지형이 험한 땅, 복수의 도시 수요를 동시에 받아내야 하는 위치. 그 조건 위에서 일광신도시가 어떤 실험을 하고 있는지 걸어서 확인하고 싶었다.



1. 부산역에서 일광까지, 80분

부산역에서 1호선을 탔다. 교대역에서 동해선으로 환승한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창밖 풍경이 바뀐다. 해운대를 지나고 송정을 지나고 기장으로 들어서면 고밀도 아파트 숲이 사라지고 해안선이 가까워진다. 부산역에서 일광역까지 총 80분. 같은 부산광역시 안의 이동이지만, 도착한 곳은 전혀 다른 환경이다.


동해선은 이 이동의 의미를 만들어낸 장치다. 2016년 개통 당시 비수도권 최초의 광역전철로, 교대역에서 부산 도시철도 1호선과 환승되며 부산 도심과 기장군을 처음으로 직접 연결했다. 이전까지 기장은 자동차로 가는 곳이었다. 전철이 생기면서 기장은 부산 도심 생활권 안으로 들어왔다.


부산의 다른 지역들—원도심, 서면, 해운대—이 항만과 상업, 관광의 기억 위에 있다면, 기장은 다르다. 어업과 농촌, 해안선의 결이 여전히 살아 있다. 기장군의 대표 어항인 대변항은 조선시대부터 포구가 발달한 곳으로, 오늘날 국내 멸치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전국 최대의 멸치 산지다. 기장미역과 기장다시마는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된 특산물이다. 산업도시 부산의 연장이 아니라, 동해안 어촌 문화권의 남쪽 끝이 이곳이다.


그 기장군의 중앙부에 일광읍이 있다. 일광(日光)이라는 이름은 서쪽 일광산에서 왔다. 1885년 《기장현 읍지》는 일광산을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곳'이라 기록했다. 읍소재지는 삼성리이며, 일광해수욕장이 이 삼성리에 위치한다. 2022년 일광면에서 일광읍으로 승격되었다.


기장은 오래전부터 일본과 긴장 관계 속에 있었던 해안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장 쿠로다 나가마사가 기장읍 죽성리에 왜성을 쌓았다. 부산왜성과 울산 서생포왜성을 잇는 병참선의 요충지였다.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기장 남산봉수대는 왜구를 감시하던 거점이었다. 바다와 접한 이 땅의 역사는 교류와 방어 사이 어딘가에 오래 놓여 있었다.


기장 출신 인물로 가수 최백호가 있다.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 출신으로, 어린 시절 어머니가 교편을 잡았던 일광초등학교를 다녔다. '낭만에 대하여'의 그 낭만 가객에게 기장과 일광은 성장의 땅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부산은 바다, 어머니와 함께 저의 근간 정서입니다. 특히 기장은 제가 자란 곳이라 애정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


2. 신도시: 역이 두 도심을 잇는다

일광역에서 내리면 신도시가 먼저 맞는다. 일광신도시는 2000년대 중반 오시리아 관광단지 개발과 함께 계획되었다. 관광단지의 배후 주거지로 출발했지만 도시개발사업으로 전환되며 약 14년에 걸쳐 9,900세대 규모로 완성된 '부산 마지막 미니 신도시'다. 뒤로는 산, 앞으로는 바다. 공원과 녹지가 도시 구조의 중심을 이루고 보행 녹지축이 길게 이어진다. 한국 신도시에서 보기 드문, 자연과 일상이 긴밀하게 결합된 공간이다.



역 광장에서 예상 밖의 풍경을 만났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가 아니라 역 앞 공공 광장에서. 역사(驛舍)와 연결된 광장이 생활의 중심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한국 신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이 신도시의 핵심은 연결 구조다. 일광역이라는 하나의 거점이 신도시와 구도심을 동시에 향해 열려 있다. 신도시 주민이 걸어서 역으로 향하고, 구도심 주민 역시 같은 역으로 모여든다. 이 교차점에서 두 도심은 처음으로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대부분의 신도시가 기존 마을과 단절된 채 독립적으로 조성되는 것과 달리, 일광은 처음부터 구도심과의 통합을 목표로 했다.


역사(驛舍)를 통한 도보 연결만이 아니었다. 철도 하부를 관통하는 도로, 과선교, 터널형 진입도로, 국도 확장까지, 신도시 조성과 함께 두 도심을 잇는 자동차 도로가 여러 방향으로 신설되었다. 연결에 이 정도의 공을 들인 신도시는 흔하지 않다. 이 도시의 기획자들이 남긴 문장이 있다. "신도시는 절대 고립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신·구 두 도심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생활권으로 조화될 때, 행복하고 안정적인 신도시가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역사(驛舍)가 두 도심을 도보로 연결한다. 이것이 일광신도시 모델의 핵심이다.


그러나 신도시 상가는 대부분 공실이다. 한국 신도시 상가의 고질적 문제, 과잉 공급의 저주를 이곳도 피하지 못했다. 넓고 깨끗하지만 텅 빈 상가 거리가 이어진다. 역 광장의 아이들과 공실 상가는 같은 신도시 안에서 공존하는 두 개의 현실이다.



3. 구도심: 격자 골목의 활력과 찐빵 골목

역사를 통해 구도심으로 넘어가는 순간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다. 격자형으로 구획된 골목에 오래된 가게들이 촘촘하다. 사람이 있고 소리가 있고 냄새가 있다. 유명 맛집들이 골목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점심시간 전부터 웨이팅이 생긴다. 신도시 상가가 공실로 비어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구도심 상권은 살아 있다.


그 중심에 찐빵 골목이 있다. 세 집이 나란히 늘어선 이 골목은 일광 구도심을 상징하는 풍경이 되었다. 직접 빚은 찐빵과 만두를 쪄내는 찜통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호찐빵 앞에 줄이 가장 길었다. 기다리는 사람들, 포장을 받아 드는 사람들, 그 옆을 무심히 지나는 동네 주민들. 이 골목 하나가 구도심 생활 상권의 온도를 보여준다.


구도심 상권이 살아 있는 이유는 신도시와의 관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신도시 주민들이 역을 통해 구도심으로 넘어온다. 공실이 가득한 신도시 상가 대신, 오래된 골목의 맛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역이 두 도심을 연결한다는 명제는 상권의 차원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다.



4. 해변: 관광지가 아닌 생활의 바다, 그리고 크리에이터 타운의 가능성

구도심 골목에서 걸어 나오면 일광해변이다. 이곳은 해운대나 광안리와 다르다. 관광객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 아니라 주민이 매일 걷는 해변이다. 아침 산바카라, 저녁 바람, 주말의 여유가 모두 이 해변과 연결된다. 만(灣)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지형 덕분에 파도가 잔잔하고 해변의 표정이 조용하다. 바다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배경이다.


일광해변은 관광지가 아니다. 진정한 해변 라이프스타일을 일상으로 누리는 공간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이 조건이 크리에이터 타운의 씨앗이 될 수 있는가.


크리에이터 타운은 계획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임대료가 감당 가능하고, 생활이 풍요롭고, 외부에서 알아볼 수 있는 장소성이 있을 때, 크리에이터들이 스스로 모여든다. 일광은 이 세 조건을 부분적으로 갖추고 있다. 신도시 공실 상가는 역설적으로 낮은 임대료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해변 일상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은 서울이나 해운대가 제공할 수 없는 고유한 생활환경이다. 그리고 동해선이라는 광역전철이 부산 도심과의 접근성을 확보해 준다.


부산역에서 80분, 해운대에서 20분. 멀지 않다. 해변을 걷고, 찐빵 골목에서 간식을 사고, 역 광장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는 일상. 이것이 크리에이터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라면, 일광은 부산에서 해변 라이프스타일이 가능한 크리에이터 타운의 유력한 후보지다. 아직 싹이 트기 전이다. 그러나 조건은 갖춰지고 있다.


결론

다시 일광역으로 돌아왔다. 동해선을 타고 해운대로 향했다. 방금 걸어온 공간들이 반대 방향으로 스쳐갔다. 20분이 걸렸다.


일광신도시는 완성된 도시가 아니다. 역 광장의 아이들과 공실 상가, 살아 있는 구도심 골목과 조용한 해변이 공존하는 과도기의 공간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도시가 보여주는 방향이다. 단절이 아니라 연결, 개발이 아니라 축적, 관광이 아니라 생활. 이 세 가지 전환이 이곳에서 동시에 시도되고 있다.


그 중심에 하나의 단순한 구조가 있다. 역(驛舍)이 두 도심을 도보로 연결하는 구조. 이 구조가 작동할 때, 신도시는 더 이상 신도시가 아니다. 동네가 된다. 그리고 동네가 된 해변 도시에, 언젠가 크리에이터들이 모여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