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물질주의의 시대

탈물질주의의 시대


소확행, 워라밸, 로컬 창업, 제주 이주.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한국 슬롯를 달군 이 키워드들의 공통 뿌리가 탈물질주의다.


탈물질주의(post-materialism)는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가 1970년대 처음 개념화한 가치 체계다. 경제적 생존이 어느 정도 보장된 슬롯에서 사람들이 물질 이상의 것을 추구하기 시작할 때 나타난다. 탈물질주의의 4대 가치는 삶의 질, 개성, 다양성, 슬롯적 윤리다. 물질주의는 그 반대다. 삶의 질 대신 생존과 안전, 개성 대신 획일적 성공 기준, 다양성 대신 서열과 위계, 슬롯적 윤리 대신 자산 증식을 우선한다. 좋은 집은 아파트여야 하고, 좋은 직업은 대기업이어야 하며, 좋은 삶은 남들과 같아야 한다는 감각이다.


이 가치 체계는 언제 시작되었고, 무엇을 만들어냈으며, 왜 후퇴했는가. 그리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1. 탈물질주의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탈물질주의의 씨앗은 1960년대에 뿌려졌다. 히피 운동은 물질적 풍요를 거부하고 자연, 공동체, 자유를 선언했다. 그러나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은 1990년대였다. 결정적인 차이는 경제적 지속 가능성이다. 히피는 코뮌으로 후퇴했고, 코뮌은 오래가지 않았다. 탈물질주의적 삶의 방식이 비즈니스가 되고, 도시 문화가 되고, 하나의 산업이 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미국에서는 시애틀 그런지와 인디 록 씬이 기폭제였다. 서브팝 같은 독립 레이블이 메이저 음반사 없이 자생적 유통망을 만들었고, 밴드들은 직접 녹음하고, 포스터를 붙이고, 팬들과 직접 만났다. 이 DIY 정신이 포틀랜드의 독립 서점과 수제 맥주 양조장으로, 브루클린의 인디 패션 브랜드로 번졌다. 힙스터는 히피와 달리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도시 안에서 대안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약 10년의 시차가 있다. 1990년대 홍대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이 씨앗이었다면, 탈물질주의가 소비 가능한 라이프스타일로 정착한 것은 2000년대 초중반이다. 삼청동 카페, 홍대 독립 서점, 이태원 편집숍이 차례로 등장했다. 골목길이 단순한 이면도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언어가 된 것도 이 시기다. 제주 이주 열풍이 절정에 달한 2010년대 초반, 탈물질주의 라이프스타일은 한국 슬롯에서 주류 감수성의 위치에 올랐다.


2. 탈물질주의 시대를 견인한 기업, 브랜드, 도시

탈물질주의 시대를 이해하려면 세 가지 층위를 함께 봐야 한다. 기업, 브랜드, 그리고 도시다.


기업 차원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애플이다. 아이팟과 아이폰은 단순한 기술 제품이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슬로건으로 기술을 탈물질주의적 세계관과 결합시켰다. 애플의 고객은 스마트폰을 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선언했다. 이후 등장한 D2C(Direct-to-Consumer) 브랜드들 — Warby Parker, Glossier, Allbirds, Away — 은 이 문법을 계승했다. 제품보다 세계관을 먼저 팔았고, 소비자는 브랜드의 가치에 공명하며 지갑을 열었다.


한국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가 상징적이다. 제주 자연을 원료 삼아 2009년 자연주의 브랜드로 정체성을 재정립한 이니스프리는 2015년 로드샵 1위에 오르며 제주를 K뷰티의 원산지로 알렸다. 하나의 기업이 하나의 섬을 탈물질주의 브랜드로 만든 사례였다.


도시 차원에서는 포틀랜드가 서구의 원형이다. 2011년 시작된 TV 코미디 시리즈 《포틀랜디아》는 포틀랜드를 힙스터 문화의 수도로 각인시켰다. 쇼의 첫 에피소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1990년대의 꿈이 포틀랜드에서 살아있어." 야망 대신 자기 속도, 경쟁 대신 취향, 스펙 대신 감각으로 사는 사람들의 도시. 포틀랜드의 힙스터 생태계는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Alberta Arts District는 예술가들이 값싼 공간을 찾아 모이면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었고, 갤러리, 카페, 독립 상점이 하나씩 뒤따랐다. 아무도 설계하지 않은 생태계였다.


한국에서는 홍대-이태원-연남동-망원동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골목상권이 그 역할을 했고, 제주가 그 연장선 위에 있었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저층 건축 환경, 저렴한 임대료, 그리고 외부의 기획 없이 자발적으로 모여든 크리에이터들이다.


3. 변곡점: 2015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

2015년은 전환의 해다. 글로벌과 한국이 동시에 방향을 바꾼 드문 사례다.


한국에서는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4% 넘게 오르며 부동산 시장이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2017년 비트코인 열풍이 뒤따랐다. 경제 규모 대비 암호화폐 거래량이 세계 최대 수준에 달했고, 총리가 직접 투자 자제를 경고했다. 2020~2021년에는 영끌과 빚투가 일상어가 되었고, 명품 소비 보복 열풍이 뒤따랐다. 자산 증식과 소비를 통한 지위 표시가 다시 한국 슬롯의 중심 문법이 되었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같은 해 변화가 감지된다. 2016년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는 탈물질주의적 세계주의에 대한 정치적 반격이었다. D2C 밀레니얼 브랜드들도 정확히 이 시기를 기점으로 조정기에 들어섰다. Allbirds, Glossier, Away 같은 브랜드들은 여전히 건재하지만, 전성기의 가파른 확장세는 꺾였다. 단일 디자인에 지나치게 오래 의존하거나, 브랜드 방향성이 흔들리거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다른 영역으로 확장을 모색하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제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주민이 형성한 매력이 부동산 수요를 자극하면서 지가와 임대료가 상승했고, 새로 정착하려는 사람들의 진입 비용이 높아졌다. 인구 증가세는 2019년부터 둔화되었고, 결국 순유출로 전환되었다. 2023년 이니스프리는 브랜드 정체성을 전면 재편하며 제주와의 연결을 스스로 해제했다. 제주를 통해 성장한 브랜드가 제주를 떠난 것이다.


골목상권도 같은 시기에 다른 방향에서 압박을 받았다. 두 가지 변화가 동시에 일어났다. 하나는 소비자 기준의 상향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소비 주체로 부상한 Z세대는 낡은 건물의 정취나 개성 있는 인테리어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마카세, 하이엔드 디저트, 프리미엄 스테이처럼 설계된 고급 경험이 일상의 기준이 되었다. 골목이 제공하던 소소한 감성은 더 이상 선택 기준이 되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대형 리테일의 감성 흡수다. '더현대 서울' 같은 백화점들이 로컬 브랜드 팝업, 독립 디자이너 감성, 실내 골목길 연출을 적극 도입하면서 소비자는 '골목 같은 백화점'을 경험하게 되었다. 골목상권의 차별성이 사라진 결정적 순간이었다.


변곡점의 본질은 무엇인가. 탈물질주의 브랜드들이 조정기를 맞은 것이다. 이들은 "더 나은 가치를 소비한다"는 감각을 팔았는데, 이 모델은 두 가지 전제 위에서만 작동한다. 소비자가 물질적으로 충분히 여유롭고, 그 여유를 "올바른 소비"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문화적 분위기가 있을 때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 자산 불안이 겹치면서 그 전제가 흔들렸다. 브랜드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를 가능하게 했던 슬롯적 조건이 약해진 것이다.


4. 재정비인가, 대체인가: 크리에이터 문화가 답이다

탈물질주의는 소멸했는가. 그렇지 않다. 주류에서 밀려났지만 더 순수한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그 중심에 크리에이터 문화가 있다.


탈물질주의를 움직이는 힘은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진다. 수요, 공급,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기술이다.

수요 측면에서 탈물질주의의 기본 동력은 물질 너머의 소비, 크게 보면 경험이다. 사람들은 더 좋은 물건이 아니라 더 의미 있는 경험을 원한다. 더 나은 아파트가 아니라 더 좋아하는 동네를, 더 비싼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과 맞는 브랜드를 선택한다. 탈물질주의의 4대 가치 — 삶의 질, 개성, 다양성, 슬롯적 윤리 — 는 모두 이 경험 소비의 방향을 가리킨다.


공급 측면에서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대기업의 논리와 획일적 성공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관을 콘텐츠와 브랜드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1960년대 히피가 코뮌을 만들었고, 1990년대 힙스터가 독립 서점과 로컬 카페를 만들었다면, 오늘의 크리에이터는 유튜브 채널과 로컬 브랜드를 만든다. 공급자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동기는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살면서 그것을 일로 만드는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기술이다. 1960년대에는 공동체가 그 기술이었다. 히피 코뮌과 반문화 네트워크가 같은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모았다. 1990년대에는 공간이 그 기술이었다. 포틀랜드의 골목, 홍대의 클럽, 삼청동의 카페가 크리에이터와 소비자를 물리적으로 연결했다. 지금은 플랫폼이 그 기술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서브스택은 공간의 제약 없이 개인을 해방하고, 취향으로 연결한다. 크리에이터 경제는 탈물질주의적 삶의 방식이 처음으로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구조를 갖춘 시대다.


세 물결의 계보가 이렇게 정리된다. 1960년대 대항문화는 이념을 선언하고 공동체로 연결했다. 1990년대 힙스터 문화는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공간으로 연결했다. 2010년대 이후 크리에이터 문화는 경제 구조를 바꾸고 플랫폼으로 연결한다. 탈물질주의는 퇴행한 것이 아니라 더 깊어졌다. 2015년 이후의 문화 변화는 탈물질주의의 패배가 아니라 재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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