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하는 지인을 만났다
병원에서 몇 차례 항암 치료를 마친 지인을 만났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식탁에는 반가움과 조심스러움이 묻어있었다. 아픔을 가진 사람에게
'많이 힘들었지?'라는 말도 너무 가볍고, '괜찮아?'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았다. 안부를 묻는 대신 눈빛에 사랑을 가득 머금고 함께 간 사람들과 그녀의 시간에 젖어들었다.
그녀는 힘들게 병원에서 보낸 시간을 하나씩 꺼내 놓기 시작했다. 암이라는 진단을 처음 들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의사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왜 하필 나일까'라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그녀도 그렇게 병원의 낯선 곳에서 적응했다고.
항암 치료는 몸만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다. 입맛이 사라지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기운이 없어지는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었다고. 병실 창밖으로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바라보며,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비켜나 있다는 외로움이 가장 컸다고 했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이해인 수녀의 '어떤 결심'의 시구절을 붙잡고 버틸 수 있었다고.
그녀는 그 시를 병실 머리맡에 붙여 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읽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저 위로가 필요해서 읽었고, 나중에는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읽게 되었다고. 병으로 긴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은 힘들어도 '오늘 하루만 살아 보자'라는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어쩌면 지금의 고통보다 내일도 아플 것이라는 두려움이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든다. 병은 몸에 생기지만, 두려움은 다가올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미리 계산해서 고통을 받는 염려 시간들.
그래도 그녀의 얼굴에는 병을 앓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평온이 들어 있었다. 많이 받아들이고 내려놓은 듯한 그녀의 시간,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검사와 항암이 몇 차례 더 남아 있고, 재발에 대한 걱정도 완전히 사라지질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전보다 훨씬 밝게 웃고 있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 갈수록 들려오는 소식이 달라진다. 젊은 날에는 결혼 소식, 승진 소식,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많았다. 이제는 어느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 항암을 시작했다는 이야기,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가 더 자주 들려온다.
이제는 그런 소식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어느새 그런 소식이 가까운 친구가 되고 지인이 되고 이웃의 소식이 된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병을 가지면 작아지는 모습을 보고 알게 된다. 수명이 길어졌으니 병이 먼저 오고 또 나중에 오는 정도의 차이 일 텐데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인들과 카페를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 하늘이 너무 맑고 예쁘다. 맑은 날씨를 느낄 수 있다는 것,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 내 두 다리로 걸어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 평범한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누구도 병을 원하지 않는다. 병은 아프고 두렵고 잔인하다. 그녀와 함께한 이들과 헤어진 뒤 오래도록 이해인 수녀의 시가 마음속을 맴돌았다. 하루만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먹먹해지는 마음이다. 어쩌면 삶은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 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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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또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평범한 일상이 행복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