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거리를 걷다 보면 호의를 느끼기 어려운 사람을 마주할 때도 있다. 한적하게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한다는 정체불명의 사람들. 그들도 사람이니까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을 적극적으로 맞이한 때도 있었다. 내 딴에는 불쑥 찾아온 만남을 회피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한 사람 또는 주로 두 사람으로 짝을 지어 활동하는 그들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환대(?)의 인사를 건네곤 했다.
기운이 무척 좋아 보이세요, 혹은 인상이 선해보이세요, 같은 인사들
강산이 바뀌며 시간이 흘러도 불변하는 그들의 고정 멘트이다. 그런데 그게 뻔하고 식상한 멘트라는 것은 나 역시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음에도 그들이 얼굴을 드러내놓고 버젓이 포교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익명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을 정도의 담력을 가졌으며, 외모도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나에게 말은 거는데, 그것이 미심쩍고 수상한 것이라는 의심은 하기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아주 때로는 특정 지하철역을 가는 방향을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안국역을 물어보는 식으로. 당할 대로 당해본 시점의 나에게는, 그런 경우 길을 물어보는 방식의 변화구에도 묘할 정도의 기시감이 들게 해서 나는 어?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제 갈 길을 걸어갈 뿐이다.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포교 활동에 미주알고주알 참견하고 싶을 정도로 한가한 사람은 적어도 낮에 그 거리를 걷고 있지는 않았다. 그 혹은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고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말을 걸어왔다.
이 동네 사세요? 같은 사소한 신상부터해서, 학생이세요? 같은 평범해 보이는 질문도 있고, 어디 가는 길이세요? 같은 목적지를 궁금해하는 여행객 같은 질문도 있다. 대부분의 그 선량해 보이는 인상의 시민들은 이 단계에서 낌새를 눈치챈다. 수상한 스팸 메일을 열어 보았을 때 보게 되는 첫 문장처럼 말이다. 사실 이때는 인사도 없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이 상바카라이다. 겉으로만 순수해 보이는 자연스러운 질문에 이끌려 답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안타깝게도 도망가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꼬리를 자르고 가는 도마뱀처럼 선한 인상의 시민에게 붙잡듯이 달려드는 포교인을 억지로 뿌리치고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고백하건대 작게 욕을 중얼거리며 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은 적이 있었다. 분노를 연료 삼아 실제로 다음에 만나면 그렇게 하리라 계획까지 나름 철저히 세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앞의 두세 마디의 떡밥이 교묘하게 작동하곤 하기 때문에, 포교인과 나 사이에 희미한 라포가 형성되고 만다. 그래서 다시 만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실행까지 가지는 못했다. 예의 바름과 무례 사이에 묘한 줄타기를 하며 질문하고 옭아매는 그들은 어떤 의미로 때론 선수였다.
대학 생활만큼이나 휴학생 신분으로 시간을 가치 있게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며 약간은 좌절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일단 집밖으로 산바카라을 나가곤 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다양한 풍경과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그래도 마음이 고여 있기보다는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포교인들을 따라가 본 적이 있다. 당시는 그들이 잔뼈가 굵은 선수라는 것을 내가 아직 알지 못했던 때였다.
당시에 거리를 걷다가 말을 걸어 불러 세우는 사람들을 거칠게 나누면, 대부분 NGO 홍보팀이거나 이단 교회 포교인 둘 중 하나였다. 자신들의 기업을 홍보하는 사람들은 누가 보기에도 그 기업 사람임을 드러내는 복장을 하고 있었고, 서비스 정신이 투철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잘생겼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곤 한다. 이단 교회에서 전도를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정장을 말끔하게 입고 있었는데, 사실 그 차림부터가 교회 근처에서 보이는 게 아니라면 일단 조심해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는데 굳이 정장까지 차려입고 태블릿 PC를 손에 들며 짧게 강의를 선보이는 사람들은 사이비 집단 말고는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실제로 모든 교회의 목표는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일상적인 장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그렇게 본격적이고도 비일상적이고, 수상하게 전도하는 경우는 드물거나 없었다.
그래서 둘만 조심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그런데 일상적인 차림의 일상적인 대화를 구사하는 두 명의 중년 아주머니를 만나게 됐다.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사실 낯선 그들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지만) 서로 반가워하는 기색으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어디론가 자꾸 가자고 했다. 그곳은 자신들이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들은 자꾸 나에게 친절하게 말을 붙여 대화해 주고, 어디론가 능숙하게 가자고 하는데 내심 그들이 누구고, 그곳은 어딘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들이 수행을 한다는 '선방'이라는 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자꾸 어디를 간다는 거예요?"
"선방이요"
"선방?"
"우리 조상들도 영혼이 있는데, 지금까지 안 됐던 것도 다 위에 있는 조상들이 기운을 막고 있어서 그래요"
이런 대화들을 했던 게 기억난다. 한 아주머니는 골목에 있던 작은 집에 들어서 미닫이 문을 열었다. 나는 그곳에 도착하자 약간의 공포감과 커다란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인상 좋던 분들이 대체 왜 이런 곳으로 나를? 장판이 깔린 넓은 방, 그리고 어떤 남자가 앉아서 탁자를 펴놓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 방의 옆에는 다른 큰 방이 있었는데 그곳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병풍과 제사상이 놓여 있었다. 둘은 내가 이곳에 절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큰 절을 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절을 하고 일어선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커다란 종이와 라이터를 가져와 어떤 의식을 치렀는데, 크고 두꺼운 종이를 둘둘 말아서 그 끝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종이를 휘두르고 입김을 불어 불을 끄고는, 내게 왼손을 펴라고 했다. "잠깐만 기다려봐요. 놀라지 말고 다치는 일은 아니니까." 내 손에 그것을 꾹 누르더니, 몇 초 동안은 그 자세를 유지했다. 그것을 떼니까 누렇게 변색된 것 같은 손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엄숙하고 부담스러운 공간에서 벗어나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우리들이 수행하고 공부하는 일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돈을 조금 줄 수 없겠냐고 매우 자연스럽게 (한편으로는 뻔뻔하게) 유도를 했다. 나는 미신은 믿지 않고, 그때도 교회를 드문드문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고 내가 뭔가 너무 당연하게 금기시되는 것들을 중히 여기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그들에게 거금 5만원을 손에 쥐어 주었다. 끝까지 돈이 아까웠지만, 그들의 태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라는 느낌이었기에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신령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똑같이 신령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때 내가 돈을 주지 않았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면 껄끄러운 마음이 들기는 한다. 지금까지는 미소 짓고 좋은 말들을 주고받던 그들이 나에게 어떤 커다란 앙심을 품을지도 모르는 것이고 말이다. 섬찟하게 노란 손바닥의 자국은 나를 비웃듯이 남아있었지만, 그 뒤로는 더 이상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을 먼저 믿지 말자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