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들은 본인 스스로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따라서 그들 대부분은 자신에 대하여 명료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안다'는 자기 이해의 감각 정도는 다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친한 친구이자 2살 어린 동생이기도 한 A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A에게는 객관적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감각이 약간씩은 어긋나 있다는 것이 그 가진 거의 유일한 단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A가 대충 A의 집에 있는 재료들로 막간을 이용해 요리하여 만들어낸 음식들은 맛있는 걸 보면 아무리 봐도 A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A는 그런 팩트에 기반한 칭찬들에는 정작 손사래를 치며 거부한다. 사실이 아닌 립서비스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에 비해서, A가 코인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는 음정이 대부분 맞지 않고, 박자는 한껏 뒤로 밀리거나 듣기 민망할 정도로 엉망일 때가 많다. 그런데도 끝까지 부른 노력이 가상해서 적당하게, 잘 불렀다고 박수를 쳐 주면, A는 진심으로 알고 크게 기뻐한다. 실제로, A는 자신이 잘하고 못하는 것에 대해서 객관화하는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내가 노래방에 나오는 길에 진지한 표정으로 '너 노래 부르는 거 사실 좀 못들어주겠다'고 말하면, A는 장난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다음 주 부터 다닐 보컬 학원을 알아볼지도 모른다. 그만큼 A에게는 '나를 안다'는 감각 자체가 A에게 중요한 것이다. A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A에게 반복해서 말해준다 하더라도 A는 거부반응을 보일지언정 '그게 뭐 어때서?'라는 반응(내향인들이 보기에는 약간 부러운 외향인들의 쿨하고 털털한 정서)을 보이지는 않는다.
내향인들의 이러한 선천적인 '자기 인지 능력'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내향인들의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떡밥을 쉽게 물지 않는다'는 것. 슬롯에는 희소 가치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다. 부, 명예, 학벌, 권력, 위신, 체면, 재산 등. 이러한 것들은 남들이 보기에 아주 근사해보이는 것들이다. 타인이 인정하고 부러워할만한 어떤 외제차나 명품 가방같은 것들. 물론 명품 좋아한다고 다 외향인인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내향인들은 명품을 명품 자체로서 소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자신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기준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대다수가 즐기고 소비하는 것들에 큰 관심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대다수가 즐기고 소비하기 때문에, 그것이 가치있고, 그것에 어느 정도 편승해야 한다는 명제에 반기를 든다. 내 주변에서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굳이 위험한 곳에 있는 떡밥을 물 필요는 없다. 멀리 있는 그 떡밥이 먹음직스럽고, 모두가 선망하는 무언가여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 자신을 잘 안다는 감각이 지나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나는 점심에는 고구마와 계란 2개를 먹고 저녁에는 냉동 볶음밥을 데워먹는 식단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B라는 친구를 알고 있다. 그 친구는 아직 온라인 게임을 구하지 않았고,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 속도 편하고 아주 만족스러운 나머지, 취업을 하더라도 그 식단을 꼭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B는 극내향인의 전형으로 집밖을 잘 나가지 않는다.
나는 B를 보며 나 자신을 안다는 감각은 항상 좋아서, 그 감각을 계속해서 발달시켜 나가고, 더욱 나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찾아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었던 나를 반성했다. 생각보다는 나는 나 자신을 조금은 몰라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나와 조금 맞지 않는 식단이 주어지고, 맞지 않는 복장을 입는다한들, 그 이유 때문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되지 않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가 바라는 모양으로 계속해서 바뀐다는 것은, 결국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나'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너도 없고, 우리도 없고, 세상도 없다. 그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내가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외로운 모습 밖에는 관찰할 수가 없다. 그보다는 현실 세계의 우주처럼 여러 행성들이 공전하면서 서로의 움직임에 방해도 받고 때로는 도움도 받으면서 사는 게 나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