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시대를 사는 자녀의 공부 동기 만들기

결핍이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교육 현장에서 27년을 있다 보면 같은 패턴을 계속 보게 된다.


부모가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는 이상하게 눈빛이 다르다. 시키지 않아도 문제집을 붙잡고, 성적표를 받는 날이면 표정이 굳는다. 자기 성적이 곧 집안의 미래와 연결돼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안다. 반대로 형편이 넉넉하고 부모가 성적으로 아이를 몰아세우지 않는 집 아이는, 공부에 대한 압박이 훨씬 적다. 그런데 이 두 번째 경우, 흔히 기대하는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올 때가 많다.


압박이 없으니 편안하게 자기 길을 찾아갈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방향을 못 잡고 표류하는 아이들도 상당히 많다. 학원에 와도 눈이 풀려 있고, 뭘 해야 할지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결핍이 없다고 해서 저절로 좋은 상태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오랫동안 아이들을 보며 계속 확인했다.


내 셋째 아들도 이 지점에서 관찰할 게 많았다.

아들은 중3이다. 성적은 중1 이후로 계속 내려갔다. 지역에서 가장 좋은 특성화고, 전기 계열 학교를 권했다. 취업까지 이어지는 확실한 길이었다. 아들은 거절했다. 친구들과 함께 일반고에 가고 싶다고 했다. 강요하지 않았다. 아들은 수학 하나만 붙잡고 수리논술로 대학을 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루 한 시간씩 혼자 개념서를 풀기 시작했다. 중3-2 과정을 거의 독학으로 끝냈다. 국어, 영어, 슬롯, 과학은 여전히 약하다. 독서량이 적어서 언어 이해력이 부족하고,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어려운 상태다. 그런데도 본인이 세운 전략을 밀고 나가고 있다. 동시에 피아노와 복싱을 스스로 찾아 배우러 다닌다. 게임을 자유롭게 하도록 풀어줬더니 오히려 평일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새벽에 등산을 가거나 밤에 공원에서 만나 시간을 보낸다. 작년엔 중고거래로 백만 원을 벌었고, 올해는 그 돈을 주식에 넣었다가 거의 다 잃었다.


이 아이는 나와 완전히 다른 조건에서 자랐다. 나는 쉬는 날 없이 365일 막일을 하시는 아버지와 아픈 어머니 밑에서, 학원비는커녕 학교 등록금을 걱정하며 버텼다. 결핍은 두려움이었지만 동시에 연료였다. 그 두려움이 나를 대학까지 밀어붙였다. 아들에게는 그런 결핍이 없다. 그런데 결핍이 없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두려움이 없어진 자리에는 정확히 두 갈래 길이 있다.


첫 번째 길은 무기력이다.

학원에서 자주 보는 유형이다. 부모가 형편이 넉넉하고, 아이에게 뭐든 대신 챙겨준다. 학원도 부모가 골라주고, 스케줄도 부모가 짜준다. 성적이 떨어져도 부모가 나서서 해결한다. 이런 아이는 안전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눈빛에서 목표라는 게 사라진다. "왜 공부해야 하냐"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한다. 부모가 정한 트랙 위에 얹혀 있을 뿐, 자기가 뭘 원하는지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다.

이 유형의 특징은 실패를 겪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실패할 것 같으면 부모가 미리 막아준다. 그러다 보니 자기 선택에 대한 바카라임을 느껴본 적도 없다. 안전은 얻었는데 방향이 없다.


두 번째 길은 흥미다.

두려움 대신 진짜 호기심과 몰입이 동기가 되는 경우다. 이 유형은 안전하면서도 무언가에 몰두한다. 성적이 목적이 아니라, 하고 있는 일 자체가 재미있어서 계속한다. 결과가 나쁘게 나와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에 결과 때문에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 안 하면 큰일 나서하는 것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완전히 다른 엔진으로 움직인다. 두려움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위협이 사라지면 동력도 같이 사라진다. 흥미로 움직이는 사람은 위협이 없어도 계속 움직인다.


이 갈림길을 가르는 건 집안의 재산이 아니다. 부모가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도 아니다. 결정적인 건 아이가 자기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겪어볼 기회를 얻었는가 다.


안전만 주고 선택은 대신해주면, 아이는 무기력해진다. 부모가 좋은 학교, 좋은 학원, 좋은 진로를 다 정해주고 아이는 그 안에서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면, 안전은 확보되지만 자기 삶에 대한 감각은 사라진다. 성적이 떨어져도 부모 탓이고, 성적이 올라도 부모 덕이다. 어느 쪽이든 자기 것이 아니다.


반면 안전과 선택을 같이 주면, 아이는 흥미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특성화고를 거절하고 일반고를 선택한 것, 그 선택의 결과로 스스로 수학 하나를 붙잡고 계획을 세운 것, 중고거래로 번 돈을 주식에 넣었다가 잃어본 것. 이 전부가 두 번째 길에 속한다. 실패해도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안전함이 바탕에 있고, 그 위에서 무엇을 할지는 본인이 정한다.


주식에서 돈을 잃은 걸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만 원을 잃어본 경험은, 백만 원을 잃지 않도록 미리 막아준 것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 돈을 잃고 나서 아들이 스스로 다음엔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걸 지켜봤다. 오히려 집에 필요 없는 것을 중고로 팔아서 다시 주식 매매를 시작해 보라고 격려했다. 아빠는 주식으로 1억 가까이 잃었다고, 지금 100만 원을 잃어야 앞으로 큰돈을 지킬 수 있다고 얘기해줬다.


여기서 부모가 자주 헷갈리는 지점이 하나 있다. 결핍을 없애주는 것과 방향을 대신 정해주는 것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앞의 것, 그러니까 아이가 밥과 사랑을 걱정 없이 누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건 모든 것의 전제다. 그런데 뒤의 것, 무엇을 선택할지까지 부모가 정해버리면, 안전함이 오히려 무기력을 키우는 온상이 된다.


특성화고를 권한 것까지는 부모의 몫이었다. 정보를 주고 근거를 설명하는 건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다음, 아들이 다른 선택을 했을 때 그걸 뒤엎지 않은 것이 진짜 중요한 지점이었다. 만약 그때 "안 된다, 특성화고 가라"라고 밀어붙였다면, 아들이 수학 하나를 붙잡고 밀고 나가는 모습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아들에게 한 일은 결국 두 가지였다.

특성화고를 가지 않아도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 그리고 그 선택 이후의 결과는 온전히 아들의 몫으로 남긴 것.


두려움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자리에 스스로 선택하고 실패할 여지를 함께 남겨줘야, 아이는 두려움 대신 흥미로 움직이는 사람이 된다. 풍요는 목적지가 아니다. 풍요는 아이가 스스로 넘어져 볼 수 있는 안전한 바닥일 뿐이다. 그 바닥 위에서 무엇을 하고 어디로 넘어질지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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