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모드에서 선택모드로-1편

우리는 왜 자녀를 공부시키는가?

부모들은 아이의 행복을 위해 공부를 시킨다고 말한다.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온라인 게임을 얻고, 좋은 온라인 게임을 얻어야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나는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다. 우리는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공부를 시키는 걸까? 아니면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공부를 시키는 걸까?


공부를 시키는 이유는 사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랑 안에는 두려움도 함께 들어 있다.

'공부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이다.'

'좋은 대학을 못 가면 힘들 것이다.'

'좋은 온라인 게임을 못 얻으면 불행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현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이것은 현실이라기보다 하나의 믿음체계일 수도 있다.



생존모드는 인간의 기본 설정이다

인간은 원래 생존하도록 만들어졌다. 수십만 년 동안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살았고, 추위에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살았으며, 부족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살았다. 그 시절에는 생존이 곧 행복이었다. 아니, 생존하지 못하면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위험을 찾도록 진화했다. 문제가 없는지, 더 안전한 곳은 없는지, 남보다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늘 확인하도록 만들어졌다. 이것은 인간의 잘못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했던 기능이었다.



그런데 시대는 바뀌었다

오늘날 우리는 원시시대보다 훨씬 풍요롭게 산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시험을 한 번 못 봤다고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 좋은 대학에 못 갔다고 슬롯에서 추방되지도 않는다. 취업이 늦어진다고 부족에서 쫓겨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아직도 그렇게 반응한다. 아이가 성적이 떨어지면 마치 인생이 끝난 것처럼 느끼고,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평생 실패할 것처럼 불안해한다. 생존의 문제를 성공의 문제로 착각하는 것이다.



생존모드는 결핍모드를 만든다

생존모드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다.

항상 부족하다.

돈이 부족하다. 시간이 부족하다. 능력이 부족하다. 성적이 부족하다. 집이 부족하다. 지금보다 더 있어야 안심된다. 그러니 현재는 언제나 임시다. 행복은 늘 미래로 미뤄진다.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할 것이다. 취업하면 행복할 것이다.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다. 집을 사면 행복할 것이다. 은퇴하면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그 미래가 오면 또 다른 미래가 생긴다. 결국 평생 행복을 준비만 하다가 끝난다.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부모들은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안이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

'쉬면 안 된다.'

'항상 준비해야 한다.'

'뒤처지면 안 된다.'

이 말을 수십 년 듣고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행복하게 사는 법보다 불안하게 사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나 역시 생존모드로 살아온 사람이다

나는 가난하게 자랐다. 어릴 때부터 돈이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부족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고 싶은 걸 마음껏 가질 수 없었고, 늘 미래가 불안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았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고, 등록금과 생활비를 과외와 학원 강사를 하며 스스로 벌었다. 졸업하자마자 학원 강사가 됐고, 지금까지 27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살았고, 어느 정도는 살아남았다.


그런데 어느 날 깨달았다. 나는 가난은 극복했지만, 가난이 만든 두려움은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수입이 줄면 불안했고, 학생이 몇 명 빠지면 불안했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끊임없이 계산했다. 나는 이미 생존한 사람이었는데도, 계속 살아남으려고만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을 아이에게도 물려주려 하고 있었다. 공부해야 한다, 열심히 해야 한다, 뒤처지면 안 된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내가 평생 짊어져온 두려움까지 함께 들어 있었다.


내 아이는 나와 다르다. 나는 부족함 속에서 자랐지만 내 아이는 내가 만들어놓은 것 위에서 자란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내가 살아온 방식을 아이에게 그대로 요구하려 했다. 왜 이렇게 절박하지 않을까. 왜 나처럼 치열하지 않을까.


그 순간 나는 멈춰야 했다. 내가 아이에게 물려줘야 할 건 내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던 그 방식이 아니었다. 그 발버둥 위에서 조금은 다르게 살아도 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법부터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AI 시대가 오면 직업은 바뀔 것이다. 교육도 바뀔 것이다. 산업도 바뀔 것이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두려움으로 사는 사람은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 두려움으로 산다. 선택하며 사는 사람은 시대가 바뀌어도 새로운 길을 만든다. 그래서 내가 아이에게 정말 물려주고 싶은 것은 좋은 대학이 아니다.


생존이 아니라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