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초등학교에 입학하다
학교라는 거대한 생태계 속으로 발을 들이던 첫날을 기억한다. 그곳은 침묵이 미덕인 서재와는 정반대의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는 곳이었다. 기간제 교사라는 이름표를 달고 마주한 지난 두 달, 나의 시간은 오로지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살피고, 교실의 소란스러운 소음을 정돈하는 일에 송두리째 바쳐졌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열정은 뜨거웠으나, 그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역설적이게도 나의 개인적인 행성들은 차갑게 식어갔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나의 일상은 정교하게 조각된 활자와 영상, 그리고 코딩의 조합이었다. 매일 아침 블로그의 하얀 화면을 채우던 문장들, 구독자들과 호흡하며 편집하던 유튜브의 프레임들, 그리고 논리적인 질서 속에 구축되던 바이브 코딩과 출판의 흐름들. 그것들은 내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우주'였다. 하지만 학교라는 새로운 중력이 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하자, 그 견고하던 우주에 균열이 생겼다.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수업안을 짜고, 아이들의 정서를 어루만지는 일에 몰입할수록, 내가 공들여 가꾸던 창작의 정원은 잡초가 무성해지다 못해 시간이 멈춰버린 유적지가 되어갔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마주하는 바카라상은 이제 어느덧 '낯선 섬'이 되어 나를 바라본다. 한때는 그곳에 앉기만 해도 아이디어가 샘솟고 손가락이 건반 위를 날아다니듯 타자를 쳤건만, 지금의 바카라상은 그저 무거운 침묵만을 내뿜고 있을 뿐이다. '적응'이라는 이름의 피로는 생각보다 훨씬 육중했다. 하루 종일 교실에서 쏟아낸 에너지는 나를 창작의 의자로 이끄는 대신 침대의 중력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들과 호흡하며 맞춰진 몸의 리듬은 어느새 학교의 종소리에 최적화되었다. 쉬는 시간과 수업 시간, 급식 시간으로 분절된 타인의 리듬에 익숙해지는 동안, 고독 속에서 문장을 길어 올리던 창작자로서의 리듬은 자취를 감췄다. 펜을 잡아야 할 손에는 분필 가루의 서늘함이 남았고, 문장을 고민해야 할 머릿속은 아이들의 사소한 다툼이나 내일 해야 할 생활지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찼다. 창작자의 리듬이 지워진 자리에 교직자의 관성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이 낯설음은 일종의 상실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나의 우주였던 공간이 나를 거부하는 듯한 어색함, 익숙했던 도구들이 손에 감기지 않는 이 괴리감.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 방황 또한 길 위의 과정임을. 작가로서의 길을 걸어오며 얻은 진리는, 멈춤 또한 글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바카라상 위를 감도는 이 어색한 공기는 내가 새로운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훈장이자, 다시 시작할 창작의 에너지를 응축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그 낯선 섬으로 다시 상륙하려 한다. 비록 두 달간의 공백이 손끝을 무디게 만들었을지라도, 내 몸에 새겨진 교실의 활기와 아이들의 생명력을 이제는 문장으로 치환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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