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시 입학하다
퇴직이라는 거창한 종업식을 마치고 나니, 세상은 거대한 교실로 변해 있었다. 수십 년간 몸담았던 온라인 게임이라는 견고한 울타리를 벗어나자, 비로소 안개 너머에 가려져 있던 내 아이들의 서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가장으로서 '읽어주어야 할 바카라'들을 외면한 채, 오직 '성취'라는 제목의 페이지만을 넘겨왔던 것은 아닐까. 오늘은 그 회한의 눈으로, 가장 아프고도 찬란한 역설이 공존하는 공간, '기숙학교'의 풍경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매주 일요일 해 질 녘, 기숙학교로 향하는 산중턱 도로는 이별의 장소라기보다 비장한 전장(戰場)으로 향하는 보급로에 가깝다. 도로를 메운 차량의 행렬은 아이를 보낸다는 슬픔보다, '남들보다 앞선 고지에 아이를 투하하겠다'는 부모들의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차 뒷좌석에 앉은 아이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운전대를 잡은 부모의 눈은 전방의 고속도로보다 더 먼 곳, 명문대라는 신기루를 쫓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부모들은 아이의 트렁크에 온갖 보급품을 챙겨 넣는다. 홍삼, 고농축 비타민, 유명 학원의 핵심 요약집, 그리고 쏟아지는 간식들. 그것들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우리는 너를 위해 이토록 희생하고 있다"는 무언의 압박이자, "반드시 승전보를 들고 귀환하라"는 묵직한 훈령이다. 트렁크가 닫히는 소리는 아이들에게 마치 감옥의 철문이 잠기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부모들에게는 완벽한 방어막을 구축했다는 안도감의 신호탄으로 들린다.
그들에게 기숙학교는 최후의 보루다. 사교육의 끝판왕이자, 아이를 유혹하는 세상의 모든 소음—스마트폰, 친구들의 무의미한 잡담, 텔레비전, 심지어는 부모 자신의 잔소리마저도—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해 오직 '목표'라는 좁은 바늘구멍에만 침잠하게 만드는 거룩한 성전이다.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거액의 교육비와 기숙사비는 부모에게 면죄부가 된다. "나는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최고의 환경을 사주었다"는 자기만족적 위안은, 어린 자식을 낯선 침대에 홀로 재워야 하는 죄바카라감을 손쉽게 압도하고 도려낸다.
하지만 부모들이 간과하는 치명적인 진실이 있다. 아이를 그 견고한 성벽 안에 가두는 순간, 아이의 '성장'은 멈추고 오직 '생존'만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성벽 안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의 눈을 피하고 시스템의 빈틈을 찾으며,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법을 먼저 배운다. 부모가 쏟아부은 헌신은 아이의 어깨 위에 얹힌 '금빛 사슬'이 되어, 한 발자국도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옭아맨다.
기숙학교의 시계는 바깥세상보다 세 배는 빠르게, 동시에 세 배는 느리게 흐른다. 오전 6시의 점호부터 자정을 넘긴 심야 자습까지, 아이들의 24시간은 타인에 의해 설계된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간다. 이곳에서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오직 '수험번호'와 '등수'만이 존재의 증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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