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프롬프트. [만들지 못한 영화]

by민경민

영화평론가의 AI 영화감독 데뷔기

두 번째 프롬프트. [나는 원래 영화가 찍고 싶었다]


내가 AI 영화에 관심을 가진 동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영화평론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영화평론가로 살아가는 게 생각보다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해 내게 들어온 강연은 1건이었고, 대외활동은 전무했다. 글이라도 쓸 지면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곳은 개인 블로그뿐이었다. 심지어 기고 요청 같은 청탁은 등단 이전이 훨씬 더 많았으니 말 다했다. 자유롭게 딜레탕트 스타일의 글을 쓰던 사람이 별안간 다른 결의 글을 쓰기 시작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내가 직접 보따리를 싸서 글을 시장 좌판에서 팔아보겠다는, 호기로운 실험을 하다가 자기 발등을 찍은 탓도 있다.


여하튼 편혜영 소설가도 등단 후 몇 년은 글을 쓸 곳이 없어서 고생했다고 하는데, 내 필력은 그보다 못 미치는 것 같아서 더 불안했다. 장강명 소설가의 『합격, 당선, 계급』과 같은 바카라에서 소개하는 등단 작가의 삶은 더욱더 비관적인 전망이 묘사돼 있다. 바카라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실제로 겪어보니 펜을 놓고 싶은 적인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뭔가를 해냈구나’하는 작은 안도감 같은 것이나, 주변에 글을 쓸 때마다 작가의 페르소나를 일일이 설명하는 그 귀찮은 과정을 더 이상 거치지 않게 된 것은 좋았지만 상황이 변한 것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가난했고, 무지렁이였으며, 변변찮은 행색으로 세상을 떠돌 뿐이었다.


더욱이 신춘문예라는 일생일대의 목표를 일단 달성하고 나자 풀린 끈처럼 뭔가를 단단히 동여매지도 못했다. 원래 게으른 인간이 타성에 젖을 기미까지 보이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그 무렵에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기 시작했다. 첫째, 나는 아직 글러먹었다. 그리고 둘째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남이 만든 걸 읽을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었다.


본래 나는 어릴 적부터 분석보단 창작을 해오던 사람이었다. 또한 떠오른 게 있으면 방법이 뭐가 됐든 일단 달려드는 타입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만화와 그림을 좋아해서 만화가를 꿈꿨고, 학교 앞에서 나눠주는 무지 노트에 만화를 그려 전교생이 돌려보게 했다. 그때는 웹툰이랄 게 존재하지도 않던 시대이기도 했고 그 ‘병맛풍 만화’들은 꽤 인기가 좋아서 압수한 선생님들도 다음 회차를 기다리며 돌려볼 정도였다(악명 높은 선생님이 학교를 배틀로얄로 만든다거나 텔레토비가 흑화 해서 젤라비 놈들과 전쟁을 치른다는 대충 그런 내용). 현재는 이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있긴 하지만, 내 창작 인생의 시초는 그림, 특히나 ‘운동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DNA가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대학 시절에 문학을 하면서도 하나에 집중하질 못하고 곁가지로 엉성한 영화 프로젝트를 시작해 몇 개나 말아먹은 전적이 있다.


언급하기도 민망한 단편들은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대부분 사장시켰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도 있다. 저출산 시대를 맞아 위기를 느낀 정부가 ‘사랑세’라는 걸 도입해서 연애하지 않는 남녀들이 이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시나리오가 우연히 교수님의 눈에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시나리오는 괜찮았다. 소소하게 투자도 받았고, 팀을 꾸려 장비를 대여해 본격적으로 촬영까지 진행해 본 내 인생 최초의 영화였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도 심심하고 그다지 들여다볼 내용이 없는 영화라고 해도 기본기만 갖추었다면 최소 평점 3점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나리오와 실제 제작은 엄청난 간극을 가진다. 하나의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서 머릿속의 상상은 현실의 열몇 가지 난제와 부딪혀야 한다. 일례로 그 영화에서 정부가 사랑세 도입을 발표하는 장면에서는 장소를 어디로 할지, ‘정부스러운’ 뉘앙스는 어떻게 만들지, 배우는 누구로 할지, 촬영에 동원할 수 있는 스태프의 숫자는 얼마나 될지, 가용한 장비는 어떤 것이며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다 따져봐야 했다. 영화에서 그 장면은 한 30초 정도 등장하는데 가장 품이 많이 들어갔다. 그때는 영화 제작을 세밀하게 공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촬영, 연출, 미술, 편집 그 모든 것이 임기응변이라 결과물이 좋을 수가 없었다.


영화의 컨티뉴이티를 위해서 아무리 많은 예산과 노력이 들어가도 반드시 동원해야 하는 지점들이 있다. 컷과 컷, 신과 신을 이어주는 가교 같은 장면들이 있는가 하면 영화의 메시지를 위해서 상징적으로 반드시 넣어야 하는 장면도 있다. 가령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보이는 지하철 탑승 장면도 구현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현실적 제약들을 극복해야 한다. 군중 신에 등장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은 대개 다 엑스트라다. 지하철 운영 주체와도 영화 촬영 스케줄을 협의해야 하고, 어떤 때는 현장 통제도 해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도 도저히 안 되겠거나 카메라가 들어갈 공간이 없으면 아예 세트를 짓는데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KTX를 통째로 복사한 것이 좋은 예다.


그렇게까지 해서 영화를 찍어야 하나 싶은데 막상 찍어보면 차선바카라이 대부분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를 볼 때는 잘 느껴지지 않다가, 영화를 촬영할 때는 인간의 눈이 그렇게 정밀한 기계인지, 뇌라는 시스템이 그렇게 사소한 것들을 잘 파악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달리 말하면 관객으로 내가 영화를 보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면 그만큼 제작진의 엄청난 노력과 트릭이 잘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평론가라면 기본적으로 이 부분을 다들 집중해서 보지만, 나는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영역이 무난하다면 유달리 더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것 같다. 어쨌든 당시의 나는 그 ‘무난함’을 구현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단편 영화를 찍을 때는 인간적인 문제도 있었다. 초보자였던 우리 영화 팀 대부분은 전문 배우를 기용하는 걸 꺼려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전문 배우들을 제대로 디렉팅 할 수 없으리란 불안감이 있었다. 더러 그 배우들에게 소위 '잡아먹히지 않을까' 걱정도 하였다. 같은 이유로 전문가를 모셔오자는 의견도 힘을 얻지 못했다. 결국 그 소심한 결단 덕분에 영화는 더더욱 대차게 엉망이 되었고, 영화제 출품을 목적으로 시작했던 영화는 끝내 조잡한 학내 동호회 연말 결산 작품 수준이 되고 말았다.


팀 핑계를 대긴 했지만 전권을 쥐고 있던 건 감독이었으니 내 바카라임이 컸다. 어려서 그랬다고 하기엔 그 무렵 내가 배우를 물색하며 받은 메일이 지금 이 나이까지도 나를 반성케 한다. 허접한 대학생의 단편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필모그래피를 보내오던 수많은 배우들. 인천에서 부산까지 숙식도 스스로 해결할 테니 단역이라도 출연만 시켜달라고 하던 갓 20살이 된 청년의 문자 메시지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열정이 내게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그럼에도 그 작품을 내가 오래 기억하고 있는 것은 못내 아쉬운 마음이 남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만 읽어보면 꽤 재미있다. 반응도 좋았고 머릿속에 들어있던 것을 그대로 구현했다면 제법 괜찮은 작품이 되었을 거라는 확신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한 편 찍는다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자본, 인간적인 문제를 다루는지를 알게 되면 섣불리 그 과정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


사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나는 아예 영화를 찍는다는 생각 자체를 내 인생에서 지워버렸던 것 같다. 다만 영화라는 예술 자체는 좋았기에 훗날 영화 평론이라는 분야로 방향타를 움직여 변두리에서 맴돌고는 있었지만 그 속에 들어간다는 생각 자체는 하지 않고 있었던 게다. 굳이 내가 영화를 제작하거나 그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면 순수하게 영화 제작 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하고자 하는 작가적 호기심 정도였지, 그 어려움을 오롯이 감당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상황이 그렇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그 현실적 제약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마법처럼 원하는 세트를 구현하고, 배우도 입맛대로 고르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볼 전문가가 24시간 상주하며 자본의 압박도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인간이나 행정적 문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현실적 제약 때문에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다시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녹록지 않은 영화평론가의 삶을 지렛대 삼아 오히려 전과는 다른 결말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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