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프롬프트. [더 뉴 월드]

by민경민

영화평론가의 AI 영화감독 데뷔기

첫 번째 프롬프트. [더 뉴 월드]


챗지피티가 처음 출시되던 날을 기억한다. 당시 나는 영화 리뷰를 영어로 번역해서 해외 사이트에 올리면 어떨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터라 이를 자동화해 주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런데 기적처럼 나타난 이 놀라운 도구는 번역을 매끄럽게 해주는 차원을 넘어 아예 나 대신 그럴싸한 글을 써주기도 했다. 내가 이때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여기에 대한 멸망조의 칼럼도 쓴 적이 있다. ‘이제 AI가 모든 것을 차지할 것이고 글쟁이들은 끝장났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주판알을 튀기던 사람이 ‘계산기가 있으면 좋겠네’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MS-DOS도 건너뛰고 팬티엄 컴퓨터와 Windows 95를 처음 본 충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흥분과 두려움은 오래 지나지 않아 금방 사그라들었다. 초기 GPT 모델은 생각보다 멍청했고, 대단하긴 했지만 유용하다고 하기에는 할루시네이션도 심했으며 쓰는 에세이의 수준도 그리 높지는 않았다. 무서운 건 바로 지금이다. 지금 ‘AI 뭐 별거 아니던데’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클로드의 Fable 5 성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미국 정부가 제동을 걸고, 또 그걸 넘어선 ChatGPT의 신모델 ‘아스트라’가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바이트플러스의 Seedance 2.5 모델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현실 영상과 거의 분간이 불가능하다. 성장 속도는 또 어찌나 빠른지 만약 이 이야기가 바카라으로 출간된다면 그 시점에 방금 언급한 모델들은 이미 한참 전에 구닥다리가 되어있을 것이다. 전 세계의 AI 수장들과 석학들이 AI의 성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인류 멸망’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선 수준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AI 성능 발전과 인류 멸망 시나리오에 대한 종말론적 보고서를 쓰려고 하는 건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깊이 다루기에는 내 식견이 부족하다는 것도 안다. 다만 요사이 내가 떠올리는 생각은 한결같다. 나 같은 촌구석의 무명 필객이 주저리 떠들어봐야 AI는 발전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도 그 파도에 올라 무엇인가 해야 할텐데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일개 개인이 AI의 폭풍 속에서도 항해를 할 수 있다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차라리 AI 시대를 살아가는데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최근 재미있게 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AI 다큐: 종말론적 낙관주의자가 되다>(2026)의 결말부에서 감독이 울면서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장면에서 아버지는 공포에 질린 아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네가 통제할 수 있는 것만 통제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그렇다. 이 거대한 흐름은 내가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럼 영화평론가라는 이제는 거의 유명무실해진 타이틀 하나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주변을 둘러보니 오히려 그곳에 영화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좋아. 내가 영화는 좀 봤으니 이 지식을 가지고 뭔갈 해보면 안 될까?’


터미네이터의 목덜미를 뜯는 일은 훗날 카일 리스를 만나게 되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나는 해묵은 숙원을 AI로 풀어보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창작자로서 진짜 영화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그런 꿈. 조금 오만하게는 수백 편의 영화를 비평하며 ‘이걸 이렇게 만들었어야 했나?’라는, ‘그럼 니들이 뛰던지’에 대한 대답으로 내가 한번 뛰어보면 뭔가 더 좋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의지.


이 시나리오의 로그 라인은 다음과 같이 함축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영화를 평가하기만 하던 사람이 직접 AI로 영화를 만들어 박람회에 걸기까지 신나게 깨진 이야기이다.


공포에서 발아한 기대가 꿈과 열정으로 이어져 절망과 공포로 회귀하고 다시 기슬롯생해서 무난한 마무리를 짓는, 그런 좌충우돌 이야기를 후술 할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또한 이것은 AI 전문가도 아니고, 연출을 전문적으로 배운 감독도 아니며, 그렇다고 돈이나 배경이 있어서 처음부터 창대한 시작을 할 수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가 초보자의 시선으로 단계를 짚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내가 ‘이젠 망했어’라고 절규하던 ‘영화를 보는 감각’이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다루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이 글은 현재진행형이며, 올해 11월께나 결말이 예정돼 있다. 그러니까 지금 펜을 든 시점에서는 결말을 나도 모른다. 이것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집필하는 라이브 집필 프로젝트이기도 하다(이런 프로젝트는 정말이지 나도 처음이다). 그저 AI 영화 제작에 관한 내용을 들여다보는 용도로도 좋고, 한 오만한 초보자의 멸망전을 팝콘을 씹으며 봐도 좋은 그런 글을 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