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가해 관련자 대응법

by별빛바람

[연재 온라인카지노북] 브릿지: 학폭 누명의 600일

"본 연재물은 저자의 실제 경험과 법적 대응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에세이 및 실전 매뉴얼입니다. 다만, 관련자들의 개인정보 보호와 원활한 내용 전달을 위해 등장인물의 가명 처리, 직업 및 직바카라, 사건 발생 일시와 일부 정황 등은 특정할 수 없도록 각색되었음을 알립니다. 아울러 본 글은 특정 개인을 비방할 목적이 없으며, 학교폭력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는 다른 학부모님들에게 공익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학교가 기계적으로 부여한 '가해 관련자'라는 낙인, 이 억지스러운 프레임을 스스로 깨부수지 않으면 싸움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봄날. 오후 3시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한창 온라인 게임인들에게는 회사일로 바쁜 시간이었지만, 혹시나 중요한 거래처나 고객사의 전화가 아닐지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혹은 스팸전화가 아닐까라는 귀찮음이 동시에 몰려오는 전화였습니다. 하지만 그 전화는 제가 생각하던 그런 전화가 아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스텔라 아버님. OO 초등학교 담임 교사입니다."


평소 학교의 전화를 받을 일이 없었는데, 스텔라의 담임 선생님은 직접 전화를 겁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스텔라가 오늘 찬우(가명)에 대한 학교 폭력 신고로 분리 조치가 시행되었습니다. 따라서, 스텔라는 현 시간부로 체험학습으로 전환을 하거나 혹은 별도 분리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합니다."


날 벼락 같은 이야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찬우(가명)은 어떤 아이냐? 그리고 무슨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해달라 해도, 담임 선생님은 어떠한 이야기도 답변을 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저, 며칠 전 학교 운동장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찬우에 대한 집단 폭행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의 가해 관련자로 스텔라가 지목되었다는 내용만 기계적으로 반복할 뿐입니다.


전화를 끊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당혹감을 억누르며, 저는 이 비상식적인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해야만 했습니다. 평소 다정했던 담임 선생님이 왜 그토록 AI나 ARS 안내 멘트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답변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기저에 깔린 '시스템의 맹점'을 말입니다.

그것은 교사의 개인적인 악의나 불친절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학교폭력예방 및 대바카라에 관한 법률'이라는 거대한 매뉴얼이 만들어낸 방어적 조치였습니다.


첫째, '즉시 분리 제도'의 기계적 적용입니다.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되면, 학교는 진위 여부를 떠나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과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을 공간적으로 즉각 분리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신고 내용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거짓말인지, 증거가 있는지는 이 단계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신고가 들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 아이는 조사도 받기 전에 '격리되어야 할 대상'으로 분류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둘째, '기계적 중립'이라는 이름의 바카라임 회피입니다.

사건 초기, 교사나 학교는 양측 학부모의 거센 항의와 민원에 직면하게 됩니다. 혹여라도 부모의 애타는 질문에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하거나 개인적인 의견을 보탰다가는, "학교가 가해자 편을 든다" 혹은 "비밀 누설을 했다"는 절차적 하자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사는 교육자로서의 따뜻한 시선은 거두고, 어떠한 바카라잡힐 말도 하지 않는 철저한 '행정 기계'가 되어 정해진 대본만 반복하는 것입니다.


결국 학교라는 시스템은 진실을 규명하기보다 절차적 하자를 남기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들의 기계적인 절차 속에서, 스텔라는 이미 진실과 무관하게 '가해 관련자'라는 무서운 프레임 안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이 차가운 시스템 앞에서 부모가 분노하며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상대가 기계적인 매뉴얼로 나온다면, 저 역시 철저하게 냉혹한 '팩트'와 '논리'로 이 프레임을 부숴야만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답답한 마음에 다시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으려 했지만, 굳게 닫힌 학교의 입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내세운 거대한 방패는 또다시 '즉시 분리 제도'였습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바카라에 관한 법률에 따른 즉시 분리 조치가 시행되는 순간, 이는 단순히 아이들을 물리적인 공간에서 떼어놓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가해 관련자로 지목된 학생과 그 부모에게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 상대방의 진술, 심지어 정확한 사건 발생 시간조차 '2차 가해 예방'과 '절차적 중립'이라는 명목 아래 철저하게 비공개로 처리되었습니다.


"즉시 분리가 진행 중이라 양측 학부모님께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현재 단계에서 절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이 한마디는 완벽한 정보의 차단을 의미했습니다. '도대체 내 아이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상대방은 어떤 근거로 주장하고 있는지' 아무런 정보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즉시 분리 제도는 아이를 교실에서 쫓아낸 것도 모자라, 우리 가족의 눈과 귀마저 완전히 가려버린 것입니다. 마치 눈을 가린 채 낭떠러지 앞에 세워진 기분이었습니다.

여기에 이 제도의 가장 치명적인 맹점이 숨어 있습니다. 현행 즉시 분리 제도는 학폭 신고가 접수되는 즉시, 주장의 진위 여부나 기본적인 증거조차 전혀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시행됩니다. '선(先) 조치, 후(後) 조사'라는 미명 아래, 신고 내용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더라도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은 그 순간부터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교실에서 쫓겨나야만 합니다.

그리고 더 끔찍한 현실은, 이 허술한 시스템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악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일단 허위로라도 신고만 접수하면 상대를 교실에서 쫓아내고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제도의 맹점을 무기로 휘두르는 것이죠. 가짜 피해자 행세를 하며 상대방의 방어권은 원천 차단해 버리고, 자신들은 '피해자 보호'라는 완장 뒤에 숨어 상황을 유리하게 통제하려는 악의적인 전략입니다.

결국 학교라는 시스템은 진실을 규명하기보다 절차적 하자를 남기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들의 기계적인 절차와 시스템의 악용 속에서, 스텔라는 이미 진실과 무관하게 '가해 관련자'라는 무서운 프레임 안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이 차가운 시스템과 완벽한 정보 통제 앞에서 부모가 분노하며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상대가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기계적인 매뉴얼로 숨는다면, 저 역시 밖에서부터 철저하게 냉혹한 '팩트'와 '논리'를 수집해 이 악의적인 프레임을 부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결심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무엇이라도 증명하기 위해 발을 떼려던 순간, 저는 또 다른 거대한 침묵의 벽에 가로막혔습니다. 바로 증거 수집의 원천적 불가능성이었습니다.

학교폭력 사안은 지극히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룬다는 명분 아래, 관련 당사자가 아니면 그 어떤 정보도 공유될 수 없었습니다. 학교는 "비밀 유지 의무"를 철저히 내세우며 입을 닫았습니다. 내 아이가 정확히 어떤 행위로 신고를 당했는지, 상대방이 내세운 목격자는 누구인지, 심지어 그날 현장에 스텔라와 함께 있었던 '관련자'가 누구인지조차 알 길이 없었습니다.

누구에게 가서 그날의 진실을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이것이 가장 절망적이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니 스텔라의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자칫 잘못하면 '피해 학생에 대한 회유'나 '증거 인멸 시도' 혹은 '2차 가해'로 몰려 가중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순간, 저는 진실을 알 권리가 있는 아빠가 아니라, 잠재적인 가해 협력자이자 경계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건의 실체도, 목격자도, 관련자도 베일에 싸인 채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상대방은 대형 로펌의 조력을 받아 은밀하고 치밀하게 자신들의 시나리오를 굳혀가고 있었지만, 저는 우리 아이를 위해 증언해 줄 단 한 명의 이름조차 찾지 못해 제자리걸음만 반복해야 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제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사람의 기억처럼 오염되지 않고, 누군가의 회유에 흔들리지 않는 객관적인 진실의 눈. 바로 그날의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이었습니다.



물증 확보만큼이나 간절했던 것은 당사자인 스텔라의 입을 통해 그날의 진실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바로 시간에 의해 마모되고 파편화된 아이의 기억이었습니다.

학교로부터 전화를 받은 시점은 이미 사건이 발생했다고 지목된 날로부터 일주일이 훌쩍 넘게 지난 뒤였습니다. 열한 살 아이에게 일주일 전 운동장에서 누구와 무슨 놀이를 했는지, 누가 옆에 서 있었는지를 세세히 기억해 내라는 것은 가혹한 요구였습니다. 아이에게 그날의 일을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저를 더 막막하게 만들었습니다.


"잘 기억이 안 나. 그 날이 무슨 날이었더라??..."


아이의 기억은 일기장처럼 순서대로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기억의 파편들은 뒤죽박죽 섞여 있었고, 어떤 장면은 너무나 선명한 반면 어떤 장면은 아예 통째로 비어 있었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주장하는 '집단 폭행'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 앞에서, 수줍음 많은 아이는 공포심에 질려 자신의 정당한 기억조차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내가 혹시 잘못한 게 있는 거야? 친구들이 그렇다고 하면 내가 그랬던 걸까?"


이것이 가장 무서운 점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의 순수한 기억은 주변의 압박과 질문에 의해 서서히 '오염'되어 갑니다. 부모가 진실을 찾겠다고 반복해서 묻는 질문조차 아이에게는 취조처럼 느껴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아이는 아빠가 원하는 답을 내놓거나 혹은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하며 방어 기제를 작동시킵니다.

결국,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상대방에게는 거짓 시나리오를 맞출 충분한 시간이 되었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소중한 진실의 기억이 희미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뒤섞인 기억의 실타래를 붙잡고 씨름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올 불확실한 진술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로 꿰어줄 수 있는 '변하지 않는 기준점'이 절실하다는 것을요.


뒤섞인 기억의 미로 속에서 헤매던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아이의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을 일상의 기록, 바로 '학교 급식'이었습니다.

저는 곧장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건 당일의 급식 식단표를 확인했습니다. 그날의 디저트는 아이들이 열광하는 '아이스 홍시'였습니다. 식단표를 화면에 띄워놓고 다시 한번 스텔라를 나직이 불렀습니다.


"스텔라, 혹시 그날 급식에 아이스 홍시 나왔던 거 기억나?"


그 순간, 멍하던 아이의 눈동자가 반짝이며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스 홍시'라는 단어 하나가 굳게 닫혀있던 기억의 빗장을 단번에 풀어버린 것입니다.


"아빠! 맞다, 그날! 나 친구 세아(가명)랑 운동장에서 르세라핌 '퍼펙트 나이트' 춤 연습하기로 했단 말이야. 그래서 아이스 홍시도 딱 하나만 얼른 입에 넣고 뛰어 나갔어. 다른 애들은 맛있다고 두세 개씩 들고 가서 먹었는데, 나는 연습 시간 부족할까 봐 하나밖에 못 먹어서 너무 아쉬웠거든."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은 스텔라가 운동장에서 집단 폭행에 가담했다고 주장했지만, 아이의 기억 속 그날은 '좋아하는 홍시를 포기하면서까지 춤 연습에 매진했던 간절한 날'이었습니다. 홍시 하나를 아쉬워하며 운동장 구석으로 뛰어갔던 아이의 발걸음. 그 동선은 상대방이 주장하는 '폭행의 시간'과 결코 겹칠 수 없었습니다. 아이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이 사소한 '홍시 이야기'는, 거대 로펌이 쌓아 올린 견고한 거짓 서사에 균열을 내는 최초의 송곳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였습니다. 아이의 이 생생한 기억이 사실임을 증명해 줄 객관적인 물증, 즉 벚꽃 정자에서 춤을 연습하던 스텔라의 모습을 CCTV에서 찾아내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침 스텔라가 다니던 학교는 학예회 때 전교생 앞에서 공연을 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고, 스텔라는 학년이 시작될 때부터 엄마를 졸라 방과 후 과정인 '방송 댄스 무용'을 신청할 만큼 그 무대에 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아이스 홍시'라는 단어 하나로 굳게 닫혀있던 스텔라의 기억은 기적처럼 되살아났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더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려 하자 다시 한번 짙은 안개에 부딪혔습니다.


"세아(가명)랑 벚꽃 정자에서 연습했어. 근데 그게 몇 시였지? 12시였나? 1시였나?"


아이의 기억은 홍시처럼 달콤한 실마리를 주었지만, 냉혹한 법적 다툼에서 무기로 쓰기엔 턱없이 불완전했습니다. 현재 찬우(가명) 측이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정확한 시간조차 알 수 없는 캄캄한 상황. 점심시간이었는지, 쉬는 시간이었는지, 아니면 지나가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찰나를 가해로 몰아가는 것인지 모든 것이 미지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날 벚꽃 정자에서 누구를 마주쳤고, 정확히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머물렀는지 묻는 아빠의 거듭된 질문에 아이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열한 살 아이의 타임라인을 뒤섞어 놓기에 충분히 길고 잔인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이의 불완전한 기억을 억지로 쥐어짜는 것은 위험했습니다. 자칫 다급한 아빠의 질문이 아이에게 '가짜 기억'을 심어줄 수도 있었고, 그렇게 섣불리 확정 지은 기억은 훗날 실제 객관적 사실(CCTV 등)과 어긋날 경우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아이를 다그치는 대신, 흩어진 기억의 퍼즐 조각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모으고 또 모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침묵과 긴장 속에 기억을 더듬던 그때, 다시 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더 구체적이고 묵직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통보였습니다.


"아버님, 내일 점심까지 스텔라의 최초 학생 확인서(진술서)를 제출해 주셔야 합니다. 학교로 오셔서 양식을 받아 가세요."


'최초 진술서'. 학교의 통보는 단호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600일간 진행될 모든 학폭 절차와 소송의 뿌리가 되는 무서운 서류였습니다. 한 번 적어 내면 두 번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고, 이후의 모든 조사에서 기준점이 될 올가미. 아이의 기억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는데, 제게 주어진 시간은 채 하루도 남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학교 교문을 나서던 제 손에는 얇은 종이 몇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학생 확인서'라는 제목이 적힌, 흔하디흔한 A4 용지. 하지만 이 종이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학폭 사안을 다루는 학교 전담 기구 교사들, 교육청 학폭위 위원들, 그리고 훗날 거치게 될 행정심판의 위원들과 행정소송의 판사들까지. 이 사건을 심리하는 모든 전문가가 방대한 서류 더미 속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돋보기를 들이대고 검토하는 문서가 바로 이 '최초 진술서'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바로 '기억의 오염(Contamination)' 때문입니다.


학폭 심의 시스템은 사건 발생 직후 작성된 최초의 진술을 '외부의 개입이나 오염이 없는 가장 순수한 상태의 진실'로 간주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기억은 부모의 다그침, 친구들 사이의 소문, 대형 로펌이나 변호사의 코칭에 의해 변형되거나 윤색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훗날 아무리 화려한 논리로 무장한 변호사의 준비서면이 들어온다 한들, 심의 위원들은 가장 먼저 아이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눌러쓴 이 최초의 종이 한 장과 대조하며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합니다.


제가 수많은 가이드북과 판례, 그리고 실제 소송 과정에서 뼈저리게 확인한 '평가자들이 최초 진술서에서 꿰뚫어 보는 3가지 핵심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육하원칙에 입각한 '구체성'과 '일관성'

단순히 "때리지 않았습니다"라는 감정적 호소는 힘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스텔라의 경우, "점심시간에 벚꽃 정자에 있었다"가 아니라, "점심시간에 를 하나만 아이스 홍시 먹고, 벚꽃 정자으로 가서 세아와 학예 공연인 르세라핌의 퍼펙트 나이트 춤 연습을 했다"라는 구체적인 타임라인과 행동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 최초의 뼈대가 구체적일수록 훗날 진행될 대면 조사에서도 진술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진술의 일관성은 아이의 말이 진실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명서입니다.


2. 객관적 정황(물증)과의 '부합성'

아무리 구체적으로 적어도,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과 어긋나면 진술 전체의 신뢰도가 무너집니다. 평가자들은 아이의 진술서를 들고 실제 그날의 급식 식단표, 학교 일과표, 그리고 CCTV 동선과 치밀하게 대조합니다. 스텔라가 적어 낸 '아이스 홍시'와 '춤 연습'이라는 단어가 훗날 확보될 CCTV 화면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 우리 아이의 진술서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이 되는 것입니다.


3. 아이의 언어로 쓰인 '자발성'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진술서에 어른의 단어, 즉 '법적 용어'를 섞어 넣는 것입니다. 11살 아이의 진술서에 "물리적 접촉은 없었으며", "위력에 의한 폭행 사실을 부인합니다" 같은 문장이 들어가면, 심의 위원들은 단번에 '부모나 변호사에 의해 심각하게 코칭된 오염 진술'로 판단하여 신빙성을 0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투박하고 맞춤법이 틀리더라도, 오직 '아이의 시선과 아이의 언어'로 작성되어야만 그 진정성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최초 진술서는 억울함을 푸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끔찍한 덫이 되기도 합니다.

압박감에 짓눌린 수많은 아이들이 당장의 공포를 피하고자, 혹은 윽박지르는 분위기에 겁을 먹고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제가 때렸을 수도 있어요", "장난이었는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라는 식의 타협적인 문장을 덜컥 적어 내곤 합니다.

명심하셔야 합니다. 첫 단추가 이렇게 꼬여버리면, 이후의 방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집니다. 훗날 부모가 뛰어다니며 CCTV를 찾아내고 "우리 아이가 강압에 의해 억지로 쓴 것"이라고 아무리 항변해 보아도, 기계적인 시스템은 "학생 본인이 자필로 인정한 최초 진술서가 존재한다"는 논리로 모든 방어권을 묵살해 버립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싸움이, 내 아이가 쓴 종이 한 장을 뒤집어야 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내일 점심까지 제게 남은 시간은 단 십수 시간.

저는 떨리는 손으로 빈 확인서를 바카라상 위에 올려두고 스텔라와 마주 앉았습니다. 강요하지 않되 흔들림 없이, 아이의 파편화된 기억 속에서 '아이스 홍시'와 '벚꽃 정자'이라는 팩트를 건져 올려 가장 단단한 첫 단추를 꿰어야만 했습니다. 대형 로펌의 화려한 거짓 서류 더미를 종이 한 장으로 박살 낼, 열한 살 아이의 진실된 문장을 찾기 위한 길고 긴 밤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