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은 기회를 놓친 상태가 아니라 선택권을 보유한 상태였다
트레이딩을 처음 할 때는 포지션이 없는 상태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시장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았다. 롱을 잡고 있으면 상승을 기대할 수 있고, 숏을 잡고 있으면 하락에서 수익을 낼 수 있지만 현금으로 기다리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는 뜻처럼 생각했다. 차트를 켜놓고도 거래하지 않는 날에는 시간을 허비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매매할수록 이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포지션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현재 시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고 선택한 상태였다. 롱과 숏이 방향에 대한 선택이라면 현금은 불확실성에 노출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세 가지 가운데 하나일 뿐 어느 하나가 반드시 더 적극적이거나 우월한 것은 아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트레이더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차트를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어디에서 들어갈까’를 먼저 생각한다. 시장이 상승할 것 같으면 롱 자리를 찾고, 하락할 것 같으면 숏 자리를 찾는다. 그런데 실제 시장에는 세 번째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불필요한 손실을 많이 냈던 시기는 이 세 번째 선택지를 잘 사용하지 못했을 때였다. 방향이 애매한데도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할 것 같았고, 지지와 저항 사이의 한가운데에서도 어떻게든 근거를 찾아 진입했다. 상승과 하락 가능성이 비슷해 보이면 그중 조금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쪽을 선택했다. 마치 시장을 보고 있는 이상 반드시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트레이딩에서 애매하다는 판단도 하나의 결론이었다.
시장 구조가 명확하지 않고 손절 위치도 애매하며 기대할 수 있는 움직임도 크지 않다면 거래하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확률적으로 약간 우세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돈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트레이딩은 모든 상황에 참여하는 게임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할 만한 상황만 선택하는 게임에 더 가깝다.
이 점은 손익비를 생각하면 더 분명해진다. 방향이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진입 위치가 나쁘면 좋은 거래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지지와 저항 사이의 중간에서 들어가면 손절은 멀고 목표까지의 공간은 짧아질 수 있다. 방향을 맞혀도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제한적인데 틀리면 손실은 커진다. 이런 거래는 예측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상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맞더라도 굳이 그 가격에서 돈을 걸 이유는 없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래도 오를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은 그 말과 “그래서 지금 거래해야 한다”는 말을 분리하려고 한다. 시장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과 포지션을 보유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서도 진입 위치가 좋지 않다면 기다릴 수 있고, 하락을 예상하면서도 손절을 명확하게 둘 수 없다면 거래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나서 시장을 조금 더 편하게 볼 수 있게 됐다. 반드시 롱이나 숏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상승 가능성을 높게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격이 내가 원하는 자리까지 내려오지 않거나, 이미 너무 많이 오른 뒤라면 그냥 지켜본다. 이후 예상대로 상승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놓친 손실이 아니다. 애초에 내가 원하는 거래 조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금으로 있는 상태에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쉽다는 것이다. 포지션이 생기는 순간부터 사람은 객관성을 잃기 쉽다. 롱을 잡으면 상승 근거가 더 잘 보이고, 숏을 잡으면 하락 이유가 눈에 들어온다. 같은 뉴스와 같은 캔들을 봐도 자신의 포지션에 따라 의미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 포지션도 없다면 적어도 특정 방향을 반드시 옳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
그래서 때로는 포지션을 정리한 뒤 차트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거래하고 있을 때는 분명 상승이 이어질 것 같았는데, 손절하고 몇 분 뒤 다시 보면 하락 구조가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시장이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니라 내 시선이 바뀐 것이다. 돈이 걸려 있다는 사실 하나가 생각보다 강하게 판단을 붙잡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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