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실현에 대한 사유 (4/5)
'일'하는 것으로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나를 사랑하는 시간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현실에서도 '자아실현'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먼저 내가 무엇을 할 때 채워지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을 할 때 채워지는가. 무엇으로 행복한가. 타인의 평가나 인정 없이 스스로 만족하는 것, 남들에게 자랑하지 않아도 오롯이 가슴 벅차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은 '왜곡된 사랑'이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과 판단, 경험, 감정들을 '사랑'으로 오해하곤 한다. 이 오해가 길어지면, 오해에 길들여지면 우리는 '왜곡'에 집착하게 되고, 채워짐 없이 반복되고 깊어지는 '집착'에 지쳐간다. (마치 목이 말라서, 목마름을 없애줄 것 같아 바닷물을 마시면 더욱 목마름이 깊어지듯이) 채워질 것 같아서 '왜곡'을 끊임없이 좇지만, 이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그 갈망은 나를 결핍에 빠뜨리고 절망에 이르게 한다.
'게으른 쾌락'은 흔히 하게 되는 '왜곡된 사랑'이다. 쾌락과 사랑은 다르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는 것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혼동하곤 한다. 나를 사랑하며 느껴지는 본질적 충족감을 경험하지 못했을 때, 쾌락이 행복이며, 더 큰 쾌락을 자주 경험하는 삶이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이 오해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쾌락'이 슬롯에서 모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슬롯·경제적 성공, 경쟁적 성취, 욕망 소비, 과시적 경험과 같은 쾌락을 위해 노력하고, 부러워하며, 누리고자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이 왜 쾌락일까. 성공하고, 소비하는 것 자체는 쾌락이 아니다. 그 행위가 나의 만족을 위한 주체적 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공허를 덮어두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때 쾌락이 된다.
세상의 인정과 성취의 본래 목적인 나 자신은 사라지고, 오직 결핍을 잠시 잊기 위해 외부의 평가에 매달리는 것. 자신을 대면하지 않고 공허를 달래기 위해 삶을 도구 삼을 때, 그 모든 추구는 쾌락으로 전락한다. 쾌락은 나를 조금씩 지워가지만, 사랑은 나를 더욱 존재하게 한다.
나아가 현대 쾌락은 '게으른 쾌락'을 향해 간다. 모두 바쁜 하루, 일상을 산다. SNS와 짧은 영상들로 여가 시간조차 쉴 틈이 없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바빠질수록 삶과 나를 '게으르게' 대한다. 타인이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 삶의 목적을 스스로 정의하는 것을 미룬다.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채우는 것보다는 유행하는 여가를 좇고 자랑하기에 급급하다.
삶은 더없이 치열하고 빈틈이 없다. 하지만 그 분주함은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을 미루게 한다. 나와 마주하며 스스로 삶을 이뤄가는 여정에는 깊은 사유와 고요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무게를 감당하는 대신 바쁨과 성취, 즉각적 자극을 선택한다. 몸과 머리는 쉼 없이 움직이지만, 내면을 향한 시선은 멈춰 서 있다. 우리는 이렇게 나를 '게으르게' 대한다.
무엇을 할 때 채워지는가. 무엇으로 충만한 기쁨과 깊은 안정감, 아득한 편안함을 경험하는가. 당신에게 있어 '왜곡된 사랑'이 아닌, 온전히 나를 존재하게 하는 '사랑'은 무엇인가. 슬롯의 평가나 결과에 기대지 않고, 그 행위 자체로 내면의 밀도를 채워가는 시간은 무엇인가. 공허를 덮기 위한 분주함을 거두고, 스스로를 온전히 채우는 주체적인 행위는 무엇인가.
'일'하는 것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무엇을 할 때, 어떤 시간을 보낼 때 채워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