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밟고 서다

by펜끝

밟았다.

발바닥에 닿는 이 감촉. 찌릿한 전율이 발끝을 간질거리더니 서서히 종아리를 타고 올라온다. 매주 새로운 글제를 마주할 때마다 이 낯선 감각과 대면한다. 때로는 물컹하고 미끄덩한 무언가를 밟았을 때처럼 얼른 털어내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한다. 가끔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에 다리에 쥐가 날 때까지 꼼짝 못 하고 서 있을 때도 있다.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발을 들인 곳이 이토록 가슴 졸이는 지뢰밭인 줄은 몰랐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한 주 한 주 겨우 발을 내디뎠다. 피해 갈 방법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마구잡이로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밟는다고 막 터지는 게 아니었다.


발바닥을 타고 올라온 전율이 가슴에서 한참을 머물고 나서야 비로소 도화선에 불이 붙는다. 억지로 불을 붙이려고 하면, '피식' 소리를 내며 꺼지기 일쑤였다. 가슴을 거치지 않고 머리로 곧장 올라가 버린 경우는 싱겁기 짝이 없는 문장이 되어 미미한 폭발음만 남기고 흩어져 버렸다.


제대로 점화되어 터졌을 때의 풍경은 상상과 달랐다. 내 안의 지뢰가 터지고 타인의 그것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살벌했던 지뢰밭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피 터지는 파편이 난무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함께 쓰는 이들의 문장이 이팝나무꽃처럼 터져 나올 때, 갓 튀겨낸 팝콘처럼 짭조름하고 고소한 기운이 입안 가득 번져왔다.


글쓰기는 분명 고역이다. 하지만 무엇이 되어 터질지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매료시킨다. 묵혀 둔 미움이 터져 나오며 치유가 되고, 정체 모를 불안들이 봄눈 녹듯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아버지의 등'이란 글제를 쓸 때, 내 안의 지뢰는 가장 격렬하게 터져버렸다. 예기치 못한 그 폭발에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감정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미움이라 믿었던 것은 그리움이었고, 원망이라 여겼던 것은 때늦은 후회였다. 이렇게 뒤엉킨 감정들을 꾸역꾸역 밀어내며 살아왔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글쓰기는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침없이 속을 토해내게 하고, 상처에 새살이 돋게도 해주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일 아침 침대에서 나와 지뢰를 밟는다. 그 지뢰는 바로 나 자신이다. 폭발이 일고 나면, 나머지 하루는 흩어진 조각들을 다시 끼워 맞추는 데 보낸다."

나를 터뜨리는 지뢰라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밟아볼 생각이다. 매일 이렇게 흩어진 파편들로 퍼즐을 맞추다 보면, 언젠가 내 삶도 꽤 봐줄 만한 그림 하나가 되어있지 않을까.


오늘도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떨림, '나'를 밟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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