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퇴사했던가
9월을 시작하면서 크게 잡았던 나의 목표는 브이로그 재개였다. 평소 다른 사람의 브이로그를 보는 데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소비하는 나로서 브이로그는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소망 같은 것이었다. 사실 이미 3년쯤 전에 회사 다니던 시절 쉬는 시간을 쪼개서 브이로그를 몇 개 업로드한 적이 있었다. 아무도 보진 않았지만. 어쨌든 회사 다닐 때도 해냈던 브이로그, 이제 퇴사까지 했으니 훨씬 더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9월부터 브이로그 촬영 및 편집을 다시 시작했다.
지난 3년 동안 프리미어(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에 대한 내 이해도는 다시 0으로 돌아가 있었다. 컷편집은 어떻게 하는지, 음량 조절은 어떻게 하는지 다 까먹어서 하나하나 처음부터 배우는 학생처럼 다시 공부해야만 했다. 하지만 3년 전과 달리 나에겐 지피티가 있었으므로 잊어버린 기능은 지피티에게 물어봐가며 어떻게든 기억해 내 19분짜리 브이로그를 완성해 냈다. 주말을 꼬박 투자해 낸 결과였다.
오랜만에 브이로그를 촬영&편집하면서 솔직히, 꽤 재미있었다. 영상을 만드는 일은 글을 쓰는 일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어디에서 영상을 잘라낼 것인지, bgm은 무엇으로 골라 깔아볼 것인지, 효과음은 어떻게 넣을 것인지 등등을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로 하나의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건 일종의 성취감을 준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 썸네일을 포토샵으로 정성 들여 만들고 마침내 유튜브 업로드 버튼을 눌러낸 순간, 나는 오랜만에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당황했던 건 그다음이었다. 올릴 때까지는 좋았는데, 그다음에 기분이 영 이상했다. 분명 신이 나고 다음 유튜브 영상을 찍기 위한 작업에 돌입할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기분이 가라앉고 몸이 축 처졌다. 왜 이러지? 스스로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조회수가 안 나와서 그런가 싶었다. 주말 내내 편집해 올린 영상의 조회수가 100회에도 미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에도 어쩐지 찝찝했다. 왜냐하면 100회가 안 되는 조회수는 내 예상에서 벗어난 저조한 성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3년 전 브이로그를 열심히 올렸을 때도 내 영상의 조회수는 항상 몇십 회에 그쳤다. 운 좋으면 몇백 회 정도? 여하간 오랜만에 올리는 별 거 아닌 브이로그니까 조회수 대박이 터지길 바랐던 건 전혀 아니었다. 조회수는 내 저조한 기분의 원인이 아닌 것 같았다.
한 가지 힌트는 유튜브 동영상을 올린 후 며칠 동안 갑자기 내 경제 상황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내가 지난달에 얼마를 벌었지? 얼마를 쓰고 있지? 앞으로 얼마를 벌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처음에는 퇴사한 지 1년이 거의 다 되어가서 생겨나는 불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 그런 불안이 확 생겨난 시점이 미묘했다. 하필이면? 첫 유튜브 동영상을 올리고 나서? 이 두 가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고 나서야, 내 불안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대략적으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추측컨대 영상편집이라는 새로운 일과 노동(!)이 퇴사 후 1년이라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돈에 대한 내 불안을 확 불러온 것 같다. 주말을 온전히 투자해서 영상을 만들어낼 때까지만 해도 신이 났었는데, 그 영상이 돈이 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갑자기 스스로가 철없어 보이고 한심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퇴사하고 지난 약 1년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돈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 왔다. 같은 글쓰기를 하더라도 돈이 되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고, 글쓰기 강의를 기획하고 실행했고, 도서관 강연을 했다. 바카라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그 모든 것은 작가로서의 내 커리어를 위해서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 했었다.
그런데 브이로그는 어떤가? 작가로서의 브랜딩에도 별로 맞지 않고, 그렇다고 당장 돈이 되지도 않는, 그야말로 취미 생활에 가까운 활동이었다. 그런 브이로그에 며칠의 시간을 투자하는 스스로를 보며 엄격한 자아가 혼낼 준비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너, 지금 돈도 못 벌면서 이렇게 하고 싶기만 하고 돈도 안 되는, 의미 없는 일에 시간 투자해도 돼? 그 시간에 차라리 글을 쓰는 게 어때? 아니면 알바라도 하는 게 어때? 3년 전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일 거라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때는 월급을 받고 있었으니, 브이로그를 여가시간에 즐기는 취미 정도로 여길 수 있었던 거다. 근데 지금은 뭔가 작가로서의 나, 프리랜서로서의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인지 잣대를 들이대게 되어버린 것이고.
물론 돈은 중요하다. 퇴사하고 1년 동안 그간 벌어둔 돈을 성실히 까먹으며 살면서 돈의 중요성을 처절히 깨달았다. 무엇보다 강의나 강연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버는 돈의 소중함을 깨달아버렸기에, 나는 (내가 즐거운 일을 하고) 돈 벌기에 더 진심이 되었다. 그러니 내 장점들을 어떻게 수익화할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 진지하게 계속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전부인가? 오직 돈을 벌기 위해 퇴사한 것은 아니었다(그야말로 어불성설. 돈을 벌 거였으면 회사에 붙어있었어야지). 그러니 브이로그 같이 내가 좋아하지만 당장은 돈이 안 되는 일도 죄바카라감 없이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이런 생각을 했다고 갑자기 다시 브이로그를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슉 생겨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기분은 가라앉아 있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자아도 그대로다. 하지만 그런 자아와 나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 자아를 화해시켜야 한다는 것은 깨달았으니, 이제 돈 벌 궁리를 지속하면서 한편으로는 ’쓸데없는 일‘로 여겨지는 브이로그에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 봐야겠다는 생각 정도는 들었다는 거. 그게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방향일 테다. 나는 조금 더 딴짓을 열심히 해야 해. 그러려고 퇴사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