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인 분명
이기기 힘든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허기에 고기, 시기와 만난 용기. 이름 말고 애기 혹은 자기라 부르기. (그리고 슬기><). 적기와 납기, 위기, 아니 저기 저기, 부장님 중간에 말 바꾸기 있기 없기? 그런데 나는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중의 제일을 취기로 정했다. 왜냐하면 이번 쓰기가 그래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간 보기 맛보기 딱 거기까지만 하려고 했는데 결국 올렸다. 백기.
최애의 아이돌, 에스파(aespa)가 정규 2집, <레모네이드(LEMONADE)>로 돌아왔다. 지난 활동 후 무려 8개월 만의 컴백이다. 에스파의 정체성을 다중 우주 세계관으로 확장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 지난 앨범들과 달리, 이번 앨범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강렬했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인생에 레몬 같은 시련이 와도 힘들어하지 말고 그걸로 레모네이드나 만들어 먹자는 거다.
발매 2주 만에 103만 장을 판매하며 에스파의 8번째 밀리언 셀러가 된 이번 앨범엔 G-DRAGON, Ty Dolla $ign, Becky G와 같은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피처링에 참가했다. 나는 에스파만 있어도 충분히 좋은데, 우리 애들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레모네이드를 만들고 싶었나 보다. 에스파의 레모네이드는 음원 차트를 넘어 리얼 월드를 점령했다. 여의도 IFC Mall을 비롯해 서울 곳곳에서 에스파 앨범 프로모션이 진행됐고, 에스파 팝업스토어도 열렸다. 그렇지, 나한텐 이게 파티다.
그리고 그 파티는 우리 집 식탁까지 이어진다. 에스파가 편의점 CU와 콜라보레이션으로 에스파 레모네이드 하이볼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최애의 아이돌, 에스파의 이름이 붙은 술이라니. 출시일에 맞춰 앱에서 실시간으로 재고를 조회했다. 재고는 점바점이라지만 입고량이 적어 매대에서 안 보이길래 픽업 주문을 넣었다. 한 캔에 4,500원, 에스파 멤버 수만큼 4캔을 사면 16,000원. 편의점 캔맥주 중에는 가격이 좀 나가지만 덕후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19세 미만의 주류를 구매할 수 없는 어린 아기 마이(MY)들아, 보고 있니. 우쭈쭈 이게 어른 마이의 덕질이다.
에스파 하이볼 출시 첫날, 첫 번째로 방문한 편의점에서 카리나(KARINA)를 만났다. 무려 6개 들입으로 만났다. 아, 이게 세트로 들어오는구..나? 랜덤 포토카드도 아닌데 긴장한 채로 다음 편의점에 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카리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거워진 장바구니만큼 괜히 마음이 묵직해졌다. 그래서 마지막 자주 다니는 단골 편의점에선 사장님한테 에스파 하이볼이 있냐고 먼저 물어봤다. 언제나 친절한 우리 사장님은 크게 반색하며 창고에서 딱 오늘 들어온 카리나들과 함께 돌아오셨다. 예상하지 못한 연속적인 카리나와의 만남에 당황하고 있으니, 사장님이 찾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정확한 대답 대신 멋쩍게 웃으며 거기서 몇 개를 더 집었다. 그래 지민아, 우리 집으로 가자!
편의점 사장님 사모님 말씀이, 우리 동네에 들어오는 에스파 하이볼은 늘 똑같은 그림-사장님, 얘 이름은 카리나예요-이란다. 온통 카리나인 세상에서 나는 지젤(GISELLE)과 윈터(WINTER), 닝닝(NINGNING)을 만나기 위해 월드 투어를 도는 에스파를 따라 편의점 투어를 시작했다. 마냥 집에 쌓아두기보단 마시면서 에스파의 이번 컴백을 즐기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에스파 덕분에 한 주 내내 저녁거리와 간단한 안주를 사서 엄마 아빠랑 파티를 하는 중이다. 그제는 치킨, 어제는 퀘사디아였는데 아빠가 오늘 다시 치킨이 땡긴다고 한다.
우리 가족의 돼지 파티에 함께한 #에스파레모네이드하이볼 속에는 생레몬 슬라이스가 들어있고, 탄산이 풍부한데 많이 달지 않아 질리지 않고 마실 수 있어서 제값은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크러시보다) 맛있다. 도수가 5%여서 별로 안 취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리니 벌써 주말이 왔다. 덕질을 하다 보면 시간도 체력도 돈도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는 다음에 또 CU에서 에스파를 만난다면 그게 누구여도 좋을 것 같다. 나에게는 이런 우연조차 덕질이고 사랑일 테니.
이렇게 냉장고 가득 나의 사랑을 여러 번 채웠어도 아직도 엄마는 에스파 친구들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고, 아빠한테는 에스파 노래를 아는 게 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지난 에스파 윈터와 카리나의 생일 파티는 티켓팅에 실패해서 초대받지 못했어도, 오늘 우리가 가장 신나는 에스파-티를 했단 것을 엄마 아빠는 알까. 집 앞 치킨집은 여전히 맛집이고, 에스파도 여전히 잘한다. 이런 행복이 얼마나 더 있으려나. 하나 둘 셋 넷. 아마 몇 개 없을 것 같은데?
아, 머리가 띵해서 다른 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이 레몬이 내게 너무 달다.
p.s. 2026.07.10. 에스파 완전체 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