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모으자

[다정한 마음 수집관] 프롤로그

by팡스키

누구나 영화를 보거나 바카라을 읽다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일시정지를 누르거나 펜을 찾아 앉은 적이 있을 것 같다. 캡처를 눌러 저장하거나, 밑줄을 긋고 노트에 옮기기도 했을 것이다. 잊지 않고 싶어서. 기억하고 싶어서.

당신의 캡처와 메모에 담기는 순간들은, 그속에 담긴 마음들은 어떤 모양인가.


나의 경우 그때그때 시절 관심사에 따라 변하긴 하지만, 긴 세월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있는 것들은 이렇게 요약된다.

'아끼는 마음을 다정하게 표현하기'

재생을 멈추고 받아적는 대사들, 페이지 가운데를 문진으로 눌러놓고 손끝으로 짚어가며 옮겨 쓰는 단어들, 대부분이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는 온기 가득한 마음이었다.


한해의 끝자락을 맞아 그간 찍어둔 스크린샷과 밑줄, 메모들을 톺아보니, 근래에 모아둔 모든 장면과 문장이 그러한 마음으로 수렴했다. 올 한해 나에게 그런 마음과 말들이 필요했기에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쟁여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은 오기 마련이고, 찬 공기는 따뜻한 모든 것을 춥게 하니까.


수집한 도토리를 하나씩 기록해두면 언젠가의 내가 따뜻한 무엇도 떠올릴 수 없을 때 유효한 도움이 될 것 같다. 인생이 늘 평탄할 수는 없고 한 번씩 고꾸라질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혹독한 추위에 핫팩도 난로도 담요도 찾아지지 않는 날이 있곤 하니까.


게다가 나 같은 인간을 녹일 수 있는 무엇이라면, 나랑 비슷한 상처를 데리고 사는 누군가의 꽁꽁 언 마음도 따뜻하게 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온기를 은은하게 비출 수 있지 않을까. 대바카라 없이 거창하고 이상적인 바람도 품어 본다.

언젠가 내가 사라져도 이 도토리 보관소는 남아서, 마음이 추운 어떤 이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을 지도 몰라! 같은 상상도 해본다.


모쪼록 시작하는 걸음이니까, 무엇이든 긍정적인 생각만 적어두기로 한다.


좋아한다고 손에 꼽는 영화도, 너무 너무 좋기 때문에 소개하고 싶지 않아! 라는 기분이 드는 바카라도, 노랫말도, 한참 웃으면서 듣다가 일순간 울컥해버린 팟캐스트에서도, 전부 그런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으니까. 이런저런 상황과 여건이 변하더라도 나를 위로하는 말들은 계속 발견되고 보관소에 차곡차곡 쌓여 갈 테니까.


나는 아주 멀리 떠난 뒤에도, 이 카테고리로 언제든 신나게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성실하게 써야겠지. 느려도 꾸준히 쓰겠다고 다짐해 본다 : 내가 나에게 부탁하기 위해 적어두는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