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 하면 얼마 줘?

1부 아파트 재건축 전

by오서

띠리리링.

“여…… 보…… 세…… 요…….”

정한은 잠에 취한 목소리로 힘겹게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야! 아직도 자냐? 시간이 몇 신데……. 일어나, 좀!”

“왜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할 일이 있든 없든! 그래도 남들 일어나는 시간에는 일어나야 할 일이 생기든 말든 할 거 아냐! 야! 빨리 일어나서 잠깐 건너와. TV가 갑자기 안 나와.”

“아, 뭐래……. TV가 안 나오면 기사를 불러야지 왜 날 불러…….”

“야! 기사 한 번 부르면 돈이 얼만데! 일단 네가 먼저 좀 봐. 지

금 지훈이가 TV 안 나온다고 난리야. 빨리 튀어와!”

정한은 침대에서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공정한’ 이름처럼 언제 어디서든 공정함을 따지고 바른말 하기 좋아하는 그는, 회사에서도 바른말 하기로 유명해 윗분들에게 칭찬이 자자하기는커녕 모든 임원들이 저격 총을 겨누고 있는 대상이었다. 급기야 그는 칼을 뽑아선 안 되는 상대에게까지 칼을 뽑으며 잘못된 선택을 했고, 되레 상대에게 무참히 저격당해 내동댕이쳐졌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그는 서울의 살인적인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고민하던 중, 다행히 누나가 사는 밀양 삼문동 아파트에 급매로 나온 집이 딱 정한의 예산과 맞아떨어져, 누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누나의 호출을 받아 긴급 출동할 때가 있다.


“야, 빨리 저거 어떻게 좀 해봐. 지훈이 영어 만화 봐야 해.”

“야, 인마! 넌 학교도 안 가냐? 이 시간에 왜 집에서 TV를 봐?”

“삼촌, 오늘 공휴일인데?”

“그리고 넌 왜 맨날 외삼촌보고 삼촌이래?”

“난 삼촌이라고 하는 게 편해.”

지훈은 ‘삼촌 왜 저래?’라는 표정으로 눈을 멀뚱거리며 정한에게 대답했다.

“아……. 그래? 크큭!”

“만날천날 늦게 일어나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 턱이 있나.”

정한은 머쓱하게 웃으며 TV를 만지기 시작했고, 정해는 고개를 절레절레 그으며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짠, TV가 살아났습니다! 어때, 내 손기술이!”

“아……. 저게 영원히 안 켜져야 했는데…….”

TV가 살아났다며 자랑하는 정한은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TV

를 쏘아보며 지훈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기껏 고쳐놨더니 뭐래.”

“야, 신경 쓰지 마. 요 자식 요거 새 TV 사고 싶어서 그래!”

“유지훈! 이거 봐. 삼촌이 고칠 수 있다고 했지? 이렇게 멀쩡한데 자꾸 TV 사자고 하지 마. 엄마는 TV가 타버릴 때까지 쓸 거야.”

“헐, 그건 좀……. 근데 누나, 이 TV 얼마나 썼지?”

“한 15년?”

“히이이익, 미쳤네! 지훈이가 바꾸자고 할 만하네!”

“니들 둘 다 입 다물어. TV는 사람 형체를 못 알아봐야 바꾸는 거야. 야, 그리고 너 밥 안 먹었지? 밥이나 먹고 가.”

“매형은?”

“너희 매형이 공휴일이 있었냐? 오늘도 당연히 출근했지.”

정해는 정한의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심 TV를 고치러 온 정한이. 행여나 지훈에게 한심한 삼촌으로 보일까 봐 정한의 손기술이 좋다며 추켜세우더니, 어릴 때 공부까지 잘하던 수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삼촌, 동대표가 뭐야?”

지훈이 식탁에 앉으며 물었다.

“동대표? 동장 아니고? 동대표?”

“응, 동대표. 엘리베이터에 동대표 출마하라고 붙여놨던데.”

“글쎼……. 누나, 동대표 뭔지 알아?”

“동대표? 쓸모없는 거. 거 왜…… 아파트 동마다 대표 뽑잖아. 그거 나오라고 붙인 거야.”

“들었지? 그거래.”

“엄마, 그럼 내가 나가도 돼?”

지훈은 꽤 진지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오, 유지훈 권력욕이 있어. 하하하하!”

정한은 지훈이 귀여운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삼촌, 나 이래 봬도 3학년 때부터 지금 5학년까지 쭉 회장이야. 1학년이랑 2학년은 회장이 없어서 그렇지, 있었으면 전 학년 다 회장 했을 거야.”

“오, 그래? 몰랐네. 지훈이 리더십이 대박인데! 3선이라니! 우리 집안에 3선 회장이 있어!”

“야, 뭐가 대박이야……. 쟤네 한 반에 회장이 일곱 명이야. 그리고 한 반에 전체 인원이 스물다섯 명도 안 돼. 반에서 3분의 1이 회장인 거지. 우리 때랑 달라.”

정해가 콧방귀를 뀌며 말하자, 지훈은 약이 바짝 오르기 시작했다.

“에이, 누나는 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래도 3선은 대단한 거지. 그래서 3선 회장님 동대표도 하고 싶으셔?”

“응.”

“왜 하고 싶으셔?”

“우리 아파트가 너무 엉망인 거 같아.”

“엉망? 어떤 게…….”

“음, 우선 너무 오래됐고…… 또 더럽고,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리고 층간소음도 심해.”

“아들, 너도 이상하고 니 소음도 심하거든. 엄마는 니 소음 때문에 못 살겠어.”

지훈 말에 정해는 또 끼어들며 잔소리를 이어갔다. 지훈의 미간이 구겨지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넌 미성년자라 동대표 못 나가니까 외삼촌 밥 먹는데 귀찮게 하지 마.”

“그럼 몇 살부터 나갈 수 있는데?”

“만 19세 이상. 넌 아직도 한참 멀었어.”

“그럼…… 나 대신 삼촌이 나가면 안 돼?”

“캑.”

삼촌이 나가면 안 되냐는 지훈의 말에 정한은 국을 마시다 목에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유지훈, 삼촌 밥 먹는데 귀찮게 하지 말라니까.”

지훈은 동그란 얼굴만큼 동그란 눈으로 생글거리며 정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 삼촌이?”

“응! 삼촌이 동대표 되면 엄청 멋있을 거 같아! 그리고 삼촌이 우리 놀이터도 고쳐줘!”

“야, 유지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저런 건 할 일 없고 시간 많은 사람들이나…….”

‘할 일 없고 시간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말이 나오려던 정해는 급하게 말을 잘랐다. 정한이라는 사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 줄기 상처라도 닿을까 봐 내내 마음이 쓰였다.

“음! 암튼 정한이 너도 행여 저런 거 할 생각 하지 마. 저거 해봐야 돈도 얼마 못 받고, 욕만 바가지로 얻어 처먹어.”

“엄마도 참! 회장이 욕도 먹고, 칭찬도 받고 그런 거지. 욕 좀 먹는 게 뭐가 무섭다고.”

정한은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정해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거 하면…… 얼마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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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아파트> 2026년 7월 11일 첫 방송!

“아파트 회장을 직접 하면서 너무 많은 문제를 목도했다. 소설이라도 써야 슬롯가 관심을 가질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쓰는 것 뿐이니까.”

- 소설 <삼문동 봉주르 아파트>를 출간하며 2025.12. 오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