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존중하며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먼 이야기이긴 하지만, 언젠가 우리 집에 찾아올 새로운 생명을 상상해 봅니다. 아이의 발가락 하나, 배냇짓 한 번이 얼마나 기적 같을지, 그 벅찬 감동을 세상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굴뚝같을지도 미리 짐작해 봅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 전부터 다짐했습니다. 내 아이가 태어나도 메신저 프로필이나 SNS에 아이의 사진을 올리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아이에 대한 저의 첫 번째 존중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사진을 SNS에 올리는 행위, 이른바 ‘셰어런팅(Sharerenting)’을 법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합니다. 부모에 의해 노출된 아이의 일상이 훗날 아이의 초상권과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저 또한 아이의 사진을 공유하지 않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에게도 자신의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지 결정할 권리, 즉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자신의 일상을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고 싶다는 의사가 없습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시기의 모습들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동의 없이 기록하고 전파하는 것이, 훗날 자라난 아이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갈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물론 저의 이 결심이 완벽한 차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함께 기뻐해 줄 친척들이나 지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의 성장을 기록하고 공유할 것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저 혼자 거스르기엔 저의 다짐은 작고 힘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사랑스러운 아이의 사진을 공유하며 행복을 나누는 이들의 마음을 결코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건 부모로서 누릴 수 있는 커다란 기쁨이자 축복이며, 저의 가족들 역시 아이를 예뻐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나눌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 따뜻한 애정의 방식 또한 아이에게는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다만, 저는 미래의 아빠로서 조금 다른 방식의 사랑을 택하려 합니다. 사실 저의 이 결심은 일종의 상징적인 교육에 가깝습니다. 훗날 아이가 부쩍 자라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네 곁에 네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지켜주려 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아이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묵직하고 소중한 일인지, 그 선택의 무게감을 직접 느끼며 자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네 인생의 모든 선택권, 심지어 네 얼굴이 세상에 비치는 방식조차 너의 의사여야 한다고 생각했단다."라고 말입니다.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영역을 부모의 기록으로 미리 채우는 대신, 훗날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의하고 꾸려갈 수 있도록 그 빈자리를 오롯이 남겨두는 아빠가 될 계획입니다. 세상이 너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네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하기에, 나는 그 소중한 결정권의 열쇠를 아이의 손에 쥐여준 채 묵묵히 기다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