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웠네
작년의 키워드는 청소, 올해의 키워드는 정리
선물 혹은 이벤트 상품으로 받은 의류, 도서, 제품 대부분을 도서관과 기관으로 기증했다.
집 안 곳곳에 빈자리가 생겼다.
빈자리가 생긴 후 틈나는 대로 가족과 함께 성당과 절에 다니며 기도했다.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방법을 알려주시던지..."
"아니면 깨달을 기회까지만 주시던지 하십시오."
믿음도 없는 중생의 건방진 기도에도 신은 응답해 주시려나...?
계절이 바뀌는 시기 9월 여느 때처럼 휴대폰 SNS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를 보다가 "SNS 알고리즘이 왜 이따 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 주제가 내 머릿속 혼란함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혼란하거나, 부정적 정보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읽거나, 댓글, 추천 등 반응하지 않고 일관되게 '관심 없음' 버튼을 꾸준히 눌러서 거부의사를 제출하면서 차단, 제한 기능을 일생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 계정들만 꾸준히 매일 들여다보고 기록하며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배우고 있다.
최근 가계부를 샀다.
라디오 경제방송 사연에 당첨선물로 받은 가계부를 괜히 버렸다고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가계부는 뭘 어떻게 적는 거야?
쳇지피티에 검색하니 고정비, 대출 상환, 자동이체...
아이고 뭐가 이렇게 정리할 게 많아?
가계부 사전작업만 한 달쯤 걸렸다.
아무런 기준 없이 제각각 다른 날짜에, 중구난방으로 자동이체 되고 있던 보험비.
쓸데없는 소액 구독료. 심지어 신청해 놓고 사용도 안 하고 있었다니.
고정비만 확인하려던 것이 결국 통장정리까지 이어졌다.
구분 없이 사용하던 통장의 용도를 구분하기 위해 계좌정보통합관리조회를 했다.
각 은행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수년간 거래가 끊긴 통장에 방치된 소액의 돈들을 보며 '이렇게 안에서 바가지가 박 터지게 새고 있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모든 고정지출은 매월 같은 날짜에 지출통장에서 빠져나가도록 해두었다.
불필요한 체크/신용카드는 정리했다.
온 가족의 보험 보장내용 등을 세세하게 구분해서 정리했다.
가계부 쓰는 게 뭐가 이렇게 어렵냐.
빈대 좀 잡아볼까 했더니 초가삼간 다 태울 것 같다.
올해 큰 계획은 없었고, 딱 두 가지만 딱 끝낸다고 작정한 것이 있었다.
이달 말 완료된다.
완료에 가까워 졌는데 느닷없이 조금도 계획에 없던 계획이 세워졌다.
2026년 11월부터의 계획이다.
큰 목표가 정해졌다.
다른 문제들은 큰 목표를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해결되거나 혹은 떨어져 나가겠구나 확신이 섰다.
그러니 지금은 문제로 두어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닿았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괴로움이 불쑥 찾아올 때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대파를 송송 썰었고, 통마늘을 믹서기에 갈아 냉동실에 얼리고, 야채를 국거리, 볶음용으로 나눠 정리했다.
"그래, 그동안 시간을 함부로 사용했으니까 당연히 벌 받지."
"그땐 정말 최선을 다 했잖아."
"악의를 품고 피해 준 적 없으면 되었지."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해."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새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려주려고 신께서 끝도 없이 자경단을 보냈구나.
하나님, 부처님 제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편과 신혼을 시작했던 야탑의 어느 탄천 벤치에 앉아, 아들을 지켜보는데 남편이 내년 계획을 정했냐고 묻는다.
"해야지, 다 할거야."
"쓸만한 인생 먼저 살고 그 다음에."
"쓸만한 인생 먼저 살면 내 꿈도 자연스럽게 따라와."
드디어 29화입니다 :)
지긋지긋한 온라인카지노 다음 주 월요일이면 종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