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짐을 맡기고 어디론가 갔다

용산 터미널 물품 보관함 · 오전 11시

by소하
오전 열한 시 삼 분,
23번 보관함이 조용히 열렸다.

가방이 들어왔다. 여행용 백팩이었다. 들어오면서 보관함 옆면에 천 소재가 닿는 소리가 났고, 바닥에 놓이며 무거운 무게가 왔다. 많이 채워진 가방이었다. 바깥 냄새가 들어왔다. 가방에 밴, 장기간 여행한 것의 냄새였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종류였다. 가방의 지퍼가 하나 열려있었다. 어딘가에서 급하게 무언가를 꺼낸 채로 온 것이었고, 그 틈으로 안쪽 냄새가 조금 더 나왔다.


어깨끈이 바닥에 닿자 그 위에 있던 흙이 조금 떨어졌다. 이 터미널 바닥 색과 다른, 어딘가에서 온 흙이었다.

문이 닫히면서 잠겼고, 보관함 안이 어두워졌다. 보관함 내부 공간의 온도가 있었다. 가방이 들어올 때 바깥 온도와 같은 공기가 함께 들어왔다가, 문이 닫히며 갇혔다. 터미널 안 열기가 금속 벽을 통해 서서히 스며들며 처음보다 조금씩 따뜻해졌는데, 세 시간 사십칠 분에 걸쳐 천천히 일어난 변화였다.


바깥에서 소리들이 들어왔다. 터미널 안내 방송, 발소리들, 다른 보관함들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였다. 열차 시각이 바뀌고, 점심 시간이 되면서 발소리가 많아졌다가 줄어들었다. 가방 안에서 소리가 났다. 가만히 있는데도 나는 금속 소리였는데, 터미널 진동이 보관함을 통해 가방으로 전해지며 안의 무언가가 조금 이동하는 소리였다. 가방의 무게 분포가 있었다. 무거운 것들이 아래쪽에 쌓여있는, 오래 여행한 가방의 방식이었다. 보관함 바닥에 닿는 부분에 무게가 집중됐고, 그 집중된 무게를 세 시간 사십칠 분 동안 받아냈다.


오후 두 시 오십 분, 번호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빛이 들어왔다. 가방이 들어올 때보다 조금 빠르게, 서두르듯 들려갔다. 어깨끈이 보관함 바닥을 마지막으로 스치며 흙이 더 떨어졌고, 문이 닫히며 다시 어두워졌다. 오늘 23번이 세 시간 사십칠 분 동안 한 것이 있었다. 무거운 여행 백팩을 어둠 안에서 기다리며, 가방의 무게가 달라지지 않게 받아두었다가, 주인이 와서 가져갈 때 그대로 돌려주었다. 23번 바닥엔 어깨끈이 남긴 흙만 조용히 남았다.


가방이 어둠 안에 있는 동안 터미널 안의 시간이 흘렀다. 열두 시, 점심 시간이 되며 발소리가 많아졌고 보관함들이 여러 개 열렸다가 닫혔다. 23번은 열리지 않았다. 발소리가 많아졌다 줄어들며 점심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에도, 23번 안의 가방은 달라지지 않았다. 보관함 벽의 온도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방식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아지며 열기가 더해져, 오전보다 점심 이후 벽 온도가 조금 높아졌다. 그 열기가 벽을 통해 내부로 들어오며 세 시간 사십칠 분 동안 조금씩 달라진 것이었다.


어깨끈에서 떨어진 흙이 23번 바닥에 있었다. 이 터미널 흙이 아닌, 어딘가에서 온 흙이었다.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방이 나간 뒤에도 남아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이 23번이 오늘 끝까지 기억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보관함 크기가 있었다. 여행용 백팩이 들어가는 큰 보관함이라, 들어올 때 벽과의 간격이 좁아 옆면이 닿는 소리가 났다. 문이 닫히며 공기가 압축됐다가 빠져나갔는데, 그 공기 안에 가방에서 온 냄새가 옅게 섞여 있었다.


가방의 무게 분포는 아래쪽이 더 무거웠다. 매일 위에서 꺼내고 넣으면서 무거운 것들이 아래에 남는, 오래 여행한 가방의 방식이었다. 23번 바닥이 그 무게 분포를 세 시간 사십칠 분 동안 고스란히 받았다. 지퍼가 열려있었다. 급하게 무언가를 꺼낸 채로 왔는지, 그 틈으로 어딘가에서 오래 머문 냄새가 나왔다. 그 냄새는 세 시간 사십칠 분 동안 어둠 안에 있다가, 가방이 나갈 때 함께 나갔다.


오전 열한 시 삼 분에 열렸다가 오후 두 시 오십 분에 열렸다. 세 시간 사십칠 분의 어둠이었다. 그 사이에 용산 터미널의 오전과 낮이 지나갔다. 23번 안에서 가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이 이 보관함이 한 일이었다. 받아두었다가, 변하지 않게, 돌려주는 것. 보관함 안에서 가방 안의 소리가 났다. 터미널 진동이 금속 벽을 통해 전해지며 가방 안 금속 부품들이 반응한, 미세한 소리였다. 세 시간 사십칠 분 동안 여러 번 났는데, 가방은 달라지지 않았어도 그 소리들만은 있었다.


23번 보관함 안의 공기도 세 시간 사십칠 분 동안 달라졌다. 처음엔 가방과 함께 들어온 바깥 공기였지만, 터미널 열기가 금속 벽을 통해 서서히 들어오고 가방 냄새가 섞이며 그것들이 어둠 안에서 함께 있었다.

용산 터미널에는 서울과 지방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 왔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서울역과 가까운 이곳은 서울로 들어오거나 떠나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가방을 보관함에 맡기고 어딘가로 가는 사람들 중, 오늘 그 사람도 하나였다.


가방이 어둠 안에 있는 세 시간 사십칠 분 동안 터미널 안에서 버스들이 출발하며 안내 방송이 여러 번 있었다. 행선지 이름들이 불릴 때마다 23번 안에서 가방은 그 소리들을 받았다. 어두운 보관함 안에서 서울과 지방의 이름들이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이 보관함이 있는 터미널은 용산에 있었다. 서울역과 한강이 가깝고 경부선 철도가 지나는,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그 흐름 안에 이 보관함이 있었고, 오늘 한 사람이 가방을 맡기고 그 흐름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보관함들이 벽을 따라 여러 줄로 늘어서 있었다.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작은 것은 서류가방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였고, 23번 같은 큰 칸은 며칠치 짐도 들어갈 정도였다. 요금도 물론 크기에 따라 달랐다. 동전 반환구 옆에는 사용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오래 붙어 있었는지 모서리가 살짝 말려 있었다. 오늘 그 사람은 안내문을 읽지 않고 곧바로 번호를 눌렀다. 이미 여러 번 써본 듯한 손짓이었다.


이 보관함 문 안쪽에는 오래된 스티커 자국이 몇 개 있었다. 누군가 붙였다가 떼어낸 흔적이었다.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접착제 자국만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가방이 나간 뒤 이 보관함의 무게가 갑자기 가벼워졌다. 세 시간 사십칠 분 동안 익숙해졌던 그 무게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었다. 빈 공간의 부피만 고스란히 남았다. 보관함 문에는 작은 창이 나 있었다. 안을 완전히 볼 수는 없지만, 무언가 들어있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크기였다. 오늘 오후 늦게, 그 창 너머는 다시 텅 비어 조용했다.


터미널 천장 스피커에서 낮은 배경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안내 방송이 나올 때마다 잠깐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이 보관함 벽을 통해서는 그 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같은 줄에 있는 다른 보관함 하나가 그 사이 몇 번 열리고 닫혔다. 다른 사람들의 다른 짐이었다. 23번은 그 소리들을 옆에서 들으며 조용히 세 시간 사십칠 분을 보냈다. 오후 한 시쯤, 옆줄 다른 보관함 앞에서 실랑이가 있었다. 비밀번호를 잊은 손이 여러 번 다른 조합을 눌러보다 결국 관리실 직원을 불렀다. 23번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그 소리가 잠깐 이 보관함 벽을 타고 전해졌다. 23번 안의 가방은 그 소란과 무관하게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주인이 돌아오기로 한 시간을 이 보관함은 알지 못했다. 다만 세 시간을 넘기면서 벽을 통해 들어오는 열기가 오전보다 확연히 더워졌다는 것만 알았다. 늦어지는 것인지, 원래 그런 계획이었는지는 가방의 무게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저녁, 터미널이 조용해지면서 보관함들이 일렬로 서있었다.
23번 바닥에 어깨끈이 남긴 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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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데이』작가에서 예술심리치료 전문가로, 감정을 굽고, 마음을 다루는 작가: 소하(素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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