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뒹굴면 나만 더러워진다
인생을 살면서 인간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시기가 있다.
대학생일 때는 모든 모임에 참석해야만 할 것 같은 조바심에 시달렸던 적도 있고, 소수의 사람들하고만 관계를 유지하면 된다고 꽉 닫힌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게 다 중딩 때 겪지 못한 중2병의 성인 후 발병 후유증인가 싶기도 하다.
지금 과거를 돌아보면
초중고딩 때는 최대한 편견없이 많은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학교 밖에서도 그런 모임이나 연결이 없을까 고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관찰을 많이 하고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굳이 모든 모임에 가면서 내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보면서 내 에너지를 비축하는거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맞는지, 거리를 두어야하는지 기준을 세울 수는 있겠지만 그걸 굳이 이 시기에 선을 그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에너지를 비정상적으로 소모시키는 부류의 사람에게 그 사람이 '매력이 있다'라는 이유만으로 내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부정적인 사람, 남을 시기하는 사람, 우울한 사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등 따져보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대방을 자신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과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좋은 사람들과의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때로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때가 있다. 나는 가족에 대한 아주 환상에 가까운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거라고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완벽한 가족에 대한 환상이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가족은 이래야하고 가족이니 받아들여야하고 가족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등등...
나와 평생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면 어떻게 해야할까. 친구처럼 가끔 보는 사람이라면 조금씩 거리를 두면 되지만 함께 생활하는 사람의 경우 그게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상대의 발작 버튼을 누르지 않거나 상대가 자꾸 시비거는 모먼트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피하는 것밖에 없다.
태껸이 상대의 공격을 흘리듯이 상대의 패턴을 무력화시키면 지옥같은 일상이 아무렇지 않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면 된다. 그냥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상대가 그렇게 하게 내버려두는거다.
상대의 말에 상처받는다면
"이건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불편한 거다"라고 속으로 생각해보면 된다.
이기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람 방식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논쟁 에너지를 먹고 커지는 타입이 있다. 그런 사람과 부딪히지 않으려면 먹이를 주지 않으면 된다.
남은 인생은 나의 그릇을 키우는 시기라고 생각하며 살고자 한다. 완벽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계속해서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면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이게 T의 사고 방식!
26년 나의 목표는 여유, 그리고 먹이를 주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기
이것만 해도 26년은 의미있고 알찬 해가 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