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건 언제나 설렌다. 예상하지 못했던 분야라면 더 그렇다. 최근, 비어 있던 우리 집을 단기 숙소로 꾸미고 있다.
14년 전, 첫째가 돌이 지났을 무렵 둘째도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살던 24층 아파트는 위층 아이들 층간 소음이 심했다. 갓난쟁이였던 첫째는 쿵쾅거리는 소리에 놀라 깊게 잠들지 못했다. 그 모습에 나까지 소리에 예민해졌다. ‘머지않아 우리 집 모습이겠구나’ 싶어 첫째가 15개월이 되던 해에 필로티층으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3년 정도만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랄수록 뛰는 강도가 달라졌다. 사뿐사뿐 걷던 발걸음은 쿵쿵에서 쿵쾅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 안에서 킥보드를 타거나 달렸다. 한 해 한 해 미루며 8년을 살다가, 학군지로 옮겼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었다. 집값은 끝도 없이 내려갔다. 시세보다 낮춰도 매수자는 없었다. 월세로 4년을 돌렸지만 그 세입자마저 나가며 공실이 됐다. 넉 달 가까이 비어있는 채로, 매달 공용 관리비를 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인데 관리비를 내야 하니 속이 쓰렸다. 어디선가 집은 오래 비워두면 안 된다는 말까지 들어 더 신경 쓰였다. 다시 월세를 놓을 수도 있지만, 세입자가 살고 있으면 매매하기 번거로울 거고, 우리가 다시 들어올 수도 있다는 판단에 단기 임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결정은 했지만 차일피일 미뤘다. 근 20년 된 아파트다 보니 여기저기 손댈 곳이 넘쳤다. 짐이 없어서 그런지 눈만 돌리면 하자가 보였다. 우리가 살면서 만든 흔적에 세입자가 더한 것까지. 그나마 손재주가 있는 분이 머물러 준 덕분에 적당히 가리면 될 곳 같은 곳도 많았다. 욕실 빼고. '전쟁 때문에 자재값이 올랐다, 인건비가 올랐다, 부르는 게 값이다'등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욕실 두 군데 수리할 돈인데 한 군데 겨우 할 수 있을까 했다. 기본만 하자는 생각에 타 지역에 있는 아는 대표님께 연락했다. 숙박업 위주로 타일 납품 및 시공을 하는 분인데 내 사정을 아시곤 우리 집 욕실 시공을 맡아주셨다. 나보다 더 발품을 팔아주신 덕분에 가성비 있게 두 군데 모두 수리를 마쳤다
이제 거실, 주방, 방 세팅이 필요했다. 침구를 사고, 식탁을 들이고, 조리도구와 생활용품을 채웠다. 주로 당근 마켓을 이용했다. 매일 로켓 배송으로 온 물품이 현관 앞 통로를 막았고, 다이소는 하루에 한 번은 꼭 다녀왔다. 신혼집 꾸밀 때보다 더 꼼꼼하게 체크하며. 최종 목표는 단 하나로 잡았다. '나도 머물고 싶은 집'으로 만들자고.
지난주에 친구한테 메시지가 왔다.
"저번에 말한 단기 임대 시작했어?"
지인이 야구 경기를 보러 대구에 올 예정인데 원래 가던 호텔이 만실이라 숙소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이제 입주청소 끝냈어. 아마, 그때쯤이면 대충 구색을 갖출 수 있을 거야!"라고 답하며 일주일 동안 벼락치기하듯 매달렸다. 손님 방문이 예정되어 있어야만 청소하는 주부처럼. 일주일 만에 50평이 되는 집을 세팅하려니 만만치 않았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말에도 잠만 잘 예정이라며 괜찮다는 친구가 고마웠다. 이왕 미안해할 거 다른 부탁도 더했다. 머물면서 불편한 점을 말해달라고. 같이 온 사람들 의견도 물어봐 달라고. 그럼 그걸 반영해서 나머지 준비 때 참고하겠다고.
새로운 일을 도전하며 여태 모르고 살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단기 임대를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준비물, 작은 소모품까지.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던 세상에 발을 내디뎌보니 몸은 피곤한데 마음이 가뿐하다.
다음 주면 완성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다음엔 이 공간을 어떻게 알릴지 고민하게 되겠지. 잘 되든, 안 되든, 공실로 두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무엇보다 최근 일주일 동안 확실히 느낀 게 있다. 사람은 가끔 이렇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