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가볍게 하는 것일까?
"옷이 참 가볍고 보드라우니 참 좋구먼."
어느 어르신의 이 한마디가 오늘 글을 쓰게 했다. 가볍고 보드라운 옷이 좋다는 말이 자꾸 생각났다. 젊었을 때라면 멋스럽다거나 우아하다거나, 옷을 입은 모습을 먼저 이야기했을 것 같다. 젊을 때 옷에는 참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멋스러움, 품위, 고급스러움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조금 무거워도, 조금 불편해도 참는다. 추위를 감수하며 짧은 스커트를 입기도 한다. 그때는 옷의 무게는 고사하고 멋을 생각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옷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졌다. 몸을 칭칭 감는 옷들이 거추장스럽다. 두꺼운 옷은 답답하고, 여러 겹을 겹쳐 입으면 몸이 무거워진다. 나는 원래 옷에 그닥 큰 관심이 없다. 그저 단정하고 단아한 옷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두껍고 무거운 옷이 따뜻하다고 여겼는데, 요즘은 가벼워도 따뜻한 신소재 원단이 많이 나와서 한겨울에도 얇은 패딩 하나로 겨울을 난다.
나이가 들면서 왜 갑자기 옷의 무게가 떠올랐을까. 아빠를 모시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빠가 여든을 넘기셨을 때였다. 아빠는 한 번 옷을 사면 비싸고 좋은 옷을 사서 오래도록 입으셨다. 옷 관리도 잘 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으로 오실 때 좋은 옷들만 골라서 가져왔었다. 오래전 어르신들의 옷은 지금처럼 가볍고 기능성이 좋은 옷과는 달랐다. 옷감이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어 몸을 보호했고, 두꺼운 만큼 따뜻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런 옷을 좋은 옷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는 그 옷들이 답답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아끼던 옷들이 언제부터인가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되어 있었다.
참 신기한 것도 있었다. 젊은 나는 더위도 추위도 엄청 탔는데, 아빠는 추위도 더위도 별로 타지 않으셨다. 나이가 들면 추위를 더 탄다고들 하는데, 나는 추워서 옷을 겹겹이 입고 있어도 아빠는 괜찮다고 하셨다. 아빠의 나이 듦이 옷의 무게까지 가볍게 만들었나 보다. 그렇게 옷의 무게를 생각하다 보니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젊었을 때는 감당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먹고사는 일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염려도 있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 쓰고, 때로는 내 마음보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앞세우기도 했다. 물론 나이가 든다고 걱정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예전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애썼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별일 아닌 듯 가벼워진다. 꼭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없어도 괜찮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옷은 그대로인데 그 무게를 느끼는 내가 달라진다. 같은 옷도 어느 시절에는 멋이 되고, 어느 시절에는 불편함이 된다. 아빠가 답답하다고 하셨던 오래된 옷들이 생각난다. 그때 아빠의 말씀을 들으며 나도 언젠가는 그런 나이가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의 무게를 다시 가늠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젊었을 때의 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나에게 편안한 것을 찾아가는 시간. 옷의 무게를 덜어 내듯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들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옷이 참 가볍고 보드라우니 참 좋구먼."
그 어르신은 비싼 옷을 입지 않으셨다. 딸이 사 준, 꽃무늬에 반짝이가 살짝 들어간 분홍 옷이었다. 아흔이 넘으신 어르신의 얼굴에 덩달아 꽃이 피었다. 몸에 착 감기는 옷을 두 손으로 만지시면서 연신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그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다. 어르신의 옷의 무게는 새털처럼 가벼워 하늘을 날고 싶으셨을 것 같다.
나도 이제 조금씩 옷의 무게를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젊은 시절에도 짧은 스커트 한번 못 입어 봤고, 지금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높은 구두를 벗어 던진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발이 편한 운동화를 여러 켤레 사서 정장에도 신고 편한 외출에도 신는다. 편한 옷만 입다 보니 살도 덩달아 옷을 따라가는 것 같다. 누군가는 옷이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그것도 맞는 말 같다. 장소에 따라 단정하고 단아하게 입어야 할 때가 있고,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도 있다. 어렵다. 어려워. 나의 옷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계절이 바뀌니 옷장의 옷들을 꺼내 정리를 해야 겠다. 그러면 옷의 무게도 덩달아 가벼워 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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