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종말, 기후변화, 인류, 염천, 인류학, 고고학
최고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리며 온 대지를 녹일 듯 장엄하게 이글거리던 8월 염천(炎天)의 어느 날이었다. 숨조차 쉬기 힘든 폭염을 피해 찾아든 도서관 서가에서 한 권의 바카라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과학 저널리스트 리지 웨이드가 쓴 『아포칼립스』(김영사, 2026년 3월)였다. 지금 우리 피부가 느끼는 이 무자비한 맹서(猛暑)와 기후변화야말로 바야흐로 인류에게 닥쳐오는 종말의 징후가 아닐까 하는 위기감에 홀린 듯, 바카라을 집어 들었다. 표지를 넘길 때만 해도 내 머릿속은 인류의 파멸을 경고하는 어둡고 비관적인 전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바카라장을 넘기며 마주한 실체는 의외의 반전이었다. 저자는 종말이나 대재앙을 뜻하는 단어인 '아포칼립스(Apocalypse)'의 정의를 완전히 비틀어놓는다. 이 바카라은 결코 절망을 말하는 비관론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포칼립스란 기존의 억압적인 체제가 해체되고 새로운 문명과 평등한 삶이 싹트는 '긍정적인 창조와 변화의 시작'이라는 뜻밖의 희망을 건네고 있었다.
며칠 앞의 일상만을 내다보며 불안해하는 범인(凡人)의 좁은 시야와, 수천 년 혹은 수만 년의 세월을 한눈에 담고 바라보는 고고학과 인류학의 드넓은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최근의 아포칼립스라 할 수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이 바카라을 집필했다. 전염병이라는 국가적·전 지구적 재난을 계기로 인류 역사 속에서 반복된 파국적 사건들을 고고학과 인류학의 시선으로 추적해 낸 것이다. 저자는 기후변화, 역병, 자연재해와 같은 아포칼립스가 문명을 단절시킨 파괴의 순간인 동시에, 이전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이끈 촉매제였음을 최신 과학적 증거들을 통해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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