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나는 인간의 삶 66
아버지가 죽은 뒤 막내아들에게 남겨진 것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 형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나누어 가졌지만 막내에게는 고양이밖에 없었다. 그는 고양이를 잡아먹거나 가죽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막막한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고양이는 자루와 장화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막내가 부탁을 들어주자 고양이는 장화를 신고 사냥에 나섰고, 잡은 사냥감을 왕에게 바치면서 주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사냥감을 바칠 때마다 막내를 카라바 후작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주인을 부유한 귀족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왕이 강가를 지날 때에는 주인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도록 상황을 꾸몄고, 왕의 도움으로 옷을 얻은 막내는 사람들의 눈에 전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고양이는 농부들에게 그 땅이 카라바 후작의 것이라고 말하게 했으며, 성을 차지한 거인에게도 꾀를 써서 그를 무너뜨렸다. 막내는 고양이가 마련한 기회를 따라갔고, 마침내 왕의 신임을 얻어 공주와 결혼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움직이는 쪽은 줄곧 고양이다. 사냥감을 구하고 왕의 관심을 얻으며, 농부들을 움직이고 거인의 성을 차지하는 일도 고양이가 계획했다. 막내는 그 계획을 받아들이고 필요한 순간에 고양이의 말을 따랐다. 주인의 성공이 고양이의 행동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사실은 독자에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야기 속 왕이 인정한 사람은 고양이가 아니라 카라바 후작이라는 이름을 얻은 막내였다.
결말에서 막내는 부와 지위를 얻고 공주와 결혼한다. 고양이도 귀족처럼 편안하게 살아가며 더 이상 쥐를 잡을 필요가 없어진다. 두 존재 모두 이전보다 나은 처지에 놓였으므로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다만 그들이 얻은 것은 서로 다르다. 막내는 신분과 혼인을 통해 슬롯적 지위를 얻었고, 고양이는 자신의 꾀와 행동으로 주인을 성공시킨 뒤 그 성공에 딸린 생활을 누린다. 이야기는 고양이에게 보상이 돌아갔다고 말하지만, 두 존재의 공로가 어떤 기준으로 나뉘었는지까지 설명하지는 않는다.
샤를 페로가 17세기 말에 발표한 문학동화에서 고양이는 단순히 영리한 동물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지 알고, 그 믿음을 이용해 주인의 처지를 바꾼다. 왕은 막내의 재산이나 능력을 자세히 조사하지 않은 채 고양이가 만들어 낸 모습과 설명을 받아들인다. 농부들은 위협을 받고 땅의 주인을 거짓으로 말하며, 거인의 성과 재산까지 막내의 새로운 신분을 뒷받침한다. 높은 지위는 실제로 가진 것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누구를 어떤 사람으로 받아들이는가도 중요하다.
고양이는 주인의 재산을 늘리는 데 필요한 일을 차근차근 해낸 것이 아니다. 막내가 부자가 되기 전에 부유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고, 높은 지위를 얻기 전에 그 지위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했다. 성공의 결과가 먼저 눈앞에 나타나도록 만든 셈이다. 이 과정에서 고양이는 사냥감을 바치고 거인을 속이는 데 그치지 않고, 왕과 농부들이 상황을 판단하는 방식까지 이용한다. 고양이의 능력은 힘을 겨루는 데 있지 않고 사람들의 기대와 판단을 읽는 데 있다.
이런 방식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정직한 성공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고양이는 농부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하고 왕에게 막내의 신분을 꾸며 보인다. 거인의 성을 차지하는 과정에도 속임수가 쓰인다. 막내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행동이 모두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고양이의 꾀가 통쾌한 성공을 가져오지만, 현실에서 같은 방법을 쓴다면 다른 사람의 재산과 삶을 해칠 수 있다. 동화의 재미와 오늘날 우리가 내릴 윤리적 판단은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오래 읽히는 까닭은 고양이의 행동이 단순한 악행으로만 그려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막내는 형들보다 적은 재산을 물려받았고, 처음부터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 고양이는 그가 가진 것을 조금씩 늘리는 대신, 사람들이 재산과 신분을 판단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고양이는 막내에게 없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막내가 가진 것이 적다는 사실이 성공을 가로막지 않도록 다른 길을 열었다. 그 길에는 기지와 용기가 있었지만 거짓과 위협도 함께 있었다.
이야기에서 고양이의 행동은 주인을 돕는 하인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고양이는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며 정해진 일을 수행하는 하인이 아니다. 먼저 상황을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며, 주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준다. 막내가 후작으로 인정받기까지 필요한 결정은 대부분 고양이가 내린다. 두 존재의 관계를 보면 주인은 슬롯적 지위에서 위에 있지만, 실제로 일을 이끌어 가는 능력에서는 고양이에게 크게 의존한다.
이 차이는 성공한 사람과 그 성공을 가능하게 한 사람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어떤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 사람의 능력과 결단력이 성공의 이유로 설명되기 쉽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일을 계획한 사람, 필요한 정보를 찾은 사람, 위험을 감수한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일을 처리한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성과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 성과를 대표하는 이름을 기억하지만, 그 이름이 무엇을 바탕으로 서 있는지까지 살피지는 않는다. 대표자의 이름은 선명해지고, 그 뒤에서 움직인 사람들의 역할은 희미해질 수 있다.
고양이의 공로는 독자에게는 분명하지만 왕국의 슬롯적 질서 안에서는 다르게 보인다. 왕은 카라바 후작을 인정하고 공주는 그와 결혼한다. 그들이 알게 된 것은 막내의 새로운 신분과 그럴듯한 모습이지, 고양이가 그 모든 과정을 어떻게 설계했는지는 아니다. 독자는 고양이가 없었다면 막내의 성공도 어려웠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이 기억하는 사람과 독자가 기억하는 인물이 다를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막내에게 아무런 역할도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는 고양이가 마련한 기회를 받아들였고, 고양이의 계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 길을 따라갔다. 다만 그가 얻은 성공을 오롯이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처럼 설명한다면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성공에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능과 노동, 우연히 열린 기회, 슬롯가 인정하는 기준이 함께 작용한다. 막내의 성공은 고양이의 능력과 행동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고양이가 처음부터 주인에게 충성했는지,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 했는지, 두 목적을 함께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동화는 고양이의 속마음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고양이가 주인의 성공을 위해 움직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고양이를 순수한 충성의 상징으로 만들거나 주인을 이용한 계산적인 인물로만 보는 것은 모두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고양이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사용해 주인과 자신의 처지를 바꾸었다.
고양이에게 돌아간 보상이 충분했는지도 이야기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귀족처럼 편안하게 살아가게 되었다는 결말은 고양이가 성공의 결과를 누렸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두 존재가 각자의 공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주인이 고양이의 수고를 얼마나 인정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두 존재가 모두 만족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을 확인할 근거도 없다. 이야기의 결말이 알려주는 것은 두 존재가 더 나은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까지다.
현실에서도 성과를 대표하는 사람과 그 성과를 실제로 만들어 낸 사람이 다를 수 있다. 대표자의 이름이 보고서와 기사에 남더라도, 그 일을 준비하고 실행한 사람들의 수고가 함께 기록되면 성과의 모습은 더 정확해진다. 공로를 나누어 인정하는 일은 성공한 사람의 몫을 빼앗는 일이 아니다. 결과가 어떤 사람들의 손과 판단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제대로 밝히는 일이다.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과 공로를 공정하게 기록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이야기의 제목이 장화 신은 고양이라는 사실은 이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 왕국은 카라바 후작이라는 이름을 인정하지만, 독자는 그 이름을 만들어 낸 고양이의 행동을 따라간다. 고양이는 주인을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고, 그 성공은 주인의 이름으로 슬롯 안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에는 끝까지 고양이가 남는다. 슬롯적 지위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와 이야기가 누구를 기억하는지는 같지 않을 수 있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이야기는 주인의 성공으로 끝난다. 막내는 후작이 되고 공주와 결혼하며, 고양이는 편안한 생활을 얻는다. 동화의 결말만 보면 더 보탤 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독자는 후작이라는 이름만으로 이 성공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냥감을 구하고 사람들을 움직이며 거인의 성을 차지한 고양이의 행동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의 이름은 오래 남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름만 남으면 성공을 가능하게 한 과정은 사라질 수 있다. 장화 신은 고양이는 주인을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지만, 독자가 기억하는 것은 주인의 지위만이 아니다. 그 지위를 만들어 낸 고양이의 판단과 행동도 함께 남는다. 두 존재가 함께 얻은 성공을 누구의 이름으로 기록할 것인지는,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