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이가 학교에서 ‘잘 하길’ 바라지 않는다. ‘잘 지내길’ 바란다. 다행히 초등학교 새내기 라온이는 학교의 모든 시간이 즐겁다고 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수업 시간도,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쉬는 시간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점심시간도. 매일을 행복으로 가득 채우니 기특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라온이가 만족하는 데에는 담임의 영향도 컸다.
“우리 라온이는 선생님을 참 좋아하는구나.”
“응!”
“참 좋네. 엄마는 1학년 때 선생님이 나빴었는데. 다행히 2학년부터는 다 좋은 분이셨어.”
“1학년 선생님이 어땠는데?”
“저번에 말했었지? 어떤 고약한 아이만 예뻐했고, 다른 아이들은 억울하게 혼내고 슬프게 했었다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 선생님의 이름뿐 아니라 표정, 머리 모양, 말투까지 기억한다. 툭하면 한 아이를 치켜세웠는데 그때마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었다. 칭찬받을 일이 딱히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친구들을 괴롭히며 다툼을 일삼던 아이를 그렇게 예뻐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촌지 제공이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그 아이의 엄마가 학교에 자주 왔었는데,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그 말도 안 되는 칭찬 세례가 쏟아진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을 신경 쓰지 않았다. 관심사는 오직 하루하루 바른 자세로 수업 듣고, 야무진 모범생으로 지내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와 짝이 됐다. 녀석은 수업 시간에 얌전히 있는 내게 시비를 걸었다. 옥신각신하는 우리를 보고 담임이 앞으로 나오라 했다. 내가 먼저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던 찰나 담임이 무서운 도깨비 같은 얼굴로 노려보며 천둥처럼 소리쳤다.
“노신화! 무조건 네가 잘못한 거야! 알아?”
나는 순간 얼음이 되고 말았다. 그간 다른 아이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긴 했는데 막상 내 차례가 되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다시 말을 하려는데, 담임이 이번에는 삿대질까지 하며 윽박질렀다. 집에서 좀처럼 혼나 본 적이 없었던 내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옆에 서 있기만 하던 녀석이 더 크게 우는 소리를 냈다. 정말이지 영악하고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담임은 우는 아기 달래듯 녀석을 감싸 안고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서럽게 울고 있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다시 한 번 악을 썼다.
“노신화! 지금 뭘 잘했다고 울어? 뚝 그치지 못해?”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과 억울함을 삼키려 안간힘을 썼다. 지금도 후회로 남는 것은 그 일을 부모님께 알리지 않은 것이다. 모범생으로 지내고 싶었기에 선생님에게 혼난 것이 창피했다. 내가 어리석었다. 반드시 알렸어야 했거늘……. 때문에 이 이야기를 라온이와 로운이에게 해주면서 강조했다. 혹시 내가 없는 곳에서 속상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알려주라고. 그래야 내가 도와주고 해결해줄 수 있다면서.
훗날 라온이는 자신의 1학년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부당한 짓을 서슴지 않는 담임을 떠올리며 미간을 찡그릴까?
“근데, 라온아. 그때 선생님이 나빴던 게 엄마에게는 좋은 일이기도 했어. 왜냐면…… 그 선생님이 나쁜 행동 했을 때 엄마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알아?”
“몰라.”
“나는 저렇게 나쁘게 행동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엄마는 사람을 대할 때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단다.”
그 순간 머릿속에 불빛이 번쩍했다. 나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와! 참 신기하다! 엄마가 그때는 논어를 읽지 않았었는데, 공자의 말대로 실천했던 거네! 공자가 그랬거든. 다른 사람의 못난 행동을 보면 나의 행동을 돌아보라고.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엄마가 공자랑 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라온이의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물음이 아니었다. 감탄 섞인 독백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런데, 라온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차분하게 답을 주었다.
“엄마가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고, 공자도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어서 엄마랑 공자가 서로 텔레파시가 통한 거야.”
“세상에! 어쩜 그렇게 멋진 생각을 할 수 있니? 정말 그런가 보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 같아.”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끼리 텔레파시가 통한다니! 이토록 대단한 통찰을 어떻게 잠깐의 생각만으로 툭 내놓을 수 있을까? 어른으로서 어린이의 탁월함에 놀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어린이라는 존재가 지닌 능력의 폭과 깊이는 끝을 감히 가늠할 수 없을 것 같다. 참으로 신비롭고 대단한 존재다.
나는 서둘러 노트북을 켜고 빛의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엄마, 지금 뭐 해?”
“방금 라온이와의 대화를 적고 있어. 이런 건 잊지 않도록 적어둬야 해. 그리고 다음 바카라에 넣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줘야지.”
녀석이 기분 좋게 웃더니 깜찍하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왜 이렇게 예뻐?”
“음…… 마음이 예뻐서 그런 거 아닐까? 히히.”
“내 생각에는 엄마는 착하고 지혜로워서 예쁜 거 같아. 왜냐면, 지혜로운 사람은 상상력이 크고, 그래서 상상력이 커져서…… 머리가 커져서…… 그래서 예뻐 보여.”
지금껏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오묘한 칭찬이었다. 순수함과 강렬함을 동시에 지닌 것이 듣는 이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다. 역시나 어린이는 칭찬도 남달랐다. 아무래도 그날은 라온이의 주옥같은 표현이 봇물 터지듯 쏟아질 것 같았다. 여유롭게 모두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참아야 했다. 시곗바늘이 나를 재촉했다.
“세상에나! 라온아, 정말 너무 멋진 말들이다. 시간만 되면 모두 글로 쓰고 싶다. 근데, 곧 있으면 식사 준비를 해야 해.”
“엄마는 하는 일이 많아. 봐봐. 요리사고, 작가고, 한국어 선생님이고, 영어 선생님이잖아(영어 학원에 안 다니는 대신 나와 매일 영어바카라을 읽기에 하는 말이다).”
“하고 싶은 게 또 있어. 엄마는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라온이도 같이 할래?”
라온이와 함께라면 천군만마를 둔 것이나 다름없다.
“좋아! 그런데…… 우리 둘만 하면 될까?”
“둘만으론 안 될걸?.”
“왜?”
“지구가 엄청나게 크니까. 그런데, 우리 둘이 엄청 열심히 하면 세상은 달라질 거야.”
“어떻게?”
나는 그날 얻은 놀라운 깨달음 덕에 해답을 찾았다. 라온이도 흡족해할 아주 멋진 방법이라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가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강하면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낼 거고, 그러면 그 사람들도 함께 행동할 거야.”
“그러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눈동자를 반짝이며 희망에 찬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과 자연스럽게 텔레파시가 통하는 게 정말 가능할까?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타인인데도? 나는 이 신기한 일이 가능하다고 선뜻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말이 안 된다고도 못하겠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내 머릿속 저울을 ‘가능하다’ 쪽으로 기울이고 싶다. 그것이 내 생각의 결을 좋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선한 생각을 하면 선한 이들과, 악한 생각을 하면 악한 이들과 연결된다는데 어찌 나쁜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은 고와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