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는 곧잘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이들 중에도 여러 사정이 있었다. 집안이 너무 어려워 생계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린 나이부터 슬롯에 뛰어들어야 하는 친구부터 시작하여, 집에 돈은 많은데 취미로 하는 사람까지 그 범위는 다양했다. 나는 그 중간의 어디쯤 속했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긴 하지만, 부모님의 고생을 생각하며 스스로 조금이라도 벌어 그 고됨을 덜어드려야 하는 K-장녀.
생애 첫 아르바이트는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다. 때는 중학교 2학년. '어린이 뮤지컬 홍보 전단지'를 아파트 집집마다 돌리는 일이었다. 그때 메고 다녔던 가방이 지금도 생각난다. 빳빳한 직사각형의 카키색 크로스백이었다. 멋모르고 덜컥 받았던 전단지의 양은 어마무시했다. 절대 하루만에 돌릴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그래놓고 돈은 쥐꼬리만큼 주었던 양심없는 그 고용자는 누구였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날 그 전단지들을 다 돌리지 못해 대부분은 버렸고, 버리면서도 걸릴까봐 조마조마했더랬다. 집에 돌아와서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초저녁잠을 잤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태어나 처음으로 자다가 가위에 눌렸다. 지금도 그 기억은 생생하다.
두번째 아르바이트는 고3 졸업반에 친구가 일하던 벌집삼겹살 고기집에서 1일인지, 2일인지 단기 알바를 했었다. 작은 항아리 솥에 담긴 삼겹살을 1층에서 2층을 왔다갔다하며 날라야 했다. 그 때 정말 학을 떼고 고기집 아르바이트는 다시는 안해야 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했던 건 하남시청 아르바이트였다. 스무살 지방에서 갓 올라와 사촌언니의 손에 이끌려 지원했다. 공공기관이라서 그랬는지 더 긴장되고 자신이 없어서 '차라리 안되었으면...' 하고 빌었는데 되버렸다. 공정성을 위해 지원자가 다같이 모여서 흰색 공, 주황색 공 중에 제비뽑기처럼 그냥 뽑아서 고르는 랜덤 방식이었는데 당첨인 공을 뽑아버린 것. 그렇게 안되길 빌었는데! 그 때 나를 시청에 끌고 간 사촌언니는 지금 공무원이 되었는데, 나는 별 기억이 없다.
그 이후로는 만화방, 편의점을 거쳐 나의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 경험이 시작된 건 CGV의 미소지기였다. 미아삼거리점의 오픈 스탭으로 들어가 그 때 처음으로 제대로된 서비스 교육이라는 걸 받아보았다. 이 때가 CJ와의 인연이 시작된 첫 계기이자, 서비스직에 제대로 재미붙인 기간.
그리고 일본 힐튼 호텔에서의 1년 라운지 근무까지. 사실 서비스직 일 자체는 굉장히 즐겁게 했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심각하게 깨달은 뒤에, 대학을 졸업하고는 사무직으로 발길을 틀었다. 남들 다쉬는 휴일에 못쉬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더 이상 서비스직과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30대가 되어 다시 알바생이 되었다. 그것도 남의 나라 독일에서 말이다. 코로나가 시작될 즈음 유학을 시작했다. 유학과 병행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첫 해는 학교 적응하기 바빠서 알바는 꿈도 못꿨고, 2년차부터 조금씩 도전을 해나갔다.
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한국과는 분명 다르다. 외국어로 일을 해야 한다는 고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국과는 다른 업무 문화나 노동법 등도 배우고 적응해나가야 한다. 학교에서와는 또 다른 단어들에 적응해야 하고 학교 친구들과 동료는 또 다르기에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 또 부딪히며 내 자리를 만들어가야 했다.
그 과정은 물론 쉽진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독일에 오기 전에 했던 한국과 일본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무조건적으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언어적으로는 부족할지라도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꼼꼼함, 그리고 바카라임감으로 무장된 애티튜드가 자연스럽게 한국인 직원을 돋보이게 만든다. 특히 평균적으로 독일의 고객 서비스에 대한 기준보다 한국의 기준이 훨씬 높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보통 수준만 해도 독일에서는 보통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언어도 점점 극복하고 꽤 인정 받다보니 졸업 후에도 서비스직을 선택하게 되었다.
처음엔 전단지를 돌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내가 지금은 독일어, 영어, 일어로 고객 상담을 하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한 과거의 경험들이 내 온 몸 곳곳에 스며들어서 단단한 내 능력치가 된 것처럼 지금의 이 시간들이 또 하나의 성장과 능력치가 되어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