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처음 왔을 때, 영어 수준이 아닌, 나이 기준에 밀려 Year 3가 아닌 Year 4로 배정받았던 날이 떠오른다.
학업 공백과 언어의 벽에 부딪혀 매일 숙제 바카라상 앞에서 눈물을 훔치던 아이를 보며, 한 학년 낮춰 초등 6학년(Year 6)을 깔끔하게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정답이었을지 모른다는 후회를 수없이 삼켰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제 몫의 뿌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조금 일찍 밀려 들어간 덕분에 영국의 중등 과정(Senior, Year 7)을 온전히 경험해 볼 기회를 얻었고, 아이는 그 시간을 생각보다 성실하게 건너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계획은 명확했다. 중학교 1학년 과정을 즐겁게 마무리하고, 남편의 주재원 일정에 맞춰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딸아이가 KEHS(King Edward VI High School for Girls)에 입학해 교실의 문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 지금이 제일 재미있어"
KEHS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에게는 취향이 꼭 맞는 5명의 단짝 친구가 생겼다.
아이가 이 학교를 그토록 좋아하게 된 이유는 학교의 높은 서열이나 화려한 이름값이 아니었다. 첫째는 친구들이었고, 둘째는 선생님들이었다.
또래 아이들답게 웃음 코드가 잘 맞았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과 그림 그리기를 공유하며 교실 안에서 자연스럽게 결속력을 다져갔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친구들과 나눈 시시콜콜한 대화를 쏟아내느라 아이의 입은 쉴 틈이 없었다. 식탁 맞은편에서 내 손을 잡으며 "매일 학교 가는 아침이 기다려진다"라고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선생님들과의 호흡도 편안했다.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교사는 없었고, 특히 고전 문학을 이야기처럼 흥미롭게 풀어내던 영어 선생님 덕분에 아이는 스스로 바카라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사춘기의 문턱에 선 열한 살 아이가 "학교와 친구들이 너무 좋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 부모로서 더 바랄 것이 없는 순간이었지만, 그 웃음을 마주할 때마다 내 속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지안아, 우리 몇 달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이 목구멍 안쪽에서 번번이 맴돌았다.
주재원의 4년 비자, 그리고 마주한 두 개의 벽
우리는 영국에 영구히 정착할 수 있는 이민자가 아니었다. 회사의 발령 기간에 따라 4년이라는 정해진 기한을 살고 있던 '주재원' 가족이었다.
한국에는 나를 기다려주는 일터와 동업자가 있었고, 부모라는 자리 이전에 한 사람의 슬롯인으로서 지켜온 내 삶의 터전이 서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이가 낯선 땅에서 이제 막 제자리를 잡고 날개를 펴기 시작했는데, 부모의 사정으로 그 흐름을 뚝 끊어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아이를 위해 어떻게든 버텨볼 방법은 없을까, 머리를 맞대고 따져보았지만 현실의 벽은 차가웠다.
첫째는 비자(Visa)의 문제였다.
KEHS는 통학 학교인 '데이스쿨(Day School)'이라 학생 비자(CAS)를 자체적으로 발급해주지 않았다. 부모의 주재원 비자나 취업 비자에 동반 자녀로 얹혀 있어야만 다닐 수 있는 구조였다. 남편의 임기가 끝나면 아이의 체류 자격도 자동으로 소멸하는 운명이었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해 학생 비자를 받는 방법도 알아봤지만, 규정이 바뀌어 석사 과정으로는 동반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현실만 확인했다.
둘째는 체류 비용의 벽이었다.
만약 남편만 한국으로 먼저 복귀하고 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남아 기러기 생활을 이어간다고 가정해 보았다. 사립학교 학비와 턱없이 높은 영국의 렌트비, 세 식구의 최소 생활비를 합치면 매달 천만 원 이상의 자금이 꾸준히 들어가야 했다.
한국과 영국의 살림을 이중으로 감당하면서 그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평범한 월급쟁이 가정인 우리가 지탱할 수 있는 궤적이 아니었다.
교장 선생님에게 보낸 메일
매일 밤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KEHS의 헤드 티처(Head Teacher, 교장)에게 장문의 메일을 썼다.
사립학교의 재정 지원(Bursary)은 입학시험을 치르던 전년도 가을에 이미 배정이 끝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학기 중간에 장학금을 신청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방인 부모로서 겪는 비자의 한계와 경제적 상황, 그리고 이 학교를 깊이 아끼는 아이의 사정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갔다. 혹시나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작은 여지라도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틀 뒤, 교장 선생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재무 이사(Bursar)와 상의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학년도의 재정 지원 기금은 이미 전액 소진된 상태입니다.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지 못해 마음이 무겁습니다."
예상했던 답이었지만, 글자를 눈으로 마주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헛헛해졌다. 그런데 메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은 그 아래에 조용한 배려 한 줄을 덧붙여 두었다.
"원칙상 퇴교 의사를 밝히시면 대기 명단(Waiting list)에 있는 다음 학생에게 즉시 자리가 넘어가므로 결정을 번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안이 가족이 조금 더 신중하게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한 달간의 유예 시간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 달 뒤에 최종 결정을 알려주셔도 늦지 않습니다."
학교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결원을 확정하고 대기자에게 등록을 받는 것이 실무상 안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방인 가족의 번민을 헤아려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내어준 학교의 태도가 고마웠다.
한 달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해서 비자가 저절로 해결되거나 통장 잔고가 늘어날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 확인의 과정 덕분에, 매일 밤 머릿속을 맴돌던 미련의 안개가 걷혔다. 혼자 속앓이만 하다가 기한을 넘겼다면 '그때 메일이라도 한번 보내볼걸' 하는 후회가 평생 남았을 것이다. 확실하게 부딪쳐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나니, 비로소 다음 걸음을 고민할 수 있는 분명한 여지가 생겼다.
사업을 하며 배웠던 원칙이 있었다. 안 되는 일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상황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최선의 차선바카라을 빠르게 찾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 딸아이와 마주 보았다. 아이의 생각을 차분히 듣고 현실의 제약을 솔직하게 공유한 끝에, 우리는 한 방향으로 시선을 모았다.
'학생 비자(CAS) 스폰서십이 가능하면서도, 부모가 곁에 없어도 안전하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영국의 기숙학교(Boarding School)를 알아볼 것.'
그렇게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영국의 보딩스쿨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향해 조용히 다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알아두면 좋은 영국 교육 이야기] 데이스쿨 vs 보딩스쿨과 비자(CAS) 시스템
1. 데이스쿨(통학 학교)의 비자 한계
영국의 통학 사립학교(Day School)는 대부분 유학생 비자 스폰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 입학 조건: 영국 시민권자, 영주권자, 혹은 부모의 주재원/취업 비자에 종속된 '동반 자녀(Dependent)' 신분이어야만 입학 및 재학이 유지됩니다. 부모의 비자가 만료되면 학생 역시 합법적으로 학교에 머물 수 없습니다.
2. 보딩스쿨(기숙학교)과 아동 학생 비자(Child Student Visa)
해외 유학생이 부모 없이 영국 사립학교에 재학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자체적으로 CAS(Confirmation of Acceptance for Studies)를 발급해 주어야 합니다.
* 인가 자격: 기숙 시설을 갖추고 정부의 엄격한 후견(Guardianship) 및 학생 관리 기준을 충족하는 보딩스쿨만이 이 비자 스폰서십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3. 사립학교 퇴교 통보(Notice of Withdrawal) 규정
영국 사립학교는 학기 시작 전 정해진 기한(통상 한 텀 전)에 공식 서면으로 퇴교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다음 학기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한 학기 학비 전액(Term’s Fees in Lieu of Notice)'을 위약금으로 청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