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 해제: ENFP의 귀환

나는 내가 무섭다.

by는개


약물이 우울의 짙은 장막을 강제로 걷어내자, 그 자리에서 툭, 하고 무언가 튀어나왔다.

우울의 심해에 갇히기 전,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 봉인해 두었던 '원래의 나'였다.


사람들은 우울이 치료되면 마땅히 기뻐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나를 마주한 순간 공포로 얼어붙었다.


장막 너머에서 기어 나온 것은 반가운 자아가 아니라,

징그럽게 서툴고 소름 끼치도록 미숙한 과거의 파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치료를 시작하고도 몇 년만이니, 대체 얼마만인 건지 모르겠다)


그것은 수년간 멈춰 있던 거대한 괘종시계가 갑자기 태엽을 감으며 토해내는 기괴한 소음이었다. 끄응, 끄응, 녹슨 톱니바퀴가 서로를 갉아먹으며 비명을 지르는 소리. 시곗바늘은 다시 돌기 시작했으나, 그 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은 단 한 치도 성장하지 못한 채 박제가 되어버린 아주 먼 과거의 날이었다.




우울이라는 방부제 속에서 썩지도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던 ENFP색의 원래의 나.

정제되지 않아 사방으로 튀는 미숙한 에너지,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제어되지 않는 서툰 감정의 과잉들.


이 끔찍하게 어리고 대바카라 없는 존재는

기필코 다시 내 삶을 헤집어놓을 거였다. 소름이 돋았다.


나는 내가,

내가 무서워졌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 캄캄한 우울의 심해가 나았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던 그 깊은 바다는 차라리 고요했고, 아늑했으며, 나름의 품위가 있었다. 미숙함으로 사방을 난도질하는 현실의 괴물이 되느니, 차라리 그 세련된 우울의 바다에 영원히 잠겨서 우아하게 표류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약이 불러온 이 통제 불능의 예전의 나의 모습을 의사 선생님은 괜찮다며 인사치레로 웃기만 했다.

나는 매일매일 언제 지금의 나를 완전히 무너뜨릴지 몰라, 지독한 공포 속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선생님은 웃고만 있다....


요즈음의 나는 내가 너무나도 무섭다.

약 먹기도 싫고 병원 가기도 싫지만 선생님 말을 안 들을 기운도 없다.

그냥 웅크리고 있고만 싶어.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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