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온 지 한참 지났지만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선풍기.
여름 내내 고생한 공로를 인정해 주지 않고 외면하고 있었다.
네가 있어 한 여름의 찌는듯한 공기 속에서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 그런 너를 알아차리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마주한 너를 외면할 수 없어. 하려던 일을 미루고 이무 대답 없는 너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겉에 쌓인 먼지를 보며 너를 이렇게 방치를 하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미안해, 여름아"
먼지를 닦아내고 공구함을 들고 온다.
긴 잠을 재우기 전에 자동차 정비를 하듯 너를 하나하나 분해한다. 또 한 번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여름아"
겉으로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네 안에도 이렇게 많이 쌓여 있는지 몰랐었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외면했었다.
너의 날개에 묻어난 먼지를 털어내고 깨끗하게 목욕시켜 주는 이 일을 통해 내 마음이 더 깨끗해지는 기분이 든다.
"고맙다."
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너 또한 내게 고맙다는 말을 했을 거라 짐작한다.
깨끗하게 씻어내고 타월로 물기를 닦아 내고, 창문 너머 불어오는 바람에 네 몸에 남은 물기들이 사라지고 나니 온전한 네가 되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듯하다.
아쉽지만 이제 이별의 시간이 돌아왔다.
먼지가 쌓이지 않게 덮개를 씌운다. 답답하겠지만 이해해 주길 바란다. 깨끗하게 씻어낸 너의 몸이 더럽혀지면 않게 하려는 것이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좀 긴 시간을 머물러야 하는 곳이 감옥 같겠지만 이별 뒤 재회할 그날을 고대하며, 여름날 고생한 시간들의 보상으로 편히 쉬기를 바란다.
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쉬게 하는 것이라고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안녕... 여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