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의 옆자리

bynay

살다 보면 가끔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본인은 안 힘들어.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들지.”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가 확고한 사람을 만날 때 그렇다. 본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그걸 받아내야 하는 주변 사람은 힘들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 문제라기보다 서로 가지고 있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이 주어져도 그것을 해석하는 방향이 다르고, 따라서 이후의 행동도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라진다. 예상 이상의 행동을 만나면 당황하게 된다. 내가 갖고 있던 기준이 무너지는 경험은 영 반갑지 않은 일이다.


20년이 넘게 회사에 근무하면서 언젠가 한 번쯤은 ‘일에 미쳐서 살아보는’ 생활을 잠깐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정말 잠깐. 그러나 곧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란 사람은 일이든 취미든 사랑이든 ‘하나에 푹 빠져서’ 미치는 스타일이 아니다. 대신 은근히 길게 오래 지속하는 지구력은 어느 정도 자신 있다.


이처럼 아주 현실적인 나의 삶과 행동 방식으로 볼 때, 나란 사람은 워커홀릭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오래 일을 했고 지금 하는 일을 나름 좋아하고 즐기지만, 퇴근 후에 내 머릿속에는 회사에 남겨 두고 온 일을 떠올릴 이유가 거의 없다. 실은 할 일이 있음을 알아도 집에 오면 거의 잊는 편이다. 정말 급하고 중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내가 워커홀릭인 분들과 일을 해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각자 경험해 본 또는 상상하는 ‘워커홀릭’이 다를 수 있겠다. 내가 정의하는 워커홀릭이란 옆에서 봤을 때, ‘머릿속에 일 말고는 다른 것이 없나?’ 싶은 의문이 드는 케이스다. 가정도 있고 개인적인 생활도 있을 법한데 늘 1순위는 ‘회사 일’이다. 퇴근을 하고 나서도 그런 사람들에게서 시도 때도 없이, 평일이든 휴일이든 상관없이 챗과 이메일이 날아오면 사실 꽤 불편한 마음을 거둘 수 없다. 최근 선배 팀장님과 대화 시간이 있었다. 그녀의 예전 상사가 정말 유명한 워커홀릭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안 거의 늘 9시, 10시에 퇴근을 했어야 하고 힘들어서 심지어 울기도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늘 일이 우선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일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그들의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많다. 조직 생활이 대부분 그렇듯 상사와 동기화되는 과정이 필요한 건 맞다. 다만 나와 상사의 일, 속도, 생각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말과 대화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


당사자의 마음과 상황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옆에서 보기엔 워커홀릭 자신은 자신이 만들어낸 속도 때문에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본인과 비슷한 속도로 뛰지 않고, 생각의 수준과 깊이가 따라오지 않는 데서 답답함을 느끼지 싶다. 그들의 생각을 받아내어 일을 거두고, 다음을 준비하는 주변 사람들이 더 힘들어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일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실은 그렇게 집요하게 집착하고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과정을 반복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음도 분명하다. 나처럼 집에 오면 회사 일 깡그리 잊어버리는 사람들과 달리 남들이 그만 생각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이 정도면 됐다고 할 때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일이 끝난 뒤에도 다음을 생각한다. 그걸 보고 배우면서 한 편으로 아, 나는 이러고 싶지는 않다는 양가적 감정과 판단 사이에서 흔들리는 상황이다.


나는 워커홀릭이 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배우고 싶은 것은 분명히 생긴다. 일에 대한 집요함, 생각의 깊이, 완성도를 쉽게 타협하지 않는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워커홀릭들이 가진 장점만 쏙 가져가며 '여유롭게' 일한다는 건, 어쩐지 모순적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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