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뱃살, 고래, 커피 두 잔

출근길 풍경

by김붕어

<자전거, 뱃살, 고래, 커피 두 잔>


내리막에서 자전거를 탈 때에는 센 맞바람에 눌린 상의가 내 뱃살에 진공포장지처럼 착 달라붙는다. 그럼 뱃살이 느껴진다. 그 볼록한 불편함과 맞바람의 시원함과 언덕 아래로 활강하는 쾌감을 느끼며 매주 화수목 샌프란시스코로 출근한다. 산 위의 집에서 샌프란시스코 만(San Francisco Bay)에 붙은 선착장까지 오늘도 페달을 밟았다.


내 몸에 무임승차하는 뱃살처럼 나도 가끔은 슬롯에 무임승차하고 싶다. 하기 싫은 일은 모조리 닷지하고, 어떻게든 손쉽게 돈은 벌어서, 그 돈을 마음껏 쓰고 싶다. 예컨대 오늘 환갑 생일을 맞은 엄마에게 너른 땅이 달린 전원주택을 사주고 싶다. 전원주택에 살고 싶다고 노래하는 엄마도 나처럼 잡초 지옥에 빠져봐야 도시 아파트 생활의 편리를 찬양하겠지. 돈으로 혼내주고 싶다. 출근 길 자전거 안장 위에서 가끔은 출근 안 하고 막 사는 판타지를 그린다.


그렇지만 내 몫이 있는 일터에서 날 인정해 주는 동료들과 함께 애쓰는 일도 즐겁다. 그래서 출근을 한다. 그런 기대감에 오늘도 출근했다. 그런 기대감과, 안장에 앉아 언덕 아래로 질주하는 쾌감과, 귀에 꼽은 에어팟에서 나오는 록밴드 퀸의 음악이 만나면 위험하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평지의 첫 신호등에서 멈추기 전까지 한 5분 산 아래로 내달리는 길이 5분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기분 좋은 딜레이였다.


평지에서는 왼손의 엄지로 모터 스위치를 꾹 눌렀다. 맞다. 내 자전거는 사실 전동 자전거다. 뱃살과 나머지 몸뚱아리를 안장 위에 싣고 모터에게 페달질을 위임했다. 달리다 보니 모터 스위치를 누르는 엄지가 아팠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양손을 떼고 양발로 페달만 돌렸다. 오른쪽 귀에 꼽은 에어팟 다리를 잡고 시리에게 몇 시냐고 물었다. 시리는 못 알아들었다. 선착장까지 서둘렀다.


선착장까지 한 십오분 지나가는 동네의 이름은 리치몬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 동네 조선소에서 지은 선박들이 금문교를 지나 곧장 태평양으로 출항했다. 전쟁이 끝나고 조선소가 문을 닫았다. 흥했던 동네도 함께 망했다. 출근 길에 동네를 지나다니면 쇠창살이 붙은 창문들이 보인다. 그런 동네의 선착장 근처 웨어하우스에 최근 OpenAI가 들어왔다. OpenAI가 거기서 AI 로봇 제품을 실험할 거라는 소문을 들었다. 흥망 했던 동네가 다시 흥할 것인가. 그 변화를 살펴보는 게 출근길의 유희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출근길의 소소한 유희는 이미 있다. 선착장에서 배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가는 뱃길에 요즘 고래가 나온다. 캘리포니아 회색 고래가 나타나면 선장님이 방송을 켠다. ‘배 좌편에 고래가 나왔습니다. 속도를 줄이겠습니다.’ 그럼 대부분의 승객들은 고개를 좌편으로 홱 돌린다. 좀 기다리면 고래 등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가 보인다. 난 이미 여러 번 봤다. 고래 머리랑 꼬리도 봤다. 요샌 고래를 보려는 사람들을 본다. 모두가 좌편을 볼 때 우편을 보면서 외쳐보고 싶다. (사실 없는데) ‘저기다!‘


오늘 출근길에 고래는 없었다. 대신 오랜만에 쓰고 싶은 말들이 느껴졌다. 배 안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다 노트북을 켰다. 그 말들을 이리저리 배열했다. 배 위에서 보낸 35분이 뚝딱 지나갔다. 배가 샌프란시스코 페리 빌딩에 도착했다. 자전거와 함께 승선한 승객들은 일반 승객보다 먼저 내린다. 먼저 내렸다. 다시 자전거 페달을 돌렸다. 5분 안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에서 디카페인 커피를 한 잔 내렸다. 첫번째 커피는 한 시간 전 이미 집에서 마셨다. 딱 한 모금만 마신 두 번째 커피를 바카라상에 두고 오늘 두 번째로 노트북을 켰다.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기분이 썩 좋았다. 오늘도 내 몫을 하자. 무바카라임한 무임승차는 피하자. 무바카라임하지 않은 무임승차는 오케이. 잡무는 AI에게 넘기고 나도 힘껏 페달을 밟아보자. 그렇게 다짐하고 회사에서의 하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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