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은 그 선수를 20년 동안 데리고 있었습니다
NBA를 보다 보면 가끔 이해가 안 되는 선수가 한 명씩 눈에 들어옵니다.
벤치 끝에 앉아 있다가 승부가 결정된 뒤에야 코트에 나오고, 나이는 전성기를 훌쩍 넘겼고, 기록을 찾아보면 출전 시간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구단은 해마다 그 선수와 다시 계약합니다.
마이애미 히트의 유도니스 하슬렘이 그런 선수였습니다.
언드래프티 출신으로 최고의 동료들 옆에서 3번의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그 뒤로는 경기에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팀은 그를 놓지 않았습니다. 하슬렘은 43살에 20번째 시즌을 마치고 은퇴했습니다.
팀에서 하슬렘이 어떤 선수였는지는 경기 기록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구단 사장은 하슬렘을 두고 "유도니스가 곧 마이애미"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슬렘 역시 훗날 사장에게 모든 NBA 팀에는 자신과 같은 선수의 자리가 하나씩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NBA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는 선수를 'Glue Guy'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접착제 같은 선수입니다.
회사에도 비슷한 사람이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사람을 꼽을 때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분명 아닙니다. 큰 프로젝트마다 이름을 올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있는 팀은 일이 더 잘 굴러갑니다.
기획과 개발이 서로 자기 말만 하고 있으면 중간에서 중재를 해주고, 회의에서 의견이 부딪히면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 무엇 때문에 이야기가 어긋났는지를 정리하기도 합니다. 새로 들어온 팀원이 조직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합니다.
단순히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서로 다른 역할의 사람들이 한 팀으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농구에서는 뛰어난 선수 5명을 모았다고 해서 반드시 최고의 팀이 되지는 않습니다.
공은 하나뿐이고, 모두가 공을 오래 잡고 있어야 장점이 나오는 선수라면 누군가는 자기 역할을 포기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공 없이 움직여야 하고, 누군가는 상대 팀의 가장 잘하는 선수를 수비해야 합니다. 마지막 슛을 던지는 사람도 한 명뿐입니다.
모두가 자기 장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식으로만 플레이하려 한다면 오히려 팀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팀원 모두가 자기 분야에서는 뛰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자기 방식대로 일하려 하고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맞추려 하지 않는다면 그 능력이 그대로 팀의 성과가 되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능력을 더한 값과 팀의 능력은 같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서로의 능력을 깎아먹기도 하고, 반대로 혼자일 때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일과 좋은 팀을 만드는 일은 다릅니다.
또 다른 Glue Guy가 있습니다. 셰인 배티어.
《머니볼》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루이스는 2009년 뉴욕타임스 카지노 게임에 배티어를 다룬 글을 썼습니다. 제목은 「The No-Stats All-Star」였습니다.
기록 없는 올스타.
배티어는 득점력이 압도적인 선수도 아니었고,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선수도 아니었습니다. 팀의 단장조차 그를 기껏해야 평범한 NBA 선수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배티어가 뛰는 팀은 계속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팀은 그 이유를 기존 기록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득점과 리바운드 같은 숫자 말고, 선수가 코트에 있을 때 팀의 득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는 +/-에도 주목했습니다.
그 결과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글을 쓸 당시 배티어의 수치는 +10으로 올스타급 선수들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선수 생활 전체로 봐도 +6이었습니다. 단장은 +6이 얼마나 큰 수치인지를 설명하면서 41승 팀과 60승 팀의 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개인 기록으로 볼 때와 팀에 미치는 영향으로 볼 때 배티어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달랐습니다.
팀은 기존 기록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그 가치를 없는 것으로 본 게 아니라 보는 방법을 바꿨습니다.
이 선수가 몇 점을 넣었는지만 보는 대신 이 선수가 코트에 있을 때 팀 전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봤습니다.
그렇다면 회사도 이런 사람을 찾아서 뽑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채용 공고에서 이런 역할을 따로 찾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찾을 항목 자체가 없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채용은 보통 당장 필요한 역할을 찾습니다. 개발자가 필요하면 개발자를 뽑고, 영업이 부족하면 영업을 뽑습니다. 팀을 하나로 묶어줄 사람은 별도의 직무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슬렘도 Glue Guy로 입단한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팀은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못한 파워포워드 한 명을 데려왔을 뿐입니다. 그러다 주전이 됐고, 우승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출전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팀 안에서 맡는 역할도 달라졌습니다.
Glue Guy는 처음부터 정해진 직바카라이라기보다 함께 일하면서 되어가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하다 보면 누가 누구와 잘 맞는지 알게 됩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그 사람의 말을 듣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찾게 됩니다.
직무기술서에 없던 역할이 조직 안에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채용으로 찾기보다,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NBA에서는 선수의 역할이 달라져도 팀에 주는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자리를 남겨두기도 합니다.
예전만큼 많이 뛰지 못하고 기록이 화려하지 않아도 그 선수가 팀에 필요하다면 구단은 계속 함께합니다.
회사에도 그런 사람은 있습니다.
혼자 가장 많은 성과를 내는 사람과 여러 사람이 제 실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사람은 늘 같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있을 때 팀이 더 잘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느냐입니다.
개인의 성과만 보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있을 때 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까지 봐야 보이는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