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요일부터 출근하고 있다

일요일 저녁은 누구의 시간인가?

byNARRIVO

분명 일요일 오후까지는 괜찮았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누워서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잠깐 졸기도 했어요. 그런데 창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이유 없이 마음이 바빠집니다. 가방을 챙겨야 할 것 같고, 내일 입을 옷을 미리 꺼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출근할 시간이 아닌데 마음은 벌써 일터에 가 있어요.


불현듯 내일 해야 할 일이 떠오릅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생각나고, 지난주에 마무리하지 못한 업무가 다시 생각납니다. 출근은 월요일 아침에 하는데, 일은 이미 일요일 저녁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아요.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일정도 미리 확인하고, 내일 할 일도 적어보고, 평소보다 일찍 누워도 봤어요. 잠깐은 나아집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일을 생각할수록 회사에 있는 모습이 더 선명해집니다.


일요일 밤에 초등학생인 아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습니다.


내일 학교 가기 싫다.


이 녀석도 조금 전까지의 저와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저는 지금 창업을 해서 온전히 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출근 시간을 정해주는 사람도 없고, 월요일에 누구를 만날지도 제가 선택할 수 있어요. 그런데도 월요일은 여전히 싫습니다. 이유도 예전과 같습니다.

놀고 싶으니까, 힘들게 일해야 하니까.

직함이 바뀌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월요일이 싫은 건 똑같더라고요.


다만 아이와 제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는 그 말을 하고 다시 신나게 놉니다. 여전히 늦게 자려고 하고요. 하지만 저는 옷을 꺼내두고 일정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감정은 같은데 행동은 달라요. 아이는 일요일 밤에 월요일의 부담을 애써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월요일이 싫은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건 월요일의 제가 감당하면 돼요. 문제는 왜 일요일 저녁부터 감당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최근에는 일부러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잠깐 사무실에 나갑니다. 두어 시간쯤 앉아서 월요일에 할 일을 조금이라도 미리 해두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주말에 쉴 수 있는 시간에 일을 했는데, 왜 마음은 더 편할까요?


사실 사무실에서 보낸 두어 시간과 옷을 꺼내두고 내일을 머릿속으로 되짚으며 흘려보낸 일요일 저녁은 성격이 다릅니다. 전자는 제가 정해서 내준 시간이고, 후자는 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아닌 채로 점유당한 시간입니다. 주말에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마음 편한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아요. 미리 일을 했다는 사실보다 시작과 끝을 제가 정했다는 게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극히 제 방식일 뿐 절대 권하려는 건 아닙니다. 주말에 사무실에 나갈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고, 나간다고 해도 다 편해지는 건 아닐 테니까요.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 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요일의 끝은 제가 정하려고 해요. 그래서 월요일에 가장 먼저 할 행동 하나만 정해둡니다.

메일함을 여는 것이든, 누구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든.

나머지는 그냥 놔둡니다.


이렇게 한다고 일요일 밤이 편안해지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어둑어둑해지면 마음이 바빠지고 내일을 미리 준비하게 됩니다. 다만 어찌할지 몰라 서성이던 시간은 줄었어요.

아이는 돌아오는 일요일에도 학교 가기 싫다고 할 겁니다. 저도 비슷한 마음으로 앉아 있을 것 같고요. 그렇지만 마음만은 조금 더 늦게 보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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