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 가장자리에 남은 체온
삶은 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기억된다
수십 번씩 어떤 순간을 지나친다.
대부분은 기억되지 않는다. 손잡이를 잡는 방식, 신호등 앞에서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리던 버릇,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잠깐 비쳤던 누군가의 피곤한 얼굴 같은 것들.
너무 작고, 너무 빠르고, 너무 흔해서 기억될 자격조차 없는 장면들.
이상하게도 삶은 대개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한 사건보다 컵 가장자리에 남은 미지근한 체온이 오래 남고, 어떤 말보다 침묵 직전의 공기가 더 선명하게 기억된다.
인간은 중요한 순간만 기억한다고 믿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기억은 늘 비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오래전 겨울밤, 버스 창문에 이마를 기댔을 때의 차가운 감촉은 남아 있는데 정작 그 시절의 결심은 사라진다. 누군가와 마지막으로 악수했던 순간은 잊었으면서, 악수 직후 손바닥에 남았던 건조한 감촉만 희미하게 살아남는다. 삶은 언제나 핵심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증발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로 구성된다.
새벽 네 시의 편의점, 마지막 지하철의 유리창, 오래된 호텔 복도의 카펫, 비가 온 뒤 눅눅해진 계단 손잡이. 사람들은 그 안을 통과하면서도 자기 표정을 정확히 보지 못한다. 현대인은 지나치게 많은 장면 속에서 살아간다. 너무 많은 알림과 불빛과 속도 속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감각을 잃어버린다. 모든 것을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오래 바라보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순간들은 존재했음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다.
인간의 내부에는 이상한 저장 방식이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장면 하나가 몇 년 동안 가라앉아 있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날 다시 떠오른다. 예를 들어 겨울 오후의 냄새 하나가 오래된 계단을 기억하게 만들고, 낯선 사람의 웃음소리가 십 년 전 지하철 플랫폼의 공기를 복원한다. 감정은 논리보다 후각과 촉감에 더 가까운 곳에서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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