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기억하는 쇠

녹슨 교각을 건너는 그대를 위한 설명서

by적적

https://www.youtube.com/watch?v=bkhso0Re_y8&list=RDEMUFtInaqgCsqPYEg_BNw6_w&index=2

밤이 늦도록 이곡이 온방안을 가득 채웠어 나는 천장까지 헤엄 쳤지...




녹슨 철교 교각을 한없이 본 적 있었다.



강물 가까이 내려가 보면 쇠는 생각보다 붉습니다. 빗물이 흘러내린 자리를 따라 녹물이 가늘게 굳어 있고, 손톱으로 긁으면 붉은 가루가 묻어납니다. 손톱 밑으로 파고든 가루는 비누칠을 해도 쉽게 빠지지 않고 손금의 굽은 곳에 오래 남습니다.


젖었다 마르는 일을 오래 반복한 표면은 군데군데 부풀어 있습니다. 페인트는 낡은 비늘처럼 들떠 있고 손끝으로 건드리면 얇은 껍질이 바스러집니다. 그 아래 쇠는 검기도 하고 붉기도 합니다. 움푹 팬 자리에는 빗물이 고였다가 검은 얼룩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손바닥을 대면 차갑습니다. 오래 대고 있으면 손의 열이 옮겨가지만 쇠는 쉽게 따뜻해지지 않습니다.

손을 떼고 나서도 차가운 감촉이 손금 사이에 남습니다.

교각 아래에서 물방울이 떨어집니다.



바람이 불면 철판이 아주 조금 떨립니다. 녹슨 너트와 볼트 사이에는 검은 물이 고이고 가장자리에는 주황색 가루가 얇게 붙습니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마다 가루가 남습니다.

쇠와 물은 서로를 단번에 바꾸지 못합니다. 물은 계속 닿고 쇠는 조금씩 내어줍니다. 표면이 부풀고 갈라지면 작은 조각이 떨어져 나갑니다. 붉은 가루가 되고 가루는 물을 따라 흘러갑니다.

다리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이동의 무게가 지나갑니다. 쇠는 그 무게를 받아냅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접합부마다 다른 색의 녹이 피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반짝이던 말들도 있었습니다.

매일 오가던 안부와 약속, 늦은 밤 아무 이유 없이 걸었던 전화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대답이 조금 늦어지고, 먼저 걸던 전화가 한 번 빠지고, 빠진 한 번이 두 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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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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