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切創)』, 구병모 작가 던지는 묵직한 화두

by큐티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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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멈추지 않는 작가, 구병모




구병모 작가는 자신을 종종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으로 남기를 자처합니다. 『위저드 베이커리』부터 이어져 온 작가의 서사적 궤적은 늘 예상을 빗나가며 독자를 낯선 영역으로 인도합니다.



작가는 『절창(切創)』이라는 제목을 확정하기까지 무려 4개월이라는 시간을 사전 속 단어들과 씨름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습니다. 작가는 단순히 '상처를 읽는 사람'이라는 평범한 설정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의 잔혹하고도 기이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포착해 낼 알맞은 단어를 찾아내고자 했던 그 집요함은, 왜 우리가 구병모의 문장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지를 다시금 증명합니다.




읽기라는 숙명적 오독과 삶의 비극




소설은 화자인 독서 교사와 아가씨, 그리고 조직의 보스인 오언(烏焉)이라는 세 인물의 시점과 회고가 복잡하게 얽히며 전개됩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진실을 단정 짓지 못하게 하고, 해석의 틈을 끊임없이 벌려놓습니다.




작가는 “모든 문학작품은 오독(誤讀)을 전제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는데, 이는 텍스트를 제멋대로 해석하려는 오류를 범하기 쉽기에 논술 수업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논리를 구축할 때 제가 항상 경계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답을 기계적으로 찾는 것보다 상대의 맥락을 깊이 읽어내려는 시도 자체가 중요함을 소설은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베인 상처’가 남기는 삶의 흔적




소설의 제목인 ‘절창(切創)’은 칼이나 흉기에 '베인 상처'를 뜻합니다. 작가는 이 제목을 통해 우리가 타인과 관계 맺으며 겪는 상처의 성격을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소설 속 인물인 ‘아가씨’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번민보다 차라리 명확한 해답을 원하지만, 그 과정에서 입게 되는 상처는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자상(刺傷)보다는 그냥 좀 까지고 쓰라리다 잊어버리는 찰과상이 낫잖아.”(p.185)라는 아가씨의 독백은, 우리가 타인에게 마음을 내어줄 때 얼마나 깊은 '절창'을 각오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찔리거나 베인 상처는 찰과상처럼 쉽게 잊히지 않고 영원히 흔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절창(切創)』이라는 제목은 우리가 타인을 읽고 이해하려 할 때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깊게 베이고 남는 그 흉터에 대한 작가만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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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기관을 빌려 시위하는 과거의 편린들




아가씨가 상처를 통해 타인을 읽는 행위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인의 과거와 상상, 그 복잡한 층위가 화자의 감각 속으로 폭풍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경험입니다.


“구체적이고 선명한 단어나 문장이 한숨에 섞여 공기 중에 응결된 것 같기도 했고, 서로 맥락이 닿지 않는 이미지들이 팽창하면서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종교의 복음을 전하는 느낌도 들었어. 소리와 냄새를 포집하는 세포들이 들고일어나는 느낌, 맞닿은 상대의 과거인지 상상인지 모를 것들이 무작위로 상처를 통해 내 온 감각기관을 빌려다가 자기 존재를 시위하는.”(p.90)



이 문장을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단순히 사건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읽는다'는 행위' 그 자체의 감각적인 전복을 체험하게 하려함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33년간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글을 다뤄온 저에게, 이 묘사는 글쓰기가 타인의 존재를 온전히 자기 내부로 받아들이는 숭고하고도 위험한 행위임을 다시금 깨닫게 했습니다.




피할 수 없는 비극과의 공존



작가는 『절창』을 통해 희망이라는 달콤한 환상을 배제하고 삶의 냉혹한 실체를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한 권의 바카라을 펼칠 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세상의 코어를 이루는 것이 반드시 희망 내지 사랑만은 아니며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인간들과 혹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나 자신과 필연적으로 상종하거나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자 태초부터 운명지어진 비극이라는 사실이지. 그리고 그 비극을 견디는 게 인생의 거의 전부야.”(p.302



작가의 이러한 통찰은 교육 현장에서 고전과 인문학을 가르치는 저의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교육은 세상을 낙관적으로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나 자신이라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존재들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가는 지난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구병모 작가는 이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가 결국 비극을 견디는 과정임을 명확히 합니다.




상처를 원경으로 삼은 사랑의 발견



『절창』은 ‘읽기’가 필연적으로 ‘오독’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도, 역설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결코 멈추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긍정합니다.



마지막에 다다라 소설은


“상처 없는 관계라는 게 일찍이 존재나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며, 이제 나는 상처를 원경으로 삼지 않은 사랑이라는 걸 더는 알지 못하게 되었다.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지만, 어쩌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봄으로 인해, 상처를 만짐으로 인해,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p.344)라는 묵직한 질문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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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오답을 내고, 오독을 거듭하며, 서툰 방식으로 서로의 상처를 건드립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비극을 견디는 인생의 거의 전부임을 이 소설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구병모 작가의 『절창』을 읽고 덮는 순간,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얼굴을 다시 봅니다. 그들 각자가 품고 있을,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상처들을 더 진심으로 읽어내기 위해 저 또한 글쓰기라는 고단한 과정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타인의 상처에 손을 얹는 것, 그것은 비록 두렵고 잔혹한 일일지라도
사랑에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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